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세계 복싱계를 주름 잡았던 무하마드 알 리가 지금은 파킨스병으로 손이 떨리고 발음도 정확치 않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여 인생이 유한함을 느끼게 한다.

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늙고 병들어서 거동하기도 힘든 한 할머니를 보면 이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이 할머니의 인생에 뒤안길이 어떤 형태로 남겨질지 오로지 조물주만이 알고 있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할머니도 한때는 꽃가마 타고 시집갔던 16살 청춘이 있었고, 돌도 소화해 낼 수 있는 건강함과 우유 빛 해맑은 피부로 젊음을 뽐내고 다녔던 처녀 시절도 있었던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다.

이 할머니를 볼 때마다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내 어머니도 살아 계셨다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고 56세에 일찍 돌아가시길 잘했다고 자위를 해야 하는 아픔도 있다.

이 할머니에 대한 의사의 소견을 말한다면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치아가 흔들리고 손이 떨리고 얼굴에는 검은 버섯이 피어나서 외모 상으로도 가련한 생각이 든다.

며느리와 딸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병원을 찾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다.

아들도 있고 딸도 있었지만 며느리가 자주 모시고 오시는 것을 보면 그 며느리는 나중에 큰 복을 받을 것이란 생각도 들곤 한다.

일부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의 눈치를 봐 가면서 슬슬 피해(?) 다니면서 이 집 저 집 전전하는 요즘 세태와 비교할 때 참으로 훌륭한 30대 후반의 며느리다.

그렇게 효도를 받는 이 할머니에 비해 부모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나는 복을 받을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괜히 며느리와 아들딸들을 질투하기까지 했다. 이 할머니에 유난히 관심을 갖고 진료하는 까닭도 제대로 철이 들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환영을 찾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현재 이 할머니 치료는 치아를 발치하고 일차로 임시 틀니를 해드려서 어느 정도 잇몸이 굳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다음에 완전한 틀니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인간의 욕망 중에 세 가지가 있는데, 명예욕은 뜬구름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허무하고, 성욕은 한계가 있어서 지속성이 없고,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식욕이라서 그런지 관속에 노자 돈을 넣는 것이 황천길 주막집에 들리셔서 막걸리 한 사발 드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할머니 담에 오실 때까지 꼭 살아 계셔야해 응? 안 그러시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새는 하늘을 날아도 발자국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할머니는 무엇을 세상에 남기고 가실까?

<안창택·치과의·제민일보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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