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26. 사진작가 서재철

   
 
  사진작가 서재철  
 
  '한라산 수노루'란 별명의 사나이가 있다. 서재철 사진작가(63)다. 신문사 시절 한라산을 눈 깜짝할 새에 오르내리며 야생의 제주를 촬영, 쓰는 기사마다 족족 특종을 터뜨리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가 몇해전 폐교에 사진전문미술관을 열며 제2의 인생을 걷고 있다. 제주시 허름한 다방에서 첫 전시회(그룹전)를 연 뒤로 날아다니는 새로부터 땅 속 굼벵이까지 그의 뷰파인더를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을 정도다. 사력(寫歷) 40여년, 그는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예술가 이전에 기록자로 남고자 한다.

#'한라산 수노루'로 알려진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서 작가도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죽 한 그릇 먹기도 어려운 시절, 어린 내게 부자란 돈이 많은 자가 아닌, 쌀을 많이 소유한 자였다."

그런데 '쌀'보다 더 유혹적인 대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바로 산이다. 산을 알게 되면서 그는 산수의 빼어남을 담기 위해 67년부터 사진술을 배워야 했다. 그때부터 산을 '자기 집 대문 넘듯'하기 시작했다. 부종휴  '한라산 박사' 와 크로바사진관 사장, 고영일·신상범씨(카메라클럽) 등 사진작가들을 만나며 그들의 어깨너머로 사진을 배우게 됐다.

특히 그는 부종휴 박사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부 박사는 산, 동굴 등 대상들을 촬영해두라 하셨고, 특히 한라산에 대해 사진으로 기록해 두라고 누차 말씀하셨다."

그의 첫 개인전은 70년대 중반 제주시 한 다방에서 그룹전으로 열렸다. "그때「오름나그네」저자 故 김종철 선생이 내 사진('나무꾼')에 매료돼 매일 전시장을 찾으셨다. 나중에 그 작품을 선생에게 선물하자 당신이 무척 좋아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신문기자 재직시절(73년~97년)에는 한라산 전문기자로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그때 그는 기록자로서 '한라산의 꽃' 등 제주생태시리즈를 연이어 기획연재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라산의 꽃'은 10년 가까이 연재하는 한편 한라산 파괴현장도 줄기차게 보도했다. 그는 한라산을 집중 취재한 공로로 제주지역 최초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서울언론인상 등을 다수 수상했다.

그의 별명이 '한라산 수노루'로 불린 이유가 있다. 한라산을 관리하는 행정당국 관계자들이 한라산을 종횡무진하며 파괴현장을 찾아 '특종을 날리는' 기자의 순발력과 관찰력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생태다큐물 잇따라 출간

'한라산 전문 기자' 등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 그는 97년 여름에 신문사에 주저없이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인생길을 선택했다. "내몽고, 백두산을 여행하던 때였다. 칼바람이 부는 초원에 서 있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느냐 되묻게 됐다. 그러면서 이제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는 포토갤러리를 개관하고, 자유기고가로서 길을 걷게 됐으나, 일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을 겪는 와중에도 그는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제주전역을 돌아 별의 별것을 다 찍었다. 소년시절 '쌀 많은 사람이 부자'로 여긴 그에게 '필름 많이 보유한 자'가 부자인 셈이 됐다. 해녀, 새, 한라산, 오름, 곤충 등 그의 뷰파인더에 포착되지 않은 대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제주생태다큐'를 주제로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저술한 책만도 15권에 달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2004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옛 가시초등학교에 포토갤러리 자연사랑미술관을 개관, 사진기록물들과 관객들과의 만남을 잇고 있다.


   
 
  ▲ 서재철 작 ‘나무꾼’(1972년작)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

그는 현재 포토갤러리 자연사랑미술관에서 '추억의 7080 사진전'(3월30일까지)을 열고 있다.

그는 이곳을 찾는 관람객에게 가시초등학교의 옛 모습을 담은 '추억의 학교' 전시와 함께 60~80년대 제주사람들의 생활상과 마을풍경을 흑백사진 50여점에 생생하게 담아 전시하고 있다.

사진들은 60년대 말부터 촬영한 것들이다.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40년 세월이 훌쩍 넘었다"는 서 작가의 말처럼 삶의 풍경들을 찍기 위해 동분서주한 작가의 열정, 그리고 '시대의 기록자'로서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담고자 한 소명의식이 감상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온다.

그는 하루아침에 한라산 곳곳에 비싼 수입목 데크가 깔리고, 오름마다 계단이 생기면서 소중한 자연유산들이 파괴되고 있으나 그것을 지적하는 이가 없음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으며, 천연보호를 위해 심의과정의 엄격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서 작가는 "사진은 내게 인생의 전부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이 아닌, 기록으로서 사진의 가치를 알리는데 내 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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