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카드·이웃 방문 등으로 따뜻한 성탄 보낼 수 있어야”

해마다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풍경이 생활환경과 의식구조의 변화 등으로 그전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세속적인 향락문화에 익숙해져서는 흥청망청한 크리스마스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 교회들은 지역별로 새벽 송 팀을 만들고 바람에 깜박이는 호롱불을 앞세워 신자의 집을 방문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등의 찬송을 부르면서 크리스마스의 새벽을 깨웠다.

동네 어귀에 울려 퍼지는 찬송과 그 소리에 놀란 개들의 짖음에 단잠을 설친 주민들의 불평도 더러 있었지만 1년에 한번뿐인 행사인지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너그러움도 있었다.

추운 겨울밤이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떤 때는 운이 좋으면 소복히 쌓인 흰 눈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신자들이 정성들여 마련한 선물을 자루 가득히 담아 교회에 와서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과 사회복지 시설 등에 전달하여 예수의 박애정신을 실천하던 그런 풋풋한 사람 냄새나는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사는 인구가 급격히 많아져서 인근 주민들의 숙면을 방해 한다는 등의 이유로 새벽 송을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예전의 좋은 전통을 부활하고 보전키 위해서는 새벽에 많은 수의 성가대가 다니는 것 보다 3-4명의 작은 규모의 성가대가 방문케 하는 등 환경 변화에 조화 할 수 있다면 가능하리라는 사람들도 있다.

성탄카드의 왕래도 그전보다 많이 줄었다. 흰 눈 쌓인 풍경에 은박 가루를 뿌린 것이 주종이었지만 평소에 불편 했거나 소원했던 사람 고마움을 느끼지만 함부로 말을 못했던 이에게 성탄카드를 보내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감사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의 범람으로 인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성탄의 기쁨도 나누고 맺힌 응어리도 푸는데 좋은 매개체인 성탄카드를 많이 활용케 하기위해선 카드 대금을 대폭 낮추고 우편 요금을 특별 할인하면 가능 하다고도 한다.

불우이웃 위문도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소외받는 이웃이나 고통 받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소망을 준다는 것은 크리스천에게는 무언의 의무겠지만 경제가 어려울 뿐 아니라 받는 사람들 또한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면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마저 소홀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꼭 비싼 것이 아닌 작고 보잘것 없을 지라도 따뜻함과 성의가 배어있다면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안형관 도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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