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 언론인

   
 
   
 
도지사 선거에 관한 한, 우리는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런 굴절된 선거체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육감, 도의원 선거 역시 다 그렇습니다. '깨끗한 선거'를 위해 언론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거체험에서 과연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깨끗할 수 있는지, 그것을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선거는 깨끗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선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선거는 유권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일꾼'을 뽑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차라리 회의적입니다. '일꾼'을 뽑는 이상적인 정치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민의의 조작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자기 지배의 원리'가 이미 이념에 불과할 뿐, 현실에 있어서는 그 본래의 의미가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됐다고 하더라도, 선거는 변함없이 우리의 민주적 정치수단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걸 믿어야 합니다. 선거가 비록 여러 가지 요인으로 얼룩진다고 하더라도, 우리 고장의 유권자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질 면에서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걸 제민일보 4월13일자 '동창·향우·친목회 선거 개입 안 한다'에서 읽어냅니다. 도내 26개 동창회와 향우회 종친회가 '선거개입 차단 및 정책선거 실현을 위한 공명선거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부정과 타락으로 얼룩졌던 과거의 선거체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권자들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저 단순보도에 그치고 만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기사 크기야 편집자의 고유권한이어서 그런다고 치더라도, 좀더 비중있게 다루고, '깨끗한 선거'의 의지를 담아 그 의미를 짚었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랬어야 합니다.

언론이 앞장 서 '혈연·지연·학연'의 관성에 과감히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히 사적인, 그리고 베일에 덮인 그 구조의 허구성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영역을 그어놓고 발톱을 세우고 있는 그 완고한 오류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점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선거에 있어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언론의 존재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거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투표행위가 유권자의 신념에 근거한 구체적인 행동임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투표행위가 그들의 정책선호도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의 폭이 어느 정도이며, 그것이 바로 선거쟁점으로 이어졌는가 하는 평가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일 이때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이 주된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네거티브 전략에 좌우되거나, 이른바 혈연 지연 학연의 제1차적 집단감정이 그것에 개입될 경우, 우리는 선거를 통한 '자기 지배의 원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이야기 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이 기회에 그 흔한 캠페인이라도 펴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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