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길가다 1. 곶자왈 작은학교 ]

 흔히들 지구를 우주선에 비유한다. 외부로부터 고립돼 쓸 수 있는 자원과 공간이 닫힌 체계를 빗댄 말이다. 인류의 환경문제는 바로 지구가 닫힌 체계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유한된 자원과 제한된 공간 속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 것인가. 해답은 건강한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연재를 통해 교육·미술·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 제주 생태사회 모형을 그려본다.

▲ 곶자왈 작은학교 어린이들이 농사체험을 하고 있다.
#생태생활 교육장=자연이 가파르게 황폐화되는 시대, '개발 경화증'에 걸린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까.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살림'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어떻게 심어줄까. 

곶자왈 작은학교(작은학교)는 환경운동가 문용포씨(43)의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학교다. 문씨는 10여년의 환경운동 경험을 거름삼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2년 전 학교문을 열었다.

"한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진행했는데, 자꾸 봄철 한때 교육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이들의 일상에서 생태·생명·평화적인 것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 생태생활교육장을 만들게 된 겁니다"

작은학교는 어린이환경교육장이다. 작은학교에는 200평에 남짓한 부지에 도서관, 생활관, 쉼터, 자연체험장(텃밭)을 두루 갖췄다.

작은학교 프로그램은 아기자기하다. 마을학교 프로그램은 학기 중 평일 수업이 끝난 뒤, 선인·선흘 분교 학생 등 마을 어린이들과 놀이, 공차기, 자연체험, 글쓰기, 마을 일 돕기를 한다.

마을학교 프로그램은 특히 시골마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놀고 일하고 배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밖에 계절마다 주말에 1박2일로, 어린이들이 놀이, 음식 만들기, 농사체험, 자연체험, 자기 삶 드러내기를 하는 계절학교(주말체험학교) 프로그램, 생태?평화 주제로 떠나는 여행학교, 평화학교 등도 눈길을 끈다.

#작은학교 신나는 학교=작은학교는 어린이 환경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과 놀며 창의력과 상상력, 생태감수성을 키워주고 있다.

작은학교가 문을 연지 이제 3년째. 이 학교에 작은 변화가 왔다. '집-학교-학원'생활에 젖어 자기만 알고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줄도 몰랐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아이들은 무엇보다 자연에서, 시골마을에서, 작은학교에서 놀고 배우고 일하는 것을 통해 제 힘으로 제 앞가림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교과과정처럼 체계적인 것을 요구하는 학부모들과 가끔 '충돌'도 생긴다. 그때마다 문씨는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놀고, 부대끼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생태적인 삶과 생명·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란 말로 학부모를 설득한다.

작은학교는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이시영 어린이(동교 6)는 "여기만 오면 너무 좋다. 친구들과 오름에 가고  숲에 가며, 놀며, 자며, 얘기하며, 밤 주우며,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작은학교가 생태적인 삶과 생명·평화를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지구도 한 생명이다'란 진리에서 비롯됐다.  '그물코'처럼 연결돼 있는 뭇 생명들이  서로 조화와 어울림으로 돕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게 작은학교의 운영 철학이다.

작은학교가 최근 경사를 맞았다.  문씨와 작은학교 아이들이 함께 엮은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 이 현재 어린이들과 초등학교 교사들, 학부모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고, 출판계와 서점가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쓸모없이 보이는 곶자왈이 큰 숲을 만들고 수많은 생명을 자라나게 하듯 작은학교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며 친구들과 다정하게 어울릴 줄 알고,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진솔하게 스며있다.

작은학교의 실험은 쉼이 없다. 어린이오름학교 기자단 출신 청소년 모임인  '천릿길 친구들'의 어린이평화장터 운영, 국내외 청소년들이 제주4·3 등 각국의 아픈 역사와 생명평화의 담론을 나누는 생명평화국제캠프 등 후속 프로그램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곶자왈 작은학교는 아이들의 마음에 자연, 인간에 대한 생명존중의 싹을 틔우고 있다.   

기고/  숲과 생명평화. 문용포(곶자왈 작은학교 대표교사)

요즘 아이들과 자주 선흘곶자왈과 절물자연휴양림을 찾습니다. 숲에 갔을 때 아이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바로 나무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내 숲은 나무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숲에는 풀과 나무만이 아니라 남모르게 숲의 형성을 돕는 이끼, 버섯, 벌레, 새, 야생동물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는 흙, 씨앗을 퍼뜨리게 하는 바람도 숲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열린 감각은 마치 나침반처럼 숲에 깃들어 사는 갖가지 생명체들을 찾아내고 그 생명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냅니다.

숲 속 생명체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고 그 중요한 것들이 서로 끈끈하게 관계를 맺음으로써 숲이 순환하고 있음을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숲은 다양성, 관계성, 순환성의 총체입니다. 숲은 생명이고 평화입니다. 아마 이 지구 안에서 생명평화의 본디 모습에 가장 가까운 걸 찾으라면 숲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 세상도 숲처럼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힘센 사람과 힘없는 사람,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 남성과 여성 따위로 서로 나눠서 빼앗고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숲에서는 작고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체들조차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체들을 하찮고 우습게 보다 간 숲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일등, 속도, 성장, 부자, 소유, 탐욕, 독점, 풍요 따위 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다투고 빼앗고 억누르고 짓밟아야만 이룰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자연을 서로 갈라놓는 일입니다. 결국 그물코처럼 얽힌 관계가 끊어지고 순환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세상이 통째로 망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벗들 그리고 이웃들과 숲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은 생명평화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은 세상에 깃든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이해·존중하는 것이고 그 생명체들이 결코 땔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음을, 그 관계망이 나를 존재하게 하고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원천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곶자왈 작은학교는 그런 생명평화의 마음을 나누고 배우고 깨닫는 작은 진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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