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주CEO가 뛴다] 17. 강태선 동진레저 대표이사 사장
동대문서 시작…탐험가 정신 산행하는 마음으로 경영
4월부터 서울제주도민회장 맡아…제주 발전 적극 지원
강태선 사장은 경영철학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경영은 산행과 같다"고 말한다. 기업인이자 산악인,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갖는 그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사업은 물론 인생은 불변의 환경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높은 산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 있다. 방심한 채 걷다가는 크레바스(얼음 사이의 틈)에 빠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며, 뜻하지 않은 눈사태에 휩싸일 때도 있다. 정상에 도착했다고 마음을 놓아서도 안된다. 내려갈 때를 대비하고 유사시를 위한 비상용품을 비축해 놓아야만 하는 게 산행이다. 경영,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강태선 사장은 "창업은 탐험가와 같다"고 말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두드리되 미래를 염두한 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1971년 제주출신 청년이 서울로 상경한다. 그 시대 대부분 청년들이 그렇듯이 가난한 살림에 대학은 사치였다. 어머님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강 사장은 2년간 남대문에서 의류상을 하는 이모를 도우며 생산과 유통, 자재, 경리 등을 현장에서 익힌다.
탐험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두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남대문 시장에 군수용 등산장비를 파는 곳만이 있었을 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등산장비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나 강 사장은 경제발전과 함께 등산용품 시장이 커질 것을 예측하고, 본격적인 등산용품 장사에 뛰어든다. 제대로 된 등산용품을 만들겠다는 목표의식까지 더해지면서 창업한 것이 바로 동대문인 종로 5가에 등산용품 전문점 '동진산악'이다. 강 사장 나이 20대 중반, 10평의 공장과 3평짜리 매장에서 동진레저는 출발했다.
#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걷기 쉬운 평지가 있다가도 험난한 오르막과 깊은 계곡이 있고 눈사태에 생명의 위험마저 느낄 수 있는 게 산행이다. 강 사장은 "산을 오를 때 변화무쌍한 환경이 있듯 시장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며 "그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정상에 도착하듯이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점차 등산 인구가 늘어가면서 동대문 시장은 등산용품 전문거리로 차별화되며 성장하게 된다. 1982년에는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야간 산행도 성행, 등산업계에는 봄바람이 불었다. 강 사장 역시 산악장비 전문매장으로 산악인들의 호응을 얻으며 성장해갔다.
그러나 1980년대 한국경제 성장, 88올림픽 등과 맞물려 성장을 이어오던 스포츠업계는 타격을 입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산행의 원리와 맞물리는 셈이다.
1992년 산에서의 취사와 야영이 전면 금지되면서 등산용품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강 사장은 "당시 등산용품업계 70%이상이 문을 닫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며 "동진레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강 사장은 "히말라야에서 맞닥뜨린 눈사태와 같이, 이를 이겨내야 하는 시기였다"고 말한다.
# "자전거를 타듯이 멈추지 마라"

강 사장은 "기업은 자전거 타듯이 타야 한다"고 말한다. 자전거를 타다 멈추면 쓰러진다. 자전거는 전진할 때만 바로 서있을 수 있다.
어려운 시장 상황 속 강 사장은 힘을 얻기 위해 히말라야 등반을 택한다. 그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산을 오르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산행에서 등산의류 시장 진출이라는 해법을 모색했다. 당시만 해도 등산용품 시장은 90%에 달했지만 등산의류시장은 10%에 불과할 때다. 당연히 아웃도어는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패션감각과 기능적인 면을 더한 아웃도어 의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리고 티베트 산속에서 등반장비를 지고 가는 블랙야크로 시선이 갔다. 히말라야 흰눈 속에서 검은 털을 빛내며 묵묵히 걷는 블랙야크는 산악인에게 더없이 필요한 존재. 함께 길을 나섰던 산악인 엄홍길씨 역시 브랜드 이름으로 블랙야크에 의견을 같이 했다.
