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8. 김순복 시낭송가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시를 무척 좋아했다. 선생님이 칠판에 윤동주의 '서시'나 신석정의 '들판에 서서' 등 명시를 적어놓기가 무섭게 소녀는 그 시들을 달달 외웠다. 시만 좋았던 게 아니다. 시를 암송하고 있는 자기의 목소리에도 반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란 유명 라디오 프로에서 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변방의 문학소녀가 중앙의 청취자들의 귀를 울린. 그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에게 '시낭송가'란 공연예술가의 길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시낭송가 김순복씨(42). 10대부터 마음에 품었던 꿈을 30대가 되어서야 이룬 그다. 시낭송 음반(시낭송가 김순복 제1집 바람 속에서)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그녀가 이제 인생의 2막을 열고 있다.

 #시낭송가가 되기까지

   
 
  시낭송가 김순복씨.  
 
그와 '시낭송가'의 인연은 2001년에 시작됐다. 우연히 시낭송 모임에 간 것이 기회가 됐다. 김순복씨는 "시낭송가 장기숙씨가 이해인 시인의 '황홀한 고백'과 변영로 시인의 '논개'를 낭송했어요. 순간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나 눈을 뜨듯' 제 온몸이 전율했지요. 너무 황홀했어요. 더럭 겁도 났지요. '시낭송'의 세계가 저렇게 힘든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주변인들이 자꾸 권해도 자기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선뜻 행동에 옮기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시낭송'의 매력에 매료된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에게 시낭송은 훌륭한 공연예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낭송의 세계로 접어드는데는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다. "당신은 재능이 있으니 시낭송 대회 출전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그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은 10년간 낭송해도 대회에서 변변히 탈락하드라"는 이야기에 용기를 얻고 시낭송대회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2001년 전국시낭송대회 제주예선에서 신석정 시인의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로 장려상을 수상한다. 수상당시 "하늘의 별을 따온 것 처럼 너무 좋더라"는 그는 이후 시낭송대회에서 우수상(2003), 동상(2004)을 연거푸 따내며 2004년 시낭송가로 당당히 서게 된다.

특히 2004년 대회 출전당시 그가 출전작품으로 내건 정한모 시인의 시 '바람 속에서'가 2년전 대상을 거둔 작품이라며 주변에서 다른 작품으로 교체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난 시낭송가가 되겠다"며 고집, 끝내 동상을 거머쥐는 '이변'을 낳는다.

#공연예술전문가로 정신없이 뛰다

시낭송가가 된 그녀는 "내가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예술전문가가 될까"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도내에서 시낭송축제며, 국내 유명 시낭송가 초청 시낭송회 등을 잇따라 연 그는 중앙에서 개최되는 시낭송대회도 놓치지 않고 참가했다.

이는 시낭송가로 무대에 서기 데 필수인 시간, 연습, 의상 등 기획력을 키우는 필수 과정이다. 때문에 그는 '먼 길 마다않고' 시낭송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찾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그것이 국내 우명 시낭송가와 문인, 성우들을 두루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허영자·이금배 시인은 그에게 "시낭송가가 시공부를 열심히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김성우 명예시인(에세이집「돌아가는 배」저자)은 "제주에서 서울 오기가 어려운 걸음인데 온다"며 그를 아껴주었다. 제주시인 양중해·고성기씨도 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많이 줬다.

그는 많은 작가들과 성우, 시낭송가를 만나며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작가들이 자신만의 작품집이 있는데, 왜 시낭송가들은 작품을 남기지 않는가. 전국의 시낭송가들의 무대를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 지, 음반작업 역시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 지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낭송집을 펴내야겠다는 그의 꿈은 더욱 단단해진다.

#"시낭송의 르네상스 오기를"

그의 시낭송집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는 2006년 지역방송에서 낭송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부터다. 그는 "당시 이정헌PD(제주mbc)의 제안으로 낭송프로를 맡게 됐다"며 "내 시낭송이 전파를 타자, 청취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며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서 기뻤다"고 회상했다.

그 즈음, 그는 각종 시낭송대회며 축제, 행사에 초대되는 인사가 된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09 전통예술 고궁공연 등 국내의 대형 문화행사에 초대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됐다. 그런 그가 곧 시낭송집을 낸다. 그는 「시낭송가 김순복 제1집 바람 속에서」(신나라 레코드)의 막바지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그는 이번 음반작업에 성우 배한성씨와 함께 자신이 엄선한 22편의 시를 낭송한다. 그는 여기에 한기팔·김수열·김종두·양중해·허영선·정군칠 등 제주시인의 시를 넣어 제주 홍보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김씨에게 시낭송은 혼자 읽기에 청중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는 낭독과는 달리, 시에 담긴 아름다움과 희노애락을 청중과 눈을 맞추며 전달하기에 청중 교감에 있어 뛰어난 공연예술이다.

김씨는 시낭송이야말로 삭막하고 메마른 이 사회에 아름다움을 전하는 소리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낭송 인구가 전국적으로 500 600명에 그치고 있다"며 "시낭송 물결이 일어 시낭송의 르네상스가 오길 기대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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