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주CEO가 뛴다] <22>고정배 ㈜정록 대표이사

돈육가공, 수도권 시장·수출 공략...서초, 일산 등에 판매장, 직영식당 등 운영
구제역 등 외부환경으로 수출 좌절 커…제주산 고급 소시지, 햄 생산 필요
관광객 대상 집적화된 마케팅이 열쇠…관광특산품, 수출 효자 노릇 할 것

㈜정록은 양돈육 가공업체로 주 무대는 수도권이다. 불로포크와 제주돈마씨 브랜드명으로 서울과 경기도 등을 공략, 제주산 돼지고기에 대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 고정배 ㈜정록 대표이사(45)는 제주중, 오현고, 한양대 공대를 졸업했다.  
 
# 평범한 회사원에서 돈육가공업체 대표로

고정배 ㈜정록 대표이사는 사실 축산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광령에서 양돈농장을 운영하셨지만 고씨는 한양대 공대를 나왔다. 졸업 이후에도 서울에서 전공을 살려 대기업을 다니며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았던 그다.

애초 축산업, 돈육 가공업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사업을 할 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형과 베트남에서 모자공장을 설립, 운영했다. 사업도 꽤 잘됐지만 1995년께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 농장을 돕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고 대표는 "농장으로 들어와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며 제대로 된 노동을 했다"며 "회사 생활만 했던 터라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 가르침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문제는 힘든 농장일이 아니라 사료 값보다 낮은 돼지 값이었다.

고 대표는 "1995~1996년 당시 제대로 된 돼지 값을 받지 못하면서 양돈농가는 오히려 빚만 늘어가는 양상이었다"며 "특히 유통에도 문제가 있었다. 차라리 직거래를 하자 싶어 직접 거래처를 알아봤다"고 밝혔다.

서울로 와서 거래처를 뚫은 고 대표는 돼지를 직접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서울로 이송하기 위해 돼지 100여마리를 실은 차가 전복이 되는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직거래를 통해 유통은 투명해졌지만 이동 중 돼지가 죽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사고 위험성이 너무 컸다. 이에 고 대표는 차라리 가공공장을 제주에 만들기로 한다. 가공공장을 만들었으나 외환위기(IMF)와 겹치면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이어졌다. 어떻게든 거래처를 뚫고 활성화 시켜야 했다.

고민 끝에 대형마트에 납품을 시도하기로 한다.

고 대표는 "당시만 해도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사례가 별로 없었다"며 "그런데 부천의 한 까르푸 매장에서 직접 시식, 판매에 나섰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특히 육지부는 껍질 없는 돼지를 먹었는데 당시 우리는 껍질 있는 제주돼지고기를 판매했다. 오히려 제주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비싸게 잘 팔렸다"고 밝혔다. 까르푸에서 반응이 좋자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도 납품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 제주돈마씨  
 

# 2차 가공식품 생산해야할 때

고 대표는 처음부터 육지부와 수출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힐 생각이었다. 굳이 넓은 수도권 시장을 두고 이미 기존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제주 시장에서 다투고 싶지 않았다. 현재 정록에서 생산, 유통되는 물량의 97%가 육지에서 소진된다.

때문에 고 대표의 주 생활무대는 서울과 경기도 인근이다. 현재 서초동에 판매장이 있고, 일산에는 350석 규모의 직영식당('제주돈마씨')을 운영 중이다. 9월께에는 일산 화정 인근에 직영점 오픈을 계획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 대표의 진짜 포부는 남다른데 있다. 2차 가공공장을 설립, 제주산 돼지고기를 원료로 한 고부가가치 햄, 소시지 등 2차 가공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2차 가공식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불을 붙인 것은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매번 좌절되는 돼지고기 수출 문제도 적잖은 계기가 됐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을 상대로 한 제주돼지고기 수출은 꽤 괜찮은 장사다.

그러나 수출이 제대로 될라치면 심심치 않게 육지부에서 터지는 구제역, 콜레라 등으로 수출이 중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고 대표는 "수출을 위해 모든 준비를 철저히 했는데 갑자기 육지부에서 발생하는 구제역 등으로 수출길이 막히면 너무 허탈하고 김이 빠진다"며 "그래서 구제역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2차 가공품 생산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시장 역시 언제까지 생고기만 구워먹을 것인가"라며 반문한 고 대표는 "청정 제주의 좋은 원료로 고급화된 햄, 소시지를 만들면 또 다른 제주 관광 특산품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원산지 둔갑 철저한 관리 필요

수년에 걸쳐 고민해온 듯 이미 고 대표의 머릿속은 2차 가공품 생산 계획으로 가득한 듯 했다.

고 대표는 "개인이 소규모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뜻 있는 업체들이 함께 모여 법인을 만들고 규모화해야 하며 중앙정부와 도 차원에서도 공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대기업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일반적인 유통망을 따른다면 홍보와 유통 부문에서 대기업과 경쟁해 이길 수 없다"며 "제주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집적화된 홍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제주를 찾는 관광객만 600만여명. 1000만 관광객 시대도 꿈이 아니다. 이들만 대상으로 제주산 돼지고기를 원료로 한 소시지를 알려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게 고 대표의 생각이다. 더욱이 한라봉처럼 제주관광특산품으로 사갈 수 있게끔 전략을 짠다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채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제역과 같은 외부적인 환경에서 구애받지 않은채 수출도 가능하다.

고 대표는 이러한 모든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주돼지고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제주산으로의 둔갑을 피해야 한다"며 "제주산 돼지고기만의 맛, 인지도를 높여야 (가공식품을 생산해도)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 차원에서의 철저한 원산지 관리 등이 필요하며 생산이력제 등을 통해 유통망 역시 투명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의 대화에서도 정부차원에서 지원해줄 것을 주장했다"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귀찮은 일, 어려운 일을 해야 미래가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박미라 기자 mrpark@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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