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 르네상스 2. 한국사회와 다크 투어리즘 제주편 <17>너븐숭이 4·3공원 일대
| 투둑. 동백꽃이 졌다. 애기무덤가였다. 가엾은 영혼, 외롭지 말라는 전언인가. 흐린 봄날,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와 너븐숭이4·3공원 일대를 찾았다.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마을전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하지만 북촌리는 4·3의 과정을 겪는 동안 330여호, 1500여명의 마을인구 중 500여명이 희생됐다. 리 단위로는 최대의 피해마을이다. 마을동산에 서 있는 당팟성과 팽나무, 북촌포구 도대불도 마을주민들과 4·3의 상흔을 함께했다. 인근 돌하르방공원은 4·3기간 최대의 희생지역인 북촌리가 왜 평화의 기운이 녹아있는 곳이어야 하는지를 전시품들을 통해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
#4·3때 최대의 피해마을
다려도. '마을북쪽 섬이 북촌리를 먹여살린다'고 알려진 섬이다. 북촌포구에서 다려도는 손에 잡힐듯 했다. 파도소리도, 동네 개짖는 소리도 사라진 곳. 하지만 60여년전 죄없는 뭇 생명들이 꽃잎처럼 속절없이 죽어야 했던 비극의 역사현장이다. 이 마을은 4·3을 거치면서 '무남촌 북촌'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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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비 | ||
학살된 사람들 가운데 수십여명의 어린아이들은 개인묘지를 하지 않고 마을 인근에 가봉분 형태로 적당히 수습됐다.
4·3당시 조천면 동쪽 끝에 자리잡은 해변마을인 북촌리는 본동 서쪽에 있는 '해동'과 '억수동'(선흘리와 경제지점에 위치)이란 자연마을을 품고 있다. 이곳에는 일제시대때 항일운동을 한 선각자들이 많았고, 해방후에는 건준,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활성화됐던 곳이다.
그러나 1947년8월 경찰에 대한 폭행사건과 1948년6월 마을 포구에서 발생한 우도지서장 살해와 납치사건이 북촌리 청년들에 의해 벌어지면서부터 군경토별대의 주목을 받았다.
4·3의 와중에는 많은 청년들이 토벌대의 횡포를 피해 피신하면서 엄청난 희생을 불러왔다. 북촌초등학교는 4·3당시 최대의 피해마을인 북촌리 학살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북촌대학살이 있은 지 5년후인 1954년1월23일 속칭 '아이고 사건'으로 북촌주민들은 다시한번 4·3의 아픔을 되새겨야 했다. 이날 전몰장병인 북촌출신 김석태의 고별식을 끝내고, 4·3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주민들의 혼을 달래려고 술 한잔 올리고 통곡한 것도 죄가 되어 신승빈은 이장직을 놓게 된다.
#제주4·3유적지로 지정돼
북촌마을의 비극은 1978년 제주출신 소설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으로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냈으며, 대학살이 있었던 날에는 마을에서 북촌리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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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븐숭이4·3 공원의 애기돌무덤 | ||
북촌마을은 '제주4·3유적지 복원정비사업'유적지로 나븐숭이 일대가 선정돼 2007년 말까지 국비로 위령탑, 문학기념비 등을 설치하게 된다.
현재 북촌초등학교 서쪽에 있는 너븐숭이 소공원에 애기무덤 1기가 있다. 이 가운데 3기는 4·3당시 당팟학살터에서 학살된 어린이들로 확인됐다. 1178-1번지 토지 동쪽 가운데에 있는 돌무덤도 4·3당시 학살된 어린아이의 무덤임이 확인됐다. 마을주변에는 4·3당시에 쌓았던 당팟성 일부와 해동마을 주민들이 이주할 당시 쌓은 성이 일부 남아 있다. 북촌리 포구 도대불에는 당시 군인들이 총격을 가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4·3 61주년을 맞아 희생자 400여명을 위로하기 위해 너븐숭이4·3공원에 기념관도 들어섰다. 기념관 안에는 1949년1월17일 북촌리학살사건의 진상 소개와 당시 학살현장에서 발견된 탄피, 현장사진, 관련 보도 내용 등이 전시돼 있다.
현기영 소설「순이삼촌」의 초판본 및 영어·일어판, 작가가 소설을 목적으로 취재할 당시 쓰던 녹음기가 전시돼 있다.
또 북촌리학살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선 故 홍순식 선생의 친필원고와 북촌리 원로회의의 자체 4·3희생자 조사서 등도 전시돼 있다.
너븐숭이4·3기념관은 일대 애기무덤, 소설가 현기영 소설 「순이삼촌」문학비, 위령비, 방사탑, 산책로와 함께 4·3역사교육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평화·상생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4·3당시 최대의 피해마을인 북촌리 학살의 상징으로 남은 북촌초등학교와 함께 너븐숭이 4·3공원에는 모진 억장세월에도 평화와 상생의 기운만은 가득했다. 4·3 57주년 되던 해에 전국민족문학인제주대회 참가자들, 그리고 2004년 한국종교인평화평화회의(KCRP)가 각각 세운 표지석이 따듯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4·3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남겨진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형제적 연대감과 평화를 기원한다'는 내용의 표지석들에게서 4?3의 비운을 상생과 평화의 마음으로 말끔히 씻고, 다시는 액운이 이땅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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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하르방공원의 재현전시작품들 | ||
인근 돌하르방공원은 너븐숭이4·3공원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너븐숭이4·3공원이 4·3진실을 알리는 교육장이라면, 돌하르방공원은 아픔을 넘어 평화와 치유를 좆는 일종의 명상터라 할 것이다.
전통 돌하르방을 그대로 재현한 48기와 현대적으로 해석, 창작한 돌하르방 등 100여점이 공원 곳곳에 '숨듯' 전시된 이곳은 젊은 화가들이 12년전부터 평화·예술·자연을 돌하르방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이곳 돌하르방들은 근엄한 '가면'을 벗었다. 대신 꽃을 들고, 윙크를 하고, '하트'모양의 손짓을 한다. 돌하르방공원은 가장 제주다운 공원으로서, 평화에 자연과 예술을 엮어 북촌리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살려내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4·3기간 최대의 희생지역인 북촌리가 왜 평화의 기운이 녹아있는 곳이어야 하는지를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