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 국내 첫 갈등해결학 박사
"지역마다 갈등해결지원센터 설치해 누구나 도움받는게 꿈"

   
 
  강영진 국내 첫 갈등해결학 박사  
 
 참여정부 시절, 당시 산업자원부는 업계간 이해관계로 얽혀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

 전국의 모든 가구와 건물에 설치돼있는 전력량계(전기계량기)의 교체시기를 좌우하는 '유효기간'에 관한 문제였다. 계량법 시행규칙상 기한이 되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검정유효기간이 기계식 전력량계는 15년인 반면 전자식은 7년이었다.

 전자식 관련 업계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만큼 전자식의 유효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줄곧 민원을 제기했다. 한전 역시 연간 500억원에 달하는 교체비용 절감을 위해 유효기간을 연장했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고 있었다.

 반면 기계식 생산 업체에서는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는 만큼 당연 반대했다. 수리전문업체 역시 자사의 존립기반과 연관된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항이었다.

 이처럼 업계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담당부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3개월후 문제는 모두가 만족할만한 수준에서 해결됐다. 산자부, 기술표준원, 한전, 전자식 및 기계식 전력량계 생산업계, 수리업계 등 각 부문 대표자로 14명의 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위원회는 문제의 핵심인 전자식 전령량계 유효기간으로 연결되는 예측수명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국내외 자료와 실험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자식 전력량계 이론수명은 11.6년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토대로 협상을 벌여 전자식 유효기간은 10년으로 조정하는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물론 참석자 전원 만장일치였다.

 이후 간담회와 조사에서 참석자 대부분은 합의결론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업계쪽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합리적은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도달한 결론인 만큼 존중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문제는 2005년 당시 국무총리실 갈등관리 포럼에서 갈등해결 시범사업으로 선정, '협상에 의한 법규제정' 방식을 도입해 첨예한 갈등을 합리적인 결론으로 도출한 사례다. 그리고 '협상에 의한 법규제정'이라는 갈등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14명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업계간 갈등을 성공적으로 풀어간 사람이 바로 강영진씨다.

 
 # "갈등해결학이 뭐예요"

 현재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로 '갈등해결', '협상'을 강의하는 강영진씨는 10여년간 갈등해결학만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수많은 사례를 해결해온 국내 첫 갈등해결 전문가다.

 시민사회단체 혹은 사회원로들의 중재에만 의존해있던 국내에서 '갈등해결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미국 등에서는 이미 학문으로 발전해 석박사 과정을 통해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으며, 갈등해결 전문가는 어엿한 직업군의 하나다. 미국만 하더라도 갈등해결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국의 각 대학원은 갈등해결학 학위과정이나 전문 연구소가 속속 설치되고 있다.

 현재만 전문석사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이 20개가 넘고, 박사과정은 2군데다.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등에서는 협상, 중조 등 갈등해결관련 강좌를 주요과목으로 편성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등 다른 영어권 국가들 역시 비슷한 추세다.

 강씨는 1997년 도미, 하버드 법률대학원 분쟁해결 과정을 거쳐 갈등연구·해결의 세계적 센터로 이름을 알리는 조지메이슨대학교 갈등해결연구원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갈등해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갈등해결학 박사 1호인 셈이다.

 그러나 이론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갈등해결전문가, 즉 전문중조인(Professional Mediator)이 직업으로 인정되는 만큼 교육·훈련, 실무훈련 등의 과정을 통해 공인자격증이 부여된다.

 강씨 역시 1999년 버지니아주 대법원으로부터 전문중조인 자격을 인증받았으며, 직접 미국내에서 갈등분쟁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강씨는 "사회 곳곳에서 꼭 필요한 분야임에도 갈등해결학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상담가나 변호사가 분쟁 당사자 한쪽만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직업이라면 갈등해결전문가들은 양 당사자가 서로를 만족시키고 공생할 수 있도록 하는 분야다. 유무형의 갈등비용을 줄이고 화합과 상생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낄 수있다. "고 밝혔다.
 
 # 사회 곳곳 갈등의 연속

 갈등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직장생활, 국내·국제사회 등 곳곳에서 발생한다. 그만큼 갈등해결학의 범위는 넓다

 강씨는 "갈등해결학은 개인 간의 갈등에서부터 국제분쟁까지, 그 중간에 있는 조직내 갈등, 비지니스 분쟁, 노사 갈등, 공공분쟁, 사회갈등 등 모두 주요연구대상"이라고 설명한다.

