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벌금의 하한은 5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벌금의 상한은 각개의 죄별로 형법을 비롯한 각종 특별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절도죄의 경우는 1000만 원 이하, 사기죄의 경우는 2000만 원 이하, 단순폭행죄의 경우는 500만원 이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형사사건에서 법원이 벌금형의 하한에 해당하는 5만 원을 선고하는 예는 거의 없다. 물가 상승에 따라 벌금 액수도 조금씩 상향조정되어왔는데, 최근에는 50만원이 현실적인 벌금형의 하한으로 굳어진 듯하다.

그나마도 벌금 50만원의 형이 법정에서 정식 재판 절차를 거쳐 선고되는 예는 흔치 않다.
그 정도의 형이 선고될 만한 사안이라면 검찰에서도 가벼운 사건으로 분류해서 정식 기소를 하지 않고 서류만으로 재판이 가능한 약식기소를 하고, 법원도 대부분 이를 받아들여 검사한 청구한 금액대로 약식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재판 역시 완벽을 기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는 일이 분명히 있으며, 끝내 누명을 벗지 못하여 형벌을 받고 평생 가슴앓이를 하는 예도 희귀하다고 볼 수 없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그 줄기가 예기치 못한 곳에 닿아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심지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거나, 정작 진범은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데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려 구속되는 일도 생긴다.

지난 1992년에 발생한 김기웅 순경 사건은 사람이 하는 재판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재난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웅변해준다.

경찰관인 김기웅은 살인죄로 기소되어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던 어느 날 극적으로 진범이 붙잡혀서 석방되었다.

이렇듯 중대한 사건에서도 법관이 심혈을 기울여 판결한 것이 뒷날 명백한 오판이었다는 게 드러날 정도이니, 벌금 50만 원에 처해지는 수많은 ‘잔챙이’ 사건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에 필자가 맡았던 사건 역시 벌금 50만원의 형이 선고되어 확정되었음에도 피고인은 끝내 그 판결에 승복을 하지 못하여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윽고 노역장 유치를 당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벌금을 낼 수 없다며 울먹였다.

현실론을 펴서 결국 벌금을 납부하도록 설득하긴 하였으나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억울함의 정도는 벌금 액수와는 무관한 것인가.
<변호사, 강봉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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