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 르네상스 2. 한국사회와 다크 투어리즘 ⑫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나눔의 집'

국내유일의 인권테마 박물관인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행한 반인륜적 과오를 널리 알리고 인권과 평화의 구현을 염원하는 국내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1998년 8월14일에 건립, 개관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사적 아픔과 개인적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들의 고통을 나누는 이곳은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눔의 집, 둥지 틀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내 사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되면서 무엇보다 시급하게 논의된 것은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들에 대한 생활지원 문제였다. 이에 정부 차원의 대책에 앞서 민간 차원의 운동이 선행됐는데, 이때 불교인권위원회가 중심이 돼 1992년 나눔의 집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송월주 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가 결성됐고, 같은 해 10월 '나눔의 집'이 개설됐다.

   
 
  ▲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전경.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공동 주거공간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수요집회 참가, 국내외의 피해자 발굴, 할머니들의 증언과 '할머니 그림전시회' 등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국내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의 공동생활 시설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상 다큐 「낮운 목소리 1·2」(감독 변영주)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공동생활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담아내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나눔의 집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는데 큰 몫을 했다.

그 후 나눔의 집은 한 불제자에게서 땅을 희사받고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모금과 조계종의 지원으로 1995년 12월 현재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나눔의 집은 약 2140㎡ 대지 594㎡규모에 생활관 2동과 법당, 수련관 등 노인거주복지시설로 신축됐다.

새 둥지를 튼 나눔의 집은 이후 할머니들의 생활터로서뿐만 아니라 기념하는 곳 즉 삶의 흔적을 남기는 공간, 나아가 이미 망인이 된 할머니들에 대한 위령의 공간을 합친 삼위일체의 장으로 발전했다.

1998년에는 약 2805㎡ 대지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포함, 990㎡규모의 건물이 들어서 할머니들이 과거 일제의 일본군 위안부 만행에 대한 진상을 알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꽃다운 생애를 접은 할머니들의 숨결과 남은 이의 낮은 목소리가 모여 있는 마지막 역사교실인 셈이다.

#할머니들의 안식처, 그녀들의 삶 기념
현재 전국에 128명의 할머니들이 생존(2003년)해 있으며, 나눔의 집에는 10여명의 할머니가 기거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매주 한글수업과 그림수업을 통해 수차례 국내외 그림전시회를 치렀고, 매주 수요일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관으로 수요시위를 벌여 일제의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폭로하고 일본이 과거사에 진정으로 참회토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또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통해 후손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 앞장서고 있다.

한편 과거의 기록, 일본군 위안부 역사학습, 피해자 추도를 목적으로 건립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증언의 장, 체험의 장, 기록의 장, 고발의 장, 정리와 맹세, 옥외광장 등 총 6개의 주제별 전시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역사관 입구에는 1991년 옛 일본군 위안부 였음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김학순 할머니의 손 사진과 증언에 남겨진 그녀의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는 말이 새겨져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케 하고 있다.

역사관에는 '일본군 위안부란 무엇인가'란 설명으로부터, 어떤 여성들이 군 위안부가 되었는지를 기록물로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위안소의 복원모형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을 할머니들이 그림으로 표현, 아직 행복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돼 어느 날 갑자기 연행돼 수송선으로 위안소까지 끌려가는 모습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또한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해 실명을 공개한 할머니들과 아직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할머니들의 판화작품 전시가 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재형임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전시의 압권은 고발의 장이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글자교실과 그림교실을 통해 익힌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 강덕경 할머니는 '빼앗긴 순결'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의 그림을 통해 자기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일제의 만행을 표현했다.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어렸을 적 1, 2' '소'등에서 자신의 어렸을 적에 대한 추억과 연민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길가에 버려진 병품을 이용한 김 할머니의 '못다핀 꽃'은 일제시대의 조선여성의 수난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는 이에게 애잔한 슬픔을 전한다. 그리고 역사관 밖에 전시된 임옥상 작 '대지의 여인'은 어둡고 슬픈 역사의 굴레를 벗고 땅과 하나가 된 조선의 여성이 곧 생명이며, 동시에 생의 근원임을 상징화하고 있다.

강만길 역사관 명예관장의 말이 귀에 따갑다.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성노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결코 그 죄악상을 다시 들추어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침략행위와 천인공노할 비인간적 처사를 제대로 밝혀내어 제대로 알게 됨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앞 세대의 잘못된 길을 따르지 않고 21세기 동아시아를 평화로운 지역으로 만들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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