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9. 양용진 제주향토음식연구가

    소설가 김훈은 아날로그 작가다.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작가는 한평생 연필로 글을 쓰는 자신의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한 그릇의 음식도 완전한 아날로그적 방식으로만 이 세상에 태어난다. 제주향토음식 연구가인 양용진씨의 음식세계도 아날로그적이다. 자꾸 변질돼 가는 제주향토음식에 대한 보존책 마련과 제주음식문화로 가치 지우려는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치즈라면' 끓이는 소년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김훈처럼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착한 마음과 그 놀라운 상상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음식은 재료와 재료 사이의 교감으로 태어나므로 된장찌개는 하나의 완벽한 새로운 세계다. 재료들 사이의 교감, 불과 재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내밀한 작용들, 불과 물과 찌개 재료들 사이의 밀고 당김이 기실 된장찌개가 끓는 것과 한 줄로 잇닿아 있다.

양용진씨(44·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의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년시절, 양씨는 형(양호진· '양호진 밴드' 대표)과 함께 음식실험에 몰입했다. 다른 아이들이 음식을 두고 맛이 "맛이 있다" "없다"고 할 때, 형제는 "과연 이 음식은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을까"를 곰곰이 생각한다.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달랐던 것. 양씨는 초등학교때부터 된장, 치즈, 우유, 마늘, 간장을 라면에 곁들이고 맛을 비교하면서 라면을 끓였다. 양씨가 음식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모친이자 제주대표 요리연구가인 김지순씨(74·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어머니의 요리세계를 접하며 어머니의 잔일도 도왔다. 또 어머니로부터 어머니의 요리 스승(故 왕준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요리에 대한 내공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리연구가의 꿈을 이루기까지 그는 많은 길들을 만나야 했다.

#'딴따라'에서 '제주향토음식연구가'로

그에겐 예술가의 끼가 넘쳤다. 원래 화가를 꿈꾼 그는 미대에 가기 위해 한동안 학원가를 배회했고, 연극이 너무 좋아 극단 정낭에서 연극생활도 한다. '딴따라'로 무대판을 누비던 그는 30대에 무대공연기획에 매력을 느껴 LG, 제일기획 하청사인 한 무대공연이벤트사에 적을 두고 3~4년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공연기획을 한다. 그러다 공연기획사업이 다른 하청사로 넘어가는 바람에 공연기획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한동안은 통나무집에 관심을 두게 되어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 직접 통나무집을 지어야 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으며, '양씨 아저씨'란 별칭으로 한 라디오방송에서 제주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오퍼상, 수입농기계 판매업체에 2 3년 적을 두면서 어머니를 돕기 시작한다. 그러다 지난 95년 제과학원을 개설하면서 요리연구가로 입문하게 된다. 5년전에는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의 부원장이 되면서 김지순씨가 해왔던 제주향토음식연구를 정식으로 맡게 된다.

양씨는 그동안 제주대 누리사업단 제주음식 콘텐츠 개발에 함께 참여하고, 김지순씨가 40년 넘게 수집한 제주향토음식 자료를 활용해 이를 학문과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외에 제주자연사박물관, 제주향토음식동호회 등에서 강연하면서 제주향토음식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데 보람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는 "'뿌리 잃은' 제주향토음식의 현주소에 제주음식의 전통과 가치를 찾는 작업에 어려움이 많고, 문화가치로서의 제주향토음식의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 때로 힘들고 때로 외롭다"고 말한다.

#"제주향토음식, 문화적 가치 찾아야"

그가 제주향토음식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된 데에는 유년의 경험이 크다. 또한 요리연구가인 어머니로부터의 영향도 만만치 않다. 양씨는 4년전의 일을 잊지 못한다. 제주향토음식이 웰빙식(참살이식)으로 떠오르던 때다. 김지순씨가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에서 밥 종류 10가지, 냉·온국 10가지, 장아찌류 등 제주음식으로 '제주사계절 밥상'전시회를 꾸며 관객들에게 커다란 관심과 함께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양씨는 "당시 전시를 보던 관람객들이 자신들은 제주도에 몇 번 갔었는데 이런 밥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이거야말로 진짜 웰빙식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고 전하면서 "그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제주음식도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의 법인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씨는 연구원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제주향토음식복원과 함께 제주향토음식 전통성 검증작업, 출판물 발간, 조사연구 등의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양씨는 "요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강발국과 각종 국수류, 상외떡(보리떡) 등을 전통성 있게 살려내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제주만의 문화특색을 가진 제주향토음식이 시대가 흐르면서 변질되고 요즘 제주음식이 원조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그동안 공연기획에서 터득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제주향토음식의 우수성과 문화가치를 알리고 청정 제주음식의 소중한 재료들인 농수축산물의 우수성을 홍보하는데 매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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