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25. 목수 송기홍

   
 
  ▲ 송기홍  
 
제주출신 건축가 김홍식은 민가(民家)를 '민중의 생활을 담은 주머니이자 그들의 삶을 휘감는 그릇'이라고 했다. 제주의 민가(民家)인 초가는 이렇듯 오랜 세월 인간과 동고동락해온 주거공간이다. 눈 덮인 초가지붕, 비오는 날이면 처마 밑으로 뚝뚝 듣는 빗소리. 그러나 초가는 이미 사라질 대로 다 사라져 이제 종족 보존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제주 초가는 70년대 들어서면서 외지인의 부동산 투기 등 산업화 물결로 그 원형이 급속하게 파괴돼 지금은 변형된 초가마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평생 제주 초가 짓기를 업으로 삼아온 목수 송기홍 옹(89?서귀포시 상예동)으로선 가슴 아픈 일이다. 여생을 제주 초가 모형을 재현하고 전수자를 양성하는데 바치고 있는 그에게 제주전통을 잇는 마음은 절박하다.

#'제주전통 초가 짓기' 외길인생
송기홍 옹은 청년시절부터 제주 초가 짓기에 뛰어들었다. 그가 초가건축기술을 따로 배운 건 아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초가 짓는 것을 어깨 너머로 엿보며 스스로 기술을 익혔다.
그에게 제주 초가는 척박한 기후에 대처한 힘, 제주에만 있는 특이한 가족제도 등 문화의 특이성이 육지의 한옥과는 전혀 다른 유형을 지닌다. 원초적 주거 미학을 간직한 제주 초가는 그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다른 지역 한옥이 공간배치의 계급성으로 인해 전근대적인 모습을 이루는 것과는 달리, 제주초가는 계급성이 없고 남녀공간 구분이라는 전근대성도 사라지는 등 제주 초가만의 특색을 지켜내려 애썼다.
그는 "제주 초가는 칼바람을 이겨낸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초가는 겹집이라는 이중 구조와 초가의 높이가 낮은 것으로 바람을 이겨내려 한 제주의 주택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겹집 형태로 초가를 만들어 바람을 제어했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흙으로만 채우지 않고, 외벽을 다시 돌로 이어붙이는, '덧벽'으로 불리는 이 구조로 드센 바람을 막았다. 지붕재료 역시 엮지 않고 쌓아 덮은 뒤, 바람에 날리지 않게 그 위에 띠로 꼬은 3㎝내외의 줄로 얽어맸다.
못을 쓰지 않고 끌과 대패질만으로 제주 초가를 조성했던 그는 서귀포에서 '송 목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제주시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다. 수백여 채의 제주 초가와 절을 지은 그는 많은 돈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제주 초가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의 업도 사향길을 걷는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제주 초가가 헐리고 가건물과 같은 슬레이트 지붕이 오르는 것을 보며 부아가 치밀었다. 제주도 지붕만 해도 바람과 싸우면서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지혜의 산물인데 말입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제주 전통초가모형으로 '제2의 인생'
초가 짓기로 외길인생을 걸었던 그는 80년대 중반 제주전통 초가모형 제작으로 제2의 인생을 걷는다. 다른 지역 관광지 민속공예점에서 전통가옥 모형을 파는 것을 우연히 접한 이후부터다. 거기서 그는 제주 고유의 민속풍물인 제주 초가가 헐렸으니, 제주전통 초가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실제 크기의 1/10, 1/20 식으로 초가 모형을 축소 제작했다. 초가 모형에 쓰이는 재료를 모두 자연에서 채집했다. 초가지붕을 잇는 집줄 재료를 벌초하고, 제주에만 있는 속돌은 돌담재료로 썼다. 초가 모형은 크기만 축소됐지, 실제 크기의 초가를 빼닮았다. 축소판을 제작하려니 문고리며, 창살이며 정교한 기교를 요했다. 톱날로 나무의 홈을 켜고 '빼빠질'로 거친부분을 다듬었다. 기둥, 문지방, 석가래, 용머루 등도 송 옹의 손에 의해 제작됐다.
초가 모형 1채를 제작하는데 꼬박 보름이 걸렸다. 1달에 2채, 1년해야 20여채 안팎인데, 초가 모형을 제작한 그해 100채를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했다. 하루 2시간 잠자고 나머지 시간을 초가 모형 제작에 바친 셈이다.
그가 제작한 제주 초가 모형은 일본, 독일, 미국에까지 건너갔다. 제주를 찾은 외국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제주 초가 모형제작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전수생들이 찾아왔다. 상예동 청년 10여명도 그에게 제작기술을 익혀 제주 초가 모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송 옹에게서 제주 초가건축기술을 익힌 아들 송석호씨(52?건축감리사)도 제주 초가 모형을 뜨고 있다.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임을 알았으면"
제주 전통 초가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다 보니 모형 제작에 애로점도 많다. 벽에 바르는 흙은 떨어지기 일쑤요, 창문살이 망가지는 일도 부지기수. 하여 본드와 못을 쓰는 피치 못할 상황을 맞기도 한다.
나이든 탓에 전통초가모형 제작이 힘들고, 귀마저 잘 들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아버지 곁을 송석호씨가 묵묵히 지키고 있다.
송씨는 "아버지는 제주전통 초가가 사라진 것을 항상 아쉬워했다"며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할 줄은 당신도 몰랐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아버지는 제주 초가는 모진 바람을 이겨낸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이란 걸 후손들이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수생들은 전통초가모형의 사라져가는 제주의 전통 초가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송 옹에 대한 전통기능보유자 선정이 우선 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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