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연 독서강사
 
어쩌다 보니 올해 상반기에는 주말조차 휴식을 취해볼 틈 없이 보냈다.
휴가를 맞아 남해안 지역 가족여행 계획을 세웠더니 이번에는 태풍이 북상중이란다. 맥도 빠지고 무얼 할까 고민하다 혼자 절에서 참선의 시간을가지기로 했다.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스무 살 되던 해다. 대입 학력고사를 마치고 방황과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그나마 공부를 열심히 했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 생각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너만 열심히 하면 대학 보내줄게"라는 부모님의 한마디 말씀을 간절하게 원했었기에, 그런 말씀조차 아끼셨던 부모님이 너무도 야속했다.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낮게 나온 성적을 부모님 탓으로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 힘든 것은 노력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그런 방황의 시기에 나를 잡아끈 것은 에메랄드 빛 중문바다였다. 매일 날이 밝으면 바다로 걸어갔고, 모래사장에 앉아 온갖 생각들을 하다 오후 늦게