 심각한 고부간의 갈등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남편이 있다면 그 역시 갈등을 해결한 중조인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부부싸움이라는 또다른 분쟁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필요하며, 갈등해결의 방법을 널리 교육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는게 강씨의 설명이다.

그는 또다른 일례로 학교내 갈등해결 방법인 학교내 또래중조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왕따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으며, 학교폭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강씨는 "학생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을때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같은 학생들이다. 또래들 중 중조인을 선발, 훈련해서 학생들간 갈등을 직접 해결토록 하는 게 필요하다. 교육현장 적용 결과 교사, 학생들의 반응이 컸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반성하고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내 적용결과, 또래중조인의 성공률이 성인들이 참여해 중조한 결과보다 높았다. 미국내에서는 또래중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가 1999년 전체 학교의 10%에서 최근 20%로 높아지는 추세다.

 2005년 산자부의 전력량계 사례에 '협상에 의한 법규제정'프로그램이 적용돼 성공했듯이 공공분쟁 예방과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됐다. 정책다이얼로그(사회적 논란이 되는 중요 정책을 형성할때 담당자가 관련 그룹들과 밀도있는 협의를 통해 최선의 정책방향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 협상에 의한 법규제정과 같은 프로그램 등은 실제 적용한 결과 효과가 검증되기도 했다.
 
 # "공공갈등 해결 할 수있다"

 강씨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공공분야의 갈등이다. 그의 박사 논문 역시 공공갈등해결 분야였으며,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풀어가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이는 그의 전직과도 무관하지 않다. 강씨는 1996년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불연듯 유학을 떠났다.

 이미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쳐 봇물처럼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던 시점. 그는 10여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해 취재하고 기사쓰면서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답답했다고 했다.

 그는 저서 '갈등해결의 지혜'를 통해 "우리 사회는 투쟁의 시대를 지나 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정부나 대학, 그 어디서도 그에 대한 대비나 연구가 없는듯 했다. 우리사회 밑바닥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을 보는 듯 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말처럼 최근 우리사회는 각종 기피시설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향후 남북통일문제까지 각종 갈등의 문제로 휩싸여있다.

 특히 강씨의 고향은 제주다. 고향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과 분쟁을 그는 예의 주목하고 있다. 제주는 ·제주특별자치도'로 거듭나면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행정과 주민, 주민과 주민과의 갈등을 동반하고 있다. 이미 해군기지 건설 문제와 관련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영리병원, 관광객 전용 카지노, 한라산케이블카 문제 등 갈등이 씨앗도 적지 않다. 그 어느 지역보다 현명한 갈등해결방법이 필요한 지역인 셈이다.

 강씨는 "고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는 만큼 정책 추진방식, 절차 역시 변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조언한다.

 그는 "정책은 주민생활, 자연,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다 제주도민들은 특히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다. 때문에 더이상 통과의례적인 협의가 아니라 갈등예방 프로그램을 도입, 실질적인 협의로 도정 목표도 이루고 주민 우려도 해소할 수 있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연 가능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는데 실제 적용사례가 있으며, 전문가가 돕고 설계한다면 충분히 특별자치도 다운 행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씨는 이제 시작이다. 갈등해결학이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해야할 과제 역시 산더미다. 이달 초 성균관대 갈등연구센터를 개소한다. 이를 통해 갈등해결 성공사례를 알려 국내에 갈등해결학을 알리는 것이 첫 걸음이다.

 그는 "지역마다 갈등해결지원센터가 설치돼 가족간의 크고 작은 갈등, 나아가 직장이나 지역사회 문제까지 쉽게 도움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라며 " 사회 각 분야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갈등해결 프로그램도 교육하고 만들어서 보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학원 학위 과정을 개설해 중장기적으로 갈등해결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해야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 강영진 프로필 
 강영진씨(48)는 1961년 생으로 제주가 고향이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후 동아일보사 기자로 신동아 등에서 근무했다. 이후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법률대학원 분쟁해결과정을 거쳐 조지메이슨대학교 갈등해결연구원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갈등해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버지니아주 대법원 인증 전문중조인으로 미국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현재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다.

서울=박미라 기자mrpark@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