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수도 정해주고 대 잇게 하는 신통력
상서로움-탐욕, 반대 속성 모두 지녀

올해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돼지띠의 해다. 돼지(亥)는 12지(十二支·띠)의 마지막 띠동물이며, 돼지와 관련된 속담은 참으로 많다. 돼지하면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바로 ‘아기돼지 삼형제’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엄마의 품을 떠난 아기 돼지 삼형제가 자립하는 이야기다. 삼형제는 각자 성격대로 집을 짓게 되는데, 첫째와 둘째는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집을 대강대강 지었다가 아기 돼지를 노리는 늑대에게 봉변을 당한다. 하지만 집을 꼼꼼하게 잘 지은 셋째에 의해 늑대가 퇴치되고, 아기 돼지들은 행복하게 지낸다. 이 동화는 놀고 싶은 본능이 더 강한 첫째와 둘째의 어린이 같은 모습과 놀고 싶은 욕망을 뒤로한 채 튼튼한 벽돌집을 짓는 셋째의 믿음직한 모습에서 진정한 지혜와 성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저팔계 잡상(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마루에 있었던 장식용 기와.「어유야담」에 의하면 잡상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궁궐과 사찰을 수호한다고 하는데, 세번째가 저팔계다)  
 
신화에서 돼지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 제의(祭儀)의 희생, 길상으로 재산이나 복의 근원을 상징한다.
돼지가 가축화된 건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다. 기원전(BC) 6000년 전 서남아시아의 농경유적에서 출토된 돼지 유골이 현재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축으로서 돼지는 여러 용도로 쓰였다. 이집트에서는 BC 3000년에 중요한 가축으로 사육됐고, 그리스나 로마시대에는 돼지고기 요리가 크게 발달했다.

   
 
  납석으로 만든 돼지 조각상(통일신라, 김유신 장군 묘라고 전해지는 무덤 둘레에서 출토된 돼지 조각상)  
 

돼지는 주로 식량의 공급원으로 중요시됐던 반면 종교적 기피대상으로 박해를 받기도 했다. 회교나 유태교도들은 돼지를 불결하게 여겼으며, 아시아·아프리카의 광대한 회교권역에서는 돼지를 기르지 않았다.  돼지고기를 먹는 민족과 이웃해 사는 지역간 민족적 마찰도 많았다.

   
 
  돼지를 지고 가는 망나니 그림(조선후기)  
 
국내 돼지는 중국의 멧돼지 또는 동남아시아의 멧돼지에서 유래됐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주호(州胡·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국내에서는 약 2000년 전부터 돼지를 사육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신화에 등장하는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임과 동시에, 나라의 수도를 정해주고 왕이 자식이 없을 때 왕자를 낳을 왕비를 알려줘 대를 잇게 하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전해진다.

고구려와 고려는 돼지에 의해 도읍지를 발견했다. 산산왕은 아들이 없었으나 돼지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았다. 돼지는 신통력만이 아니라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使者)로도 나타난다.

일찍이 돼지는 제의의 희생물로 쓰여진 동물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하늘과 땅에 지낼 때 쓰는 희생으로 돼지에 관한 기록들이 나온다.
오늘날에도 무당의 큰 굿이나 마을제에는 돼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음은 물론, 각종 고사때에도 돼지머리가 등장한다. 이처럼 제의에 돼지를 쓰는 풍속은 멀리 고구려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역사가 깊은 민속이다.

   
 
  최윤인 석관에 새겨진 돼지상 (1162년, 돌널로 만든 석관 안쪽에 동물머리에 사람 몸으로 된 십이지동물을 새겼다)  
 
또한 돼지는 지신과 풍요의 기원, 돼지꿈, 돼지그림 등에서 길조를 나타내며 재산이나 복의 근원으로서 집안의 수호신 또는 재물신을 상징한다.

그런가하면 돼지는 속담에서 대부분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즉 돼지는 상서로움과 탐욕스러움이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 모순을 지니고 있는 띠동물이다.

(출전=천진기 논저 「한국문화에 나타난 돼지의 상징성 연구」, 오창영 논저「돼지의 생태와 종류」)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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