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 르네상스 제주 <20> 에필로그
| 역사는 기억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기억행위는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것은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 찾기와 같다. 기억행위의 내용은 다양하다.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일부터 사람, 공간, 벌어진 사건들의 전개과정, 매체 등을 재현하는 일들이 이에 해당된다. 4·3과 국내외 비극의 현장을 찾아 떠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역사교훈여행)이 마침내 종착역에 닿았다. 기억행위의 정점에 섰던 지난 1년간의 역사현장을 통해 제주의 다크 투어리즘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
#4·3에서 일본 원폭의 현장까지
광주 5·18사적지를 출발한 역사교훈여행은 부산, 거제, 거창, 고양, 임진각, 그리고 일본 히로시마, 오사카, 나가사키, 오키나와 등 국내외 17곳에 이르렀다. 국내는 구미가 다크 투어리즘을 하나의 역사문화관광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5·18도 체계적인 기념사업을 모색하면서 역사교훈여행지로서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근현대사 전반을 재조명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비극의 역사현장을 찾아 의미를 되새기는 것, 과거를 올바른 역사적 교훈과 반추로 삼기 위해 다크 투어리즘의 가치는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일본의 다크 투어리즘 열풍은 국내보다 훨씬 앞서 불었다. 일본은 평화박물관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40개가 넘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일본 평화박물관들은 대개 원폭의 공습에 대한 기억으로 출발하고 있다.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과 일본의 피해를 기억하는 박물관서부터,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박물관 등 다양한 모습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사카, 오키나와 등 5곳의 평화박물관은 각각 가해자인 일본의 진상을 충실히 알려주는 곳, 원폭당시 참상만을 알리는 피해자 일본의 모습을 고발하는 곳 등 전시취지는 각각 달랐다. 하지만 일본 평화박물관들은 시민생활과 밀착된 역사교육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평화박물관들을 찾는 참관객들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의 평화박물관 일대에서 시민들은 위령비를 찾아 머물며 추념하고, 산책하고, 강아지와 자전거를 끌고 와 즐기는 풍경을 보는 일이 다반사다. 시민생활과 동떨어져 4·3주간 같은 특별한 행사 외에는 찾는 발길이 드문 제주4·3평화공원 풍경과는 크게 달랐다. 일본 다크 투어리즘은 시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어두운 역사가 어떻게 후대와 만나서 기억되는 지 집요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참관객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일본 박물관들의 꼼꼼한 기획력도 참고할만했다. 일본 히로시마 평화박물관만해도 개관된 지 40~50년이 됐는데, 첨단기기를 도입하고 정기적으로 전시물과 기계들을 교체하고 있다. 각종 모형물과 전시물도 유기적인 전기기획력으로 참관객의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전시공간이 입체감대신 평면감에 치우쳐 있는 제주4·3평화공원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제주평화산업 이제부터
제주는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아픈 비극의 역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제주는 유적지의 천국이라 할 만큼 다크 투어리즘의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섬 전역에 퍼져 있는 4·3 등 역사 유적지들은 진상규명과 더불어 후대에게 제주의 어두운 역사를 생생히 보여줄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4·3 유적지는 그러나 무심한 세월에 묻혀 훼손되거나 점차 사라지고 있다. 4·3 유적지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조례('4·3 유적지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조례')가 최근에야 만들어졌다. 이번 조례에 따라, 4·3 유적지들이 구체적으로 보존·관리되고, 평화와 인권이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4·3의 교훈을 전국화·세계화로 거듭날 전망이다. 조례를 보면, 도내 4·3 유적지는 잃어버린 마을, 성, 은신처, 학살터, 수용소, 집단묘지, 비석, 역사현장 등 총 597곳에 달하고 있다. 올해까지 4·3 유적지 중 북촌너븐숭이, 섣알오름학살터, 낙선동 4·3성 등 3곳 개소에 총 48억8000만원이 투자된다. 나머지 정비대상 유적지 16곳에 대해서도 63억원의 국비가 투입되어야 할 형편이다.
제주의 다크 투어리즘의 시작은 제주전역에 흩어져 있는 4·3 유적지의 제도적 보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4·3평과공원을 매개로 한 평화프로그램과 평화 투어 프로그램의 가능성도 타진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선 새롭게 탄생한 4·3평화재단과 제주도 차원에서 다양한 평화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함으로써 평화산업에 디딤돌을 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성은 제주대 강사(관광학 박사)는 "제주관광의 양적 성장이 한계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질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여러 관광형태에 대한 논의 속에서 제주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유산인 4·3 을 관광산업의 틀에서 논의하는 것은 현재로선 조심스럽다"면서도 "제주의 대중적이고 다양한 관광형태의 다크 투어리즘은 제주관광의 위상을 높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강사는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네크워크라는 원칙 속에서 국내외 다양한 방문객을 유치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완성해야 하고, 지자체의 예산지원과 제주도내 관광산업 분야의 협력체계 구축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4·3 유적지는 반세기 전 제주도민들이 몸소 겪은 피어린 역사의 흔적이자, 현장에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4·3 유적지를 매개로 한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처절했던 현장에서 역사를 만나고, 기억해야 한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