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8. 제주그림책연구회
#어른들, 그림책에 빠지다
동화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모였다. 주부와 화가, 초·중등교사, 미술교사, 어린이책단체 등 15명이 주축이 됐다. 그림책이 주는 좋은 기운과 생각을 배우며 연구해오던 어른들이기에 모임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때는 2003년 3월, '초방책방'의 기획자인 신경숙씨를 강사로 모시고 10주동안 '내가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주제로 작은 워크숍을 가졌다. 그것이 제주그림책연구회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제주그림책연구회는 그해 8월 탄생했고, 그때부터 그림책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단체의 성격도 분명히 가져갔다. 그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제주의 소중한 과거이야기를 현재에 엮어 바람직한 미래상을 찾아주고, 제주인으로서 정체성에 밑거름되는 동기를 던져주는 것이다.
올해 창립 일곱돌을 맞을동안 그림책 원화전 기획, 독서교실 등의 활동을 해왔다. 주로 제주 문화, 역사, 사람들, 관습, 자연 등에서 제주색을 담은 소재를 찾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그림책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은 창작활동을 위해 수많은 어린이책을 섭렵하고, 국내·외 문화기행을 통해 그림책 기획과 워크숍, 세미나 등을 잇따라 가졌다. 문화기행에서는 현지에서 그림책 기획자들을 섭외해 강의를 부탁하기도 하고, 그림책과 관련된 전시, 공연이 있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제주그림책, 어른들이 쓰고 그리다
제주그림책연구회의 특징은 회원들이 직접 제주그림책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린 책들은 「제주가나다」(2004), 「오늘은 웬일일까요」(2005), 「우리동네 무근성」(2006), 「하늘에 비는 돌, 조천석」(2007), 「곱을락」(2008)이다. 다음달에 출간될 예정인 「바람·돌·여자」3권짜리 책까지 포함하면, 총 8권의 책을 그것도 매해 1권씩(올해만 제외하고) 펴낸 셈이다.
회원들로선 책 한권의 탄생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처럼 험난하고 고된 노역이 아닐 수 없다. 그림책 소재를 구하는 것부터 글과 그림 등 창작에 이르기까지 1인 3~4역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 더욱이 글은 어찌어찌 창작이 가능했지만, 그림은 따로 수업을 받지 않으면 힘든 과정이 다반사다. 화가들('에뜨왈')의 도움을 빌어 1년의 작업 끝에 펴낸 책이 「제주가나다」다. 총 14개의 자음을 소재로 회원들이 각 자음으로 떠올리는 이야기를 짓고, 그 이야기에 맞는 그림을 삽입했다.
자음 'ㅂ'로 시작되는 글 '빙떡'을 보자. "메밀이 맷돌에서 빙빙 돌려지고, 솥뚜껑에서 빙빙 부쳐지고, 무채나물이 메밀전으로 빙빙 말아져…"(윤희순 글)로 시작되는 글에 그림이 곁들여져 아이들에겐 옛 제주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보게 해주고, 어른들에겐 잊혀진 고향의 옛 모습을 회상하게 해주었다.
첫 책인 「제주가나다」가 어른·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회원들의 사기도 함께 북돋아졌다. 회원들은 1년에 1번 책을 출간하는데 뜻을 모았고, 이후 설문대할망·옛 동네·옛 놀이·제주상징 등에서 이야기 소재를 찾는 작업에 주력했다. 이들은 문헌자료를 조사하고, 동네주민들에게 증언을 듣고,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뒤지고, 향토사학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제대로 된 제주그림책 한권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제주그림책 속에는 짧든 길든 제주어가 들어간 것이 특색이다. 하지만 표준어로 주를 달아 제주도민만이 아니라, 타지역 사람들도 제주그림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제주에 그림책마을이 생겼으면…"
제주그림책연구회가 매년 제주그림책을 펴내는 이유에 대해 윤희순 회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특히 제주그림책인 경우 '제주'를 소재로 하다보니, 아이들에겐 제주사람으로서 자긍심과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어른들에겐 잊혀졌던 동심을 자극해 제주의 소중함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어른,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수년전 일본 큐슈 미야자키현의 그림책마을에서 문화기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곳 그림책 도서관, 여행객들이 직접 따다 그림을 그리거나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과수원과 통나무로 된 숙박시설을 보면서 저나 회원들이 너무 부러웠다"며 "제주에도 그림책마을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그림책 출간과 관련 "오는 11월 말게 3권의 그림책이 잇따라 출간되며, 원화전시회도 갖을 예정"라며 "앞으로도 저나 회원들은 끊임없이 그림책을 공부하고 창작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순실 기자
giggy122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