한국아웃도어에 패션 감각이 어우러진 블랙 바람을 불고 온 블랙야크의 탄생이 이뤄진 것이다.
이후 수많은 업체가 부도를 맞았던 1997년 외환위기(IMF) 속 또다시 시련을 맞기도 했다. 악재 속에서도 다시 미지의 세계인 중국 진출을 감행, 내리막과 오르막을 오르내린 끝에 현재 중국 내 직영 매장 15곳 및 백화점 입점이라는 안정적인 시장 개척을 이어가고 있다.
# "고향 제주에 자부심"
바쁜 와중에도 강 사장은 기업인을 떠나 산악인, 제주인으로서 사회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503개 단위 산악회가 가입한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을 10년간 역임하며 서울시장기 암벽대회, 티베트 등산협회와 자매결연, 국제볼더링 대회, 북한산 산악인합동추모비건립 등 수많은 일을 치러냈다. 북한 나무심기, 폐휴대전화 수거, 독도아카데미교육사업 등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왔다.
세계 여성산악인 최초 8000m급 히말라야 14개 봉우리 완등에 도전하는 한국의 오은선씨의 도전 뒤에는 세계적 산악인을 키워내기 위한 블랙야크의 지원이 있다.
그러나 강 사장의 가장 큰 관심은 태어나고 뛰어놀던 고향 제주, 산을 알게 해준 한라산이 있는 제주다. 제주가 고향임에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는 그다. 서울제주도민회 부회장직으로 수년간 활동해왔으며 이번 4월부터는 2년간 서울제주도민회 회장직을 맡게 됐다.
그는 취임과 함께 제주와 정부, 서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통해 제주에 득이 되는 도민회, 현안사업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도민회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 한라산의 또다른 가치
제주의 발전 비전을 묻는 질문에 강 사장은 "무엇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제주의 특성상 국제자유도시라는 구호와 달리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갖고 국제적 마인드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강 사장은 "제주 청소년들이 큰 꿈과 포부를 갖기 위해서는 외부의 다양한 자극이 필요하다"며 "외부강사 등을 제주로 초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제적인 흐름을 알려주고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사장은 한라산의 또 다른 진가를 모두가 놓치고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이제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줄줄이 배출한 산악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그 배경에는 1950년대부터 이뤄져온 한라산에서의 산악훈련이 뒷받침됐으며 한라산을 거치지 않고서는 세계로 못나간다는 것이 강 사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산악인 고상돈, 오희준씨 등이 제주출신이라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강 사장 역시 한라산 덕분에 산과 친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고산운동, 산악운동의 시초는 한라산"이라며 "국내 산악운동의 역사를 연도별로 정리하고 박물관 건립 등을 통해 알린다면 세계 산악강대국이 된 한국의 시초가 제주, 한라산이었음을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 강태선 동진레저 사장은 강태선 동진레저 대표이사 사장(61)은 서귀포시 예래동 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탐라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경영대학원,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MBA(석사), 고려대 경영대학원 BMP 등을 수료했다. 8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서울시 산악연맹회장을 비롯해 ㈔한국스카우트서울남부연맹 연맹장, 자연보호중앙회 명예총재 등으로도 활동했다. 산악활동으로는 1993년 히말라야 초오유(8201m), 시사팡마(8012m), 1997년 칸첸중가(8586m), 안나푸르나1봉(8091m), 2000년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대 엘부르즈(5642m) 등을 등정하기도 했다. 2003년엔 세계최초로 티벳을 출발, 에베레스트 정상을 거쳐 네팔로 하산하는 에베레스트(8848m) 종단등반에 성공했다. 산악활동 및 각종 사회봉사활동으로 서울시 문화상, 한국스카우트연맹 무궁화 금장, 대한민국 체육상, 서귀포시 자랑스러운 시민상, 환경부장관상, 서울산악봉사대상 등을 수상했다. |
박미라 기자
sophia3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