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24. 소설가 김시태
![]() | ||
| 장편소설 <조천, 1948>의 작가 김시태 | ||
#문학평론가에서 소설가로
김시태 작가가 4·3항쟁을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은 처음이다. 대학에서는 소설론을 가르치던 그가 소설「연북정」을 출간한 것은 문학평론 40여년만의 첫 '외도'인 셈이다.
김시태 작가는 제주시 조천면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1963년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현대문학」에서 평론 '시와 신념과의 관계'로 등단했으며, 「문학과 비평」주간과 '신년대'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1985년 평론집 「문학과 삶의 성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편집위원, 시문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현대시와 전통」(1978년), 「우리들의 간이역」(1994) 등 10여 편의 저서와 60여 편의 논문이 있다. 홍익대, 제주대, 한양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학교, 잡지사, 집을 오가는 생활에 젖어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시작했다." 소설「연북정」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 작가는 4·3 당시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조천중학원을 배경으로 4·3 민중항쟁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이 소설에 담았다.
「연북정」은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12년만에 완성을 본 작품이다. 탈고가 늦어진 까닭은 증인들로부터 집안 내력과 4·3의 진실을 들으면서다. 그때마다 써놨던 원고를 전량 폐기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사랑과 꿈·열정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 실화에 바탕을 둔 당시 인물상, 위기에 처해도 장렬하게 죽어간 행동주체들이 현대인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작가의 고민을 깊게 했다.
#'행동적 휴머니즘' 담은 4·3 소설
1948년 세상이 갑자기 바뀌고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갔다. 어느새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얘기는 써서 뭘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김 작가는 "그건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자기 삶을 밑바닥에서 되짚어보고자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김 작가 소년기의 기억을 담고 있다.
"당시 조천은 지식인 계층이 머물렀던 유배의 역사 때문에 내륙의 어느 지역 못지않게 지성적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서울이나 일본 유학생 출신의 교사들, 나이와 출신이 각기 다른 학생들이 함께 혁명과 미래를 논하면서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소설「연북정」의 주인공은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의 딸 지인숙과 해녀의 아들인 김현준이다. 조천중학원에서 만난 이들은 양반과 천민이란 신분의 차이를 넘어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사이다. 하지만 시대 상황은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4·3 민중항쟁에 뛰어들었다가 지인숙은 행방불명되고, 김현준은 형무소에 감으로써 비운의 파국을 맞는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지인숙은 실제 조천의 명문인 조천 김씨 집안의 딸이다.
그 집안의 후손인 김 작가는 4·3으로 고아로 지내다시피하면서 공부를 마쳤고, 그의 아버진 4·3때 경찰에 끌려가 비행기취조라는 걸 받고 평생 불구로 지냈다.
#"내 소설이 4·3을 다시 보는 계기 되길"
김 작가는 지난해 6월부터「연북정」의 개정판인「조천, 1948」으로 인터넷(한국디지털도서관. www.kll.co.kr)에 연재하고 있다. 거의 매일 3000자도 넘는 분량에 「연북정」을 새롭게 뜯어 고친 내용과 구성으로 독자들과 치열하게 만나고 있다. 지금까지 4·3 발생의 역사적 배경이 그려지고 있다.
그에게 소설 쓰기란 일종의 자기확인이다. 당시의 인간상이나 사회 재조명이 지금의 독자들에겐 먹히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들의 아픈 기억 4·3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조천, 1948」은 자신의 생을 마칠 때까지 쓰겠다는 각오다.
김 작가는 "4·3은 당대의 억울함을 넘어 한국의 정신사와 역사로서 필연성을 지녔으며, 당시 한국사회를 핵심적으로 드러낸 주민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며 "4·3의 희생자들이 탄압받되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장렬히 죽음으로써 역사를 빛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내 소설이 한국의 정신사와 4·3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