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기자의 침묵'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건 미덕이 아닙니다. '기자는 기사로써 말한다'는 구호를 받아들이는 한, 기자는 끊임없이 기사로써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말이 되지 않는 말'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장황한 잡담'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말하지 않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완전한 침묵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불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의 회피입니다. 그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아무 말이나 했다고 하여 모두 다 '기자의 말'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 하는 '의제설정'이 그 하나입니다. 독자는 그것으로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감지합니다. 다른 하나는 '의제해석'입니다. 독자는 그 내용을 읽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터득합니다. 기사가 실제 일어난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설명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변함없이 기자의 몫입니다.

의제설정과 그 해석은 합리적 신념에 의한 기자의 독자적인 작업입니다. 합리적 신념은 사실적 진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자기모순을 내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역적 시대적 상황에 합치해야 하고, 그 자신 속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물론 기자도 사람인 이상, 다양한 가치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공정한 기자도 그의 사고(思考)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범주를 통해서만 대상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합리적 신념'은 그리 단순치 않습니다. 그건 '도덕적으로 무장한 지성과 체험' 그 자체입니다. 개인적 성향이나 집단적 편협함에서 벗어난, 그리하여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보아도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 상태,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최고의 가치에 부합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견해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평가도 '말을 하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본질문제에 대한 말은 의식적으로 피하고, 마지못해 지엽적인 문제에 큰소리를 내는 건 한마디로 공허합니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인데도 딴전을 피우며 '말하지 않는 것'은 여론의 흐름을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기자의 침묵'을 신중함으로 위장하는 건 위선입니다. 언론에는 '위대한 말'은 있을지언정 '위대한 침묵'은 없습니다. 신문이 사회적 공기(公器)인 것은, 그리하여 기자가 그 현장의 주역으로 인정받는 것은 바로 '기자의 말'을 통해 여론의 형성과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는 지역적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그것에 대한 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는 새로운 사안뿐만 아니라, 이미 알려진 사안도 그 꾸준한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자의 말'이 필요하다싶을 때는 주저없이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자의 직업적 형식입니다. 기자의 '의미 있음'도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기자가 '말하지 않는 것'은 비겁함입니다. 아니, '죄악'입니다.

지금 우리 지역사회에는 너무나 할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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