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 르네상스 제주 2-1 다크 투어리즘·일본편 -⑨나가사키 원폭자료관·오키나와현 평화기원자료관

| 일본편 마지막으로 나가사키 원폭자료관과 오키나와현 평화기원자료관을 찾았다. 일본 평화박물관들이 그러하듯, 이곳들도 참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4·3주간때만 '반짝 특수'를 누릴 뿐, 1년 내내 '까마귀 언덕'인 제주4·3평화공원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전시관별로 입체적인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주변 원폭관련 현장은 후세들에겐 생생한 역사교육장이었다. 전쟁만큼 잔인하고 오욕투성이인 것은 없으며, 전쟁을 원망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리를 일본 박물관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
#원폭, 현장체험의 역사로
1945년 8월9일 오전 11시2분, 나가사키에 한 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평화로웠던 나가사키를 불바다로 만들고, 무려 7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불행의 역사가 도래했던 것이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은 나가사키시의 피폭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에 개관됐다.
자료관은 나가사키를 조준, 투하된 패트맨(fatman)의 실제모형, 당시 나가사키를 폐허로 만든 원폭이 시선을 압도했다.
피폭자의 두개골이 일부가 붙어있는 철모, 사람의 손과 뼈와 유리가 고열로 인해 녹아 있 엉겨 붙은 것, 피폭한 어느 여학생의 도시락 유품까지. 전시물들은 타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흩어지고, 사라지고, 병든 원폭당시의 전황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자료관에는 죽음의 상징들이 춤을 췄다.
시계가 피폭당시 11시2분을 가리킨 채 멈춰버린 벽시계는 죽음의 시간태엽을 감은 무리들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시계는 그 무리들이 언제든 죽음을 조준하고 시계태엽을 감을 것임을 전언했다.
그것은 우리를 죽음의 블랙홀로, 광기의 처형대로 무고한 희생자들을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죽음, 세상의 죽음, 지구의 종말을 부를 그 죽음은 전쟁을 꿈꾸는 자들의 욕망일 따름이다. 바로 그 욕망이야말로 죽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료관을 둘러보며 느꼈다.
자료관에는 피폭 자료와 피폭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등의 전시를 비롯해 원폭이 투하되게 된 경위와 핵무기 개발의 역사, 평화희구 등을 짜임새있게 기획, 전시돼 있었다.
자료관 밖은 더욱 활기찼다. 피폭 1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는 평화기념상을 배경으로 수많은 학생참관객들의 발길이 잇따랐다. 마침 구마모토학교 재학생 수백명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소속 문화해설봉사자인 피스 가이드(peace guide)으로부터 자료관 주변 시설물들에 대한 코스별 안내를 받고 있었다.
피스 가이드 가키노 고이치씨(70)에 의하면, 현재 피스 가이드들은 400명에 달하며, 참관객들에게 피폭의 역사로부터, 자료관 안내, 자료관주변 시설에 대한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료관 주변에는 조형물이 많았다. 꽃잎을 형상화한 은색의 조형물 '평화의 망토', 원폭낙하중심지, 원폭투하시 폐허가 된 우라카미성당의 잔해까지. 약 2시간이 소요되는 자료관주변 시설탐방은 일본의 어두운 역사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생생한 체험학습현장이었다.
'평화의 샘'이란 표석도 눈에 띄었다. '평화의 샘'은 원폭투하당시 피폭자들의 죽어가면서 느낀 목마름의 고통을 달래주는 곳으로, 주류 참관객인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매년 8월9일 오전 11시2분을 기해 원폭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
#평화박물관의 명암
오키나와현 평화기원자료관은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오사카 국제평화센터와 함께 대대적인 공습의 피해와 전시(戰時)의 생활상, 참상을 자세히 기록, 전시하고 있다. 잘 알려져있듯,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미군과의 대규모 지상전이 벌어졌으며, 4월 미군이 상륙한 이래 6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석달 동안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 전투는 일명 오키나와전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현 평화기원자료관은 오키나와전 최후의 격전지였던 오키나와 본섬 남쪽 끝의 이토만시 마부니언덕 기슭에 자리잡은 오키나와 전적국정공원에 국립전몰자묘원과 나란히 들어섰다.
이곳은 오키나와전에서 원통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대변하는 증언의 방을 비롯해, 군인과 주민 20여만명의 사상자를 낸 오키나와전 당시 상황을 다룬 '철의 폭풍', 그리고 오키나와전에서 사망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지역별, 출신별로 새겨놓은 각명비인 '평화의 초석'까지 오키나와 현민 개개인의 전쟁 체험을 꼼꼼히 모아 전시하고 있다.
오키나와현 평화기원자료관은 1977년 개관 이후 전시내용이 바뀌거나 '증언의 방'이 축소되는 등 초창기 설립의도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일본정부가 개입해 전시변경을 끊임없이 시도, 오키나와 현민들이 요구하고 실현하려 했던 내용인 전쟁을 반대하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를 학습시켜야 한다는 자료관의 설립이념과 운영방향에의 꿈은 무산됐다. '반전 평화박물관'이 '전쟁 찬미박물관'으로 바뀐 셈이다.
오키나와현 평화기원자료관에는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 1만2000여명의 넋을 위로하는 한국인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지난 75년부터 뜻있는 일본인들이 주축이 돼 매년 9월25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으며, 지금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오키나와지방본부와 함께 위령제가 치러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