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시스】

백인 매케인과 흑인 매케인 가문은 주인과 노예라는 미국 역사의 아픔이 있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매케인이라는 성을 쓰는 흑인 가족들이 존 매케인 후보의 4대조의 노예들이라는 과거사를 조명, 대선을 불과 18일 앞두고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WSJ는 이날 A섹션 1면과 백(Back)면에 걸쳐 흑인 노예의 후손인 릴리 매케인 가족과 존 매케인 가문의 기막힌 인연의 역사를 소개했다.

심리학과 교수인 릴리 매케인(56)의 5대조 할아버지는 매케인의 4대조인 윌리엄 알렉산더 매케인이 운영하는 면화농장의 120명 노예 중 한 명이었다. 아이솜과 레티라는 이름의 노예 두 명이 남북전쟁 이후 자유의 몸이 되면서 매케인이라는성을 얻게 된 것.

이들은 매케인 가문과 혈연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유력하지만 백인 매케인 가문은 이들과 “생물학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흑인 매케인의 후손인 릴리 매케인은 자신의 조상이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난지 150년이 지난 지금 흑인 후보가 대선에 나오고 자신과 같은 성을 쓰는 백인 후보와 맞선 상황을 착잡한 감회로 바라보고 있다.

미시간주 플린트에 있는 모트 커뮤니티컬리지 교수인 그녀는 “노예 해방이 됐지만 우리 조상은 분노와 적대감을 숨기고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 것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을 뿐 혹독한 인종차별의 역사는 그 후로도 100년은 지속됐기때문이다.

존 매케인 후보측 대변인은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들이 커뮤니티와 나라를 위해 봉사하며 보인 가족애와 사랑, 열정은 모든 시민의 전형”이라는 모호한 찬사로 난처한 상황을 피해갔다.

백인 매케인과 흑인 매케인의 후예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매케인 후보의 사촌인 조 매케인은 아직도 이곳에서 1500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흑인 매케인의 후예들이 주최하는 가족 만남 행사에 참석하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릴리 매케인의 4대조인 레티 매케인의 묘비는 당시 농장의 한편에 세워져 있다. 매케인 후보의 고조 할아버지는 1851년 면화농장을 구입했고 1863년 사망했다. 그의 아들이자 매케인 후보의 할아버지인 존 시드니 매케인은 1906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 해군으로 복무하며 아들과 손자까지 군인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한편 흑인 노예 두 명 중 아이솜의 아들 해리는 1922년 1750달러를 들여 방 4개가 있는 학교 겸용 주택을 구입했다. 이들 흑인 매케인의 후손들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기수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따르며 데모에 참여했다.

릴리 매케인은 1960년대 백인들만 다닐 수 있었던 미시시피 캐롤톤의 고등학교에 처음 졸업한 두 명의 흑인 학생 중 하나였다. 이들 가족이 운영한 교회는 KKK단의 테러로 붕괴되기도 했다.

릴리 매케인은 “그들 백인이 어떻게 사람들을 죽이고 교회를 갈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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