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지키는 사람들> 17. 김웅철 향토사학자

  제주 향토사와 제주 삼읍 방언을 비교연구하고 있는 김웅철씨(60·대정고 수석교사). 그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정사람으로 이제까지 주민등록을 옮겨본 일이 전혀 없다. 모슬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에 제주에서 마흔해 가까이 도내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 유년시절 '자파리(손장난)'가 심한 손자에게 대정지역의 역사와 유배역사를 들려준 집안어른들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향토사에 관심이 컸다. 향토사 연구 40여년의 생을 살아온 그는 이제까지 '발로 뛰며 건진 생생한 자료'들을 엮어 역사자료집을 잇달아 발간하고 있다. 곧 정든학교를 떠나 '동네 역사'를 쓰는 '진짜 보통사람'으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다.

 
△병풍·족자로 '딱지' 만든 소년

   
 
  김웅철 향토사학자  
 
그의 고향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유배지가 되었던 곳이다. 온갖 설움과 척박한 땅을 일궈 태풍을 이겨내던 억척정신과 한 뼘의 땅에도 곡식을 위해 개간했던 조상들의 개척정신 속에 그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소년은 조부로부터 추사 김정희와 고조부와의 인연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당시 삼각골 (고산 한장벌) 김좌수로 불렸던 고조부가 7년여간 추사와 교분을 쌓고, 추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며, 고향(대정)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며, 유배인이 많다는 얘기 등등.

소년은 그때부터 어렴풋이 '고향사랑을 실천해야지' 하는 생각에 향토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에는 향토사학자 박용후(「제주도지」저자)의 심부름을 하며 향토사를 접하면서 대정의 역사를 써보겠다는 포부를 키우게 되었다"며 "20대 초반부터 정온, 김정희, 임징하 등 유배인들, 삼의사비의거(이제수 난), 중문 성천포-대정 간 관계수로를 놓아 논 단지를 꾸몄던 채구석 초대 대정군수, 정마리아 등에 대해 대정지역 역사를 비교연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제주시 한경면 판포에서 서귀포시 법환 포구에 이르는 대정현의 역사를 '발로 뛰며 자료를 뒤지며 헤매는' 세월이 시작된 것이다.

△"이운방 향토사학자를 만난 것은 행운"

향토사를 비교연구하며 만난 사람들 가운데, 그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이 대정출신 향토사학자 이운방씨(102세)다. 그가 보기에 이운방 선생은 제주역사의 산증인이다.

 「한라산은 알고 있다」(문창송 저),「인민무장 봉기 투쟁사」(김달삼 저) 등 귀중한 책들을 그에게 소개했고, 1919년 3·1만세운동이 조천에서만이 아니라, 모슬포에서도 학생들이 주축이 돼 일어났다는 사실을 자신의 육필원고를 통해 보여준 이다. 그에게 이운방 선생은 제주역사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이운방 선생과 더불어 유독 독립투사와 좌익사상으로 예부터 반골기질이 뚜렷하고 "정의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대정지역 옛 선인들의 가르침은 그의 향토사 연구에 지렛대 역할을 했다.

 '발로 뛰며 자료를 뒤지며 헤맨' 보람이 있었다. ·2004년 가을 육군 제일훈련소정훈동지회와 강병대(육군제일훈련소)를 거쳐 간 수많은 인사들에게서 직접 입수한 역사사진자료 600여점을 추리고 엮어 역사사진자료집「강병대 그리고 모슬포」를 펴냈다. 그리고 사진자료집에 수록된 사진들을 확대해 최남단모슬포방어축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역사사진자료집을 펴낸 이유는 6·25에 대해 후대들이 역사의 실체를 제대로 뚜렷하게는 모르는 채 반세기를 흘러가면서 의거, 혁명, 치욕과 재기의 몸부림들로 얼룩진 우리네 삶의 역정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당시 대정사람들의 생활사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후 그는 교지 기고란에 대정지역 향토사를 잇달아 집필하고, 각급 학교 역사지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향토사학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번역물에도 손을 댔다. 본업이 영어교사인 그는 여러 편의 영어교재도 발간해 학생들의 영어수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없이 미래도 없다

그는 올해로 본업인 교사직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본격으로 향토사 비교연구에 몰입하겠다는 뜻이다. 그의 관심은 향토사에만 매몰돼 있지 않다. 제주 삼읍 방언을 비교연구할 정도로 제주어에도 능통해 있다. 최근에 펴낸 「어느 보통사람이 펴낸 제주어로 쓴 제주-대정의 삶」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해주고 있다. 그는 '대정사람들의 생노병사'를 주제로 대정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생활사를 구수한 제주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이 남다르게 읽히는 것은 그가 '마라도처녀당굿놀이' 등 13편의 제주굿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보통사람이 펴낸 제주어로 쓴 제주-대정의 삶」을 펴낸 이유가 있다. 대정 사람으로서 60평생 서러운 얘기와 즐거웠던 얘기, 써두고 싶었던 여러 넋두리를 썼지만, 무궁무진한 제주 옛이야기를 소재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향토사와 더불어 제주학이 꽃피는 시절이 왔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외에 서각, 그림, 서예,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그이지만, 향토사 연구는 그의 천직이다.

현재 「회을(悔乙) 김성숙(대정출신 항일운동가·정치가)의 일대기」 「서림리 향토지」「신대정순력기행」을 집필중에 있다. 그는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다. 우리 역사의 뿌리를 찾아야 할 때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야하는 지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지성"이라며 향토사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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