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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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부터 과거를 분리시킬 순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을 현재에 덮어씌워 그것을 정형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자칫 현재의 활력과 그 조형력을 앗아갈 우려가 있습니다. '경직되고 고집스런 과거'는 극복돼야 합니다. 저는 현재를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에 서 있습니다.
모든 게 구차스럽습니다. 그러나 "언론도 달라져야 한다"는 그 의미를 곱씹을 때마다, 이미 언론현장에서 비켜 서 있지만, 분명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있는 저 역시 '달라져야 할 대상'인데도, 어쩌면 역시 '알게 모르게' 그것을 피해가려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쉽지 않습니다. '달라져야 한다'는 게 비단 신문종사자들 뿐 아니라, 신문 그 자체에도 해당된다고 본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문이 과연 현재 상태로 지속가능할지' 가슴 찌르는 물음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입니다. 혹자는 현재의 상황을 일종의 '위기'로 진단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말에 얼른 동의하지 못합니다. 구태여 토를 달아 변명하자는 심사가 아니라, 그런 말이 그저 '자기 입맛에 맞게'를 강조한 것일 뿐, 꼭 '언론적인 것'을 말 그대로 회복하자는데 있는 것은 아닌 듯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언론종사자들의 자율적인 논의에 바탕을 둬야한다는 입장입니다. '달라져야 한다'는 것,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그 변화에 대한 언론내부의 합의 혹은 논의의 바탕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완고하게 발톱을 세워 자기 영역을 그어놓고, 사회적이고 공적인 논의를 미리 차단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민주사회의 정치적인 과정이라는 게 이해관계와 힘의 논리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왔듯, 그것에 관한 한 너무 무지막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신문종사자들도 언론의 본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그 과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종사자들도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현실세계에선 현실적 인간으로 행동하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으로 활동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런 현상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간혹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그 이중적인 기준이 부담스럽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이중적인 기준을 가끔 목도할 때마다, 주제넘게도 '언론적인 것'이 하찮아지고 보잘 것 없다는 부끄러움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좌절과 환멸의 바닥에서 굴러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그건 분명 혼돈입니다.
그러나 결코 아닙니다. 매 걸음마다 실망과 환멸, 그리고 모멸과도 만날지 모르지만, 그 현장은 변함없이 '언론인이 서 있을 자리'입니다. 거기엔 조건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쩌면 '달라져야 한다'는 그 말도 좌절과 환멸이 아니라, 새로이 겸손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인지 모릅니다. 이것으로 일단 올해를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