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대표 문화유산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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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성 돌하르방 예상배치도(제주문화연구소 자료 제공) | ||
| 돌하르방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인들의 총애를 받는 진정한 문화유산인 돌하르방 중 45기가 문화재 명칭(제주도민속자료 제2호)으로 채택된 때는 지난 1971년 제주도문화재위원회에 의해서다. 기록된 돌하르방 수 49기 중 2기는 당시 경복궁 서울민속관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2기는 행방불명됐다. 이런 과정에서 도교육위원회는 민속학회의 현장보존 주장을 무시하고 돌하르방을 전국적인 선양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서울민속관으로 옮겼다. 그 밖의 돌하르방도 도내 각 기관으로 이설된 이후 훼손되거나 왜곡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
◇돌하르방 집단 이전 “왜”
돌하르방은 제주도 행정구역이 삼분(三分)되었던 약 500년(1416∼1914)간 제주목·대정현·정의현 도읍지의 성문 앞에 쌍쌍이 세워졌었다.
제주목의 것은 모두 원위치에서 이설됐고, 대정현·정의현 것들은 대부분 원위치에 놓여 있다.
제주목의 돌하르방이 원위치를 벗어나 뿔뿔이 흩어진 것은 1960년대 들어서부터. 제주목의 동·서·남문을 지켰던 돌하르방 25기 중 21기가 제주대학교(4기), 제주시청(2기), KBS제주방송국(2기),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2기), 삼성혈(4기), 관덕정(4기), 공항(2기), 목석원(1기)으로 옮겨졌다.
제주목의 돌하르방들이 집단 이설된 이유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거의 없다. 제주시 도로포장공사로 인해 돌하르방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3월20일자 지역언론 기사를 보면 ‘제주성 동문에 있던 돌하르방 2기가 경복궁 서울민속관(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길 것을 도교육위원회가 승인하였다’(제주신문 67년3월20일자)고 나와 있다.
당시 ‘도교육위원회 당국자가 돌하르방이 전국적인 선양을 위해 한국민속관 전시가 필요하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민속학회 일부에서는 현장보존을 역설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돌하르방 이설 움직임은 들불처럼 일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60년대 초기 돌하르방의 실태를 조사, 기록했던 민속학자 현용준씨(전 제주대 교수)는 “제주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모 유명 민속학자가 서울로 전근하면서 돌하르방 2기를 대동하고 갔다”면서 “당시 도청 공무원의 진두지휘하에 돌하르방을 가마니로 싸서 경복궁까지 선박, 기차로 나르는 등 돌하르방 이설에 적극 참여했다”고 밝혔다.
돌하르방의 이설을 진두지휘했던 당시 도청 학무과장은 자신이 문화재 관리를 하는 당사자로서 돌하르방의 문화재적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돌하르방의 이설에 혈안이 된 도내 각 기관들의 돌하르방에 대한 문화재적 안목 역시 도청 관계자의 사고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제주시 돌하르방은 각급 기관으로 옮겨된 이후 71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문화재로(제주도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됐다.
◇문화유산 이설, 도 행정이 전두지휘?
그런 가운데 경복궁 서울민속관(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진 돌하르방 2기는 문화재로 지정조차 되지 않아 돌하르방 수난시대를 예고했다.
제주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민속관에 이설할 당시 돌하르방은 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제주도내 각급 기관으로 옮겨진 돌하르방은 문화재로 지정됐을 뿐, 훼손되거나 왜곡된 시설로 수난을 겪긴 마찬가지다.
현재 관덕정 정문에 위치한 돌하르방들은 트럭에 받히는 사고가 끊임없었으며, 지금도 보호책 없이 외지인에 쉽게 노출된 상태다. 시청 돌하르방들은 주차장에 인접해 있으면서 보호철책 등도 없어 언제 훼손될 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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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적과 차량에 노출돼 파손위험이 있는 돌하르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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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에 시멘트 땜질이 된 돌하르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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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둥과 기석이 반대방향으로 세워져 있다. | ||
제주의 얼굴인 제주공항에서마저 돌하르방의 수모는 여전하다. 현재 제주공항 직원주차장을 지키는 돌하르방 2기는 기석과 기둥이 정반대로 배치돼 있거나, 기석이 부서져나가거나, 주변 공항시설물에 가려지는 등 크게 파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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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변 시설물들에 파묻힌 돌하르방. | ||
이외에 KBS제주방송국, 목석원 등의 돌하르방 역시 일부 훼손된 상태 또는 외부에 노출돼 있어 언제라도 파손될 가능성이 높다.
△돌하르방 관리정책 ‘구멍’
각 기관들로 옮기는 과정에서 돌하르방 기석이 대부분 유실됐다. 기석이 유실되니 돌하르방이 갖은 정주석의 개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돌하르방 기석은 60년대 도로포장 공사시 아스팔트에 매몰되거나 돌하르방 기둥만 뽑혀갔다.
이는 돌하르방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제주도의 전적인 책임이다. ‘제주민속문화의 해’를 위해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름아닌 돌하르방의 복원 내지 제대로운 관리정책이다.
이벤트성 행사에 25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 ‘제주민속문화의 해’이면서도 정작 돌하르방 관리정책에는 단 한푼의 예산도 풀어놓지 않고 있는 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저마다 지역의 특색있는 역사, 문화를 종자 삼아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이때 국내 대표급 관광지를 자처하는 제주도가 제 고장의 역사, 문화를 다듬는 일에는 이토록 인색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돌하르방 소재 기관을 찾아 돌하르방의 복원에 대한 기관장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향후 돌하르방 원형 보전을 위한 해법을 찾아본다. <글/사진 현순실 기자>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