고래로 우리 민족은 유달리 친족간의 정의를 중시하는 면모를 보여 왔다. 한 집에 모여 사는 가족 간은 말할 것도 없고, 처음 만난 사람하고도 성씨와 본관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슴없이 친밀감을 나타낼 정도로 핏줄에 대한 애착이 끈끈하다.

서양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이성양자(異姓養子)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도 다 그런 맥락에 닿아 있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가 아들 자식을 두지 못하고 사망하면 친족의 발의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죽은 사람의 양자로 들여 그에게 친자와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는 사후양자 제도가 민법에 명문화되어 있었을 정도이니, 우리의 입양 문화는 아동 복지 차원에서 양자를 들이는 서구의 그것과는 기본 관념부터 크게 다르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친족간에 벌어지는 각양의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사회 질서의 유지를 근간으로 하는 형법에서도 별다른 대접을 하고 있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호주, 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에 벌어진 도둑질에 대해서는 그 물건이 바늘인지 소인지 묻지 않고 반드시 형을 면제하도록 해서 아예 처벌을 할 수 없게 못을 박아 놓았다. 그런 최근친 관계를 넘더라도 일정한 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반드시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제한을 두었다. 이런 특별대우는 도둑질뿐만 아니라 사기, 횡령, 배임, 장물, 권리행사방해죄 등 여러 목록의 범죄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를 법률용어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고 부른다.

친족 간의 법률관계가 이렇게 관습과 제도에 의하여 인정에 따른 해결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특별 취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소송이 붙었다 하면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지는 것이 거의 정형화된 양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이는 얼핏 보면 매우 모순된 현상인 것처럼 생각되나, 가만히 헤아려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남남 간의 분쟁과는 달리 하다하다 안되어 마지막 수단으로 법원에까지 제소되기에 이른 싸움이니 그 갈등의 뿌리가 오죽 깊겠는가.

친족 간에 벌어진 복잡한 민사 분쟁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논리를 적용하여 일도양단하기 보다는 정의(情義)와 관습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서 형법에 규정된 친족상도례의 정신을 살려 법원에 강제조정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런 특례를 이름하여 친족상거례(親族相去例)라고 하면 어떨까?

<강봉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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