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지키는 사람들> 28.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제주민속박물관을 47년간 일궈온 진성기 관장(75). 요즘 박물관, 정말이지 화려하다며 대화의 물꼬를 튼다. 진 관장은 번쩍이는 현대식 건물과 잘 꾸며진 실내·외 공간을 바라보노라면 아무리 제주 색 운운해도 제주가 아닌 것 같은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고고학 자료와 미술품, 역사적 유물, 학술적 자료 등을 수집·보존 진열하고 일반에 전시하는 곳'이라는 박물관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곳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는 어느새 박물관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진 관장은 아쉬움 반, 바람 반으로 속내를 털어놓는다. "한번도 박물관과 제주의 민속유물을 개인의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제주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공공의 업무를 내가 살아있는 한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제주의 유물은 전략적 차원에서 보존되고 관리돼야 한다. 사회적 양심에 의해 박물관의 미래가 정해지길 바란다." 반세기 넘게 제주의 문화유물 수집에 외곬으로 기울인 노력이 커다란 결실을 낳았다. 제주민속박물관은 전국에서 사립 박물관 1호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제주역사의 고된 흔적 오롯이

진성기 관장은 지난 64년 6월22일 제주시 건입동 1222번지에 그동안 수집된 450여점의 유물을 갖고 제주민속박물관을 설립, 그해 사설 제주민속박물관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12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화북주공아파트 건너편에 위치한 제주민속박물관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박물관이다. 역으로 말하면 민속에 관심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그만큼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제주민속박물관은 국내 제1호 사립박물관이다. 진 관장은 "제1호 사립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가진 의미는 첫 번째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오래됨으로써 그만큼 제주역사의 고된 흔적을 직접 몸에 새겨오고 품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만큼 박물관의 42년 행로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관장은 "박물관은 1964년 도 전역에서 수집한 민속유물 450점을 갖고 시작했다"며 "작은 규모였지만 당시 유일한 신문이었던 제주신문이 개관식 즈음해 도내 첫 박물관 개관 기사를 큼지막하게 보도한 것을 보면 그 의미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민속박물관은 1970년, 지금의 도민속자연사박물관 부지에서 3000여 점의 유물을 선보이며 한층 규모를 키웠지만 군부독재 시절인 1982년 도립박물관(현 도민속자연사박물관) 부지로 수용되면서 쫓겨나다시피 현재의 삼양동으로 자리를 다시 옮겨야 했다.

현재 제주민속박물관은 선인들이 사용했던 민속유물 1만 여점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외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벗어놓고 나간 듯 낡을대로 낡은 가죽버선이 묻은 때 그대로 간직돼 있고, 손때 가득한 애기구덕, 자식 다섯은 거뜬히 키워냈을 듯 낡을 대로 낡은 '태왁과 망사리', 소털로 만든 털벙것 등이 가득하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면 옛 생각이 절로 떠오를 법하다.

진 관장은 "박물관을 찾는 많은 이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140여기의 당신상을 모신 무신궁"이라며 "제주에는 마을마다 그 지역을 지켜주는 당신과 당이 있었고, 사람들은 거친 현무암에 당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것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 마당 오른 켠 일제히 늘어선 당신상들. 마을 주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던 신답게 그들의 표정은 저마다의 위엄으로 가득하다. 간혹 익살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눈, 코, 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소박한 선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후세들에게 제주 옛이야기 전해주고 싶다"

국내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에 자리한 만큼 박물관 역시 관광객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현대화된 시설로 눈길을 끌어 모으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진 관장은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번쩍이는 현대식 건물과 잘 꾸며진 실내·외 공간을 바라보노라면 아무리 제주 색 운운해도 제주가 아닌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진 관장은 "제주민속박물관은 화려하지 않아도 '고고학 자료와 미술품, 역사적 유물, 학술적 자료 등을 수집·보존 진열하고 일반에 전시하는 곳'이라는 박물관의 정의에 들어맞는 곳으로 설립 초기 취지를 잃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진성기 관장은 「제주말로 캐낸 올레집 옛말」발간을 앞두고 제주어의 진가를 세상에 알리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된 제주도학총서 전 30여권 완간을 눈앞에 와 있으며, 제주민속박물관 개관 50주년을 즈음해 (가칭)「제주민속박물관사」출간도 계획하고 있다.

진 관장은 "아무리 훌륭한 박물관이라도 옛 유물에 대한 역사적 해설이나 역사를 밝혀내야 박물관의 생명력이 이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엿 장사가 엿과 바꿔 얻은 철과 다를바 없다"며 "그런 의미에서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옛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연구작업은 내 평생의 업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은 "각 유물마다 생명체임을 인식하고 수집해 온 세월이 벌써 470년에 이르렀다"며 "현세인만이 아닌, 100년, 200년 후 후세들에게 제주민속유산에 대한 이야기 거리를 전해주는데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