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13. 양순자 갈천공예명인
갈천의 매력에 빠진 여자.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로 '제주갈옷의 가치'를 높이는 데 여생을 받친 여자. 바로 양순자 갈천공예명인((주)몽생이 대표)이다. 양순자 명인은 제주갈옷 특유의 자연스럽고, 세련된 색상에 현대적 패션감각을 가미한 갈옷패션을 선보이는데 탁월한 재능과 끼를 발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입는 옷은 내가 디자인 한다"는 욕망을 키운 그는 갈옷공예명인이 된 지금 다시 꿈을 품고 산다. 제주갈옷이 '세계명품'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그녀의 실험은 계속된다.
△패션디자이너, 갈천공예명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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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순자 갈천공예명인 | ||
학창시절엔 '끼'로 똘똘 뭉친 학생이었다. 응원단장이면 응원단장, 트위스트왕이면 트위스트왕, 교내행사에선 빠질 수 없는 '감초'였던 그녀는 욕망을 품는다. "제가 입고 싶은 옷은 제가 디자인하고 싶었어요. 그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행을 감행한 거예요."
양 명인은 76년 패션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에서 디자이너들이 선망하는 미국 FIT를 졸업한다. 이후 현지에서 브랜드회사를 설립, 패션디자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던 1996년, 꿈에 그리던 고향땅 한림을 밟는다. 제주를 떠난 지 15년만이다. 그녀는 미국에 있으면서 늘 고향 제주가 그리웠다고 한다. 그때마다 '지구의 어머니'인 흙과 같은 느낌의 갈옷이 눈에 어른댔다고 한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과 사람의 정성을 먹고 사는 게 제주갈옷이다. 양 명인은 제주를 떠나서야 비로소 제주갈옷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제주갈옷의 미, 세상에 알리다
(주)몽생이가 있는 옛 명월교. 이곳은 양 명인의 작업장이자 갈옷전시장이다. 지난 1996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설립 13년째다. 몽생이는 이제 명품갈옷의 브랜드상표가 됐다. 이는 양 명인이 제주갈옷 특유의 자연스럽고, 세련된 색상에 현대적 패션감각을 가미한 갈옷패션을 선보이는데 탁월한 재능과 끼를 발휘했기에 가능하다.
전시장 벽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들꽃, 타박거리는 야생마, 풋감의 소산, 몽실몽실한 몸짓, 애교어린 고운 음성, 자연산 갈옷…. " 누군가 '몽생이'란 제목으로 양순자 명인에게 '詩보살'을 자처했다. 글귀를 읽고 양 명인을 보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인하고, 오래 견디며,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서는 여자.
그녀는 갈천 물들이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제주, 전국, 중국의 천연염색가들을 찾아나섰다. 그녀의 말마따나 "정말 무식하게" 갈천 물들이는 법을 배우고, 연구했다.
그녀는 아이디어나 아이템 발굴에도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녀의 갈옷은 2000년 우수 공예문화상품 100선과 2003년 한국문예진흥원 기념품 공예대전에서 각각 특선을 수상한다. 2002년 월드컵 열풍이 불 때에는 중소기업청 지정 월드컵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제주의 미를 세계에 알렸다. 2006년에는 갈천공예명인으로 인증을 받았다.
△"청년 제주갈옷 연구가 많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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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순자 명인은 '명품 제주갈옷'의 꿈을 잇고 있다. | ||
이밖에 한수풀도서관 평생교육 프로그램, 한림주민자치위원회 문화교실을 중심으로 지역주민들 대상의 갈옷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양 명인은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지역주민들을 갈옷해설사로 양성,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양 명인은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옷감에 도전, 기능성 상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새 상품 개발에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하고 노력한다.
그녀의 꿈은 '갈옷의 명품화'다. 그녀는 "수십년 갈옷을 연구했지만, 아직도 난 모르는 것 투성이다. 때문에 제주갈옷을 명품화하기 위해 나의 땀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제주갈중이(제주갈옷)이는 '싸구려 상품'이 아니라 '금광'과 같은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며 "앞으로 젊은 세대가 제주갈옷의 명품화에 도전함에 있어 든든한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