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 브랜드 모아 '예향' 부활 꿈꾸다
맛, 소리, 전통, 예향의 도시 전주. 천주교의 초기 역사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순교자를 배출한 성지로 꼽히는 전동성당과 동학농민혁명, 한국사에서 가장 비운의 왕으로 꼽히는 견훤이 후백제의 도읍을 세우고 도약의 야망을 불사른 곳도 전주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전주의 문화적 코드를 저항과 풍류라고 했듯이, 전주는 저항과 좌절의 역사를 민족적인 풍류로 활짝 꽃피웠다. 전주는 다시 꿈을 꾼다. '예향'과 '천년고도'의 상징을 되살리는 꿈이다. 문화시대, 지방시대의 담론을 전세계적인 담론으로 퍼뜨리기 위해서다. 그 중심에 전주한옥마을이 있다.
#전주 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시 교동·풍남동 일원의 전통 가옥촌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생가와 소설 속 전주 최씨 종택을 비롯, 전통 기와집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학인당, 경기전, 향교 등 19세기 이전 조선시대의 역사와 전축양식과 해방 이후 근대 한옥으로서의 변천 등을 엿볼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다만 1910년 이후 이곳이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다가 1938년 일제의 시가지 계획령에 의한 개발계획에 따라 체계적인 격자형 도심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이 주목받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통생활양식을 서양식 생활양식으로 바꾸는 한국 근대화 정책은 전주한옥마을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전통문화보존정책이 규제위주의 시책이 주를 이루면서, 전주한옥마을도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규제되기 시작했다.
1997년 고도제한지구로 변경하기까지 21년간 대책 없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전주한옥마을은 공동화와 슬럼화가 가속화했다. 여기에 지역주민들의 이탈 등 예전 부촌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문화예술인들이 슬럼화 막다
이에 전주 문화예술인들과 주민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이들은 도시 한옥군으로서 국내 유일의 학술적 가치와 문화정책의 변화로 전주한옥마을을 계획적으로 보전 관리해야 함을 천명했다.
이에따라 전주시는 1999년 전통문화특구 기본 및 사업 계획을 작성, 2000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변경해 계획적인 보존과 개발사업을 통해 그동안 방치돼 있던 한옥마을 조성 사업과 전통생활문화체험관광 상품화를 위한 문화시설 건립을 추진해왔다.
한옥마을 조성 사업이 추진되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의 관심과 방문이 급증했다. 이에 힘입은 전주시는 전주한옥마을을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생활문화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조희숙 전주시 문화관광과 팀장은 "전주시는 전주 전통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오는 2026년까지 총사업비 1조 7000억원(국비 24.1%·지방비 54.8%·민자 21.1%)을 투자할 방침"이라면서 "한옥·한복·한식·한방·한글·한지 등 '한'스타일 육성 종합계획까지 아우르면 전주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통문화와 주민이 공존하는 마을
전주한옥마을에는 현재 25만2307㎡(7만6323평)에 한옥 658채와 비한옥 121채 등 약 900여 채가 몰려있다.
전주한옥마을 안팎에서는 경기전, 전주향교, 오목대, 한벽루, 전동성당 등 문화재와 한옥생활체험관, 최명희문학관, 공예품전시관, 한방문화센터 등 각종 체험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내년 완료 예정인 마을 골목길 조성과 '전주판 청계천 복원사업'인 하천 복개공사로 이어지면서 전주한옥마을은 재변신이 진행중이다.
전주한옥마을의 가장 큰 원동력은 전통문화와 주민이 공존하는 데 있다. 가옥구조 변경 불가 등 재산권 행사에 제한이 있자 가옥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 전통초가가 '빈 집'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제주의 성읍민속마을의 현실과는 딴판이다.
한때 슬럼화에 떠밀려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도 속속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 이에 문화예술인들이 한옥마을에 입주, 전통문화를 살리고 민박을 통해 마을을 찾는 이방인들에게 한옥과 한식, 한지 등 전주의 옛 명성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여기에 천양제지주식회사 등 전통한지의 맥을 잇는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전통문화산업의 발산지로 거듭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 소재 전주시 관광안내소에는 연일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문의로 북새통을 이룬다.
전주한옥마을 문화해설사인 양종두씨(일본어 통역 안내)는 "최근 한지명인들이 이곳에 입주하면서 전통한지의 멋을 체험하려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면서 "전주한옥마을이 주민의 삶 향상과 관광활성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순실 기자 giggy@jemin.com
● 인터뷰/ 김혜미자 한지공예가
"한옥서 한복입고 한지 작업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도시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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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대표적 한지공예가 김혜미자씨(66·김혜미자 전통한지공예연구소장)는 "전주한옥마을과 한지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는 20여년간 한지공예를 우리 생활에 접목해오면서 전주한옥마을에서 한복 입고, 전통한지 작업을 하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
1986년 전지공예에 입문(호진 성기호 선생 사사), 2006년 한불수교 12주년 기념행사 한지공예 초대전(프랑스 파리)에 이르기까지 한길공예 외길만을 걸어왔다.
전국에 제자가 50여명, 수제자만 18명에 이를 정도로, 이젠 어엿한 한지공예가(家)를 이루고 있다.
"오랜기간 한지공예의 길을 걸어오면서 반듯한 공방이 없던 터였는데, 3년전 자녀가 사준 토지 330㎡의 땅에 집 을 짓고, 공방을 만들어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김씨의 말에서도 그의 순수한 심중이 읽힌다.
김씨는 "이런 전주한옥마을도 한때는 공동화다 슬럼화다 해서 철거위기까지 몰린 적이 있다"면서 "전주한옥마을의 생명을 건진 것이 바로 우리 문화예술인들이었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김씨는 "전주한옥마을에 오면 한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며 "전주한옥마을이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도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순실 기자 giggy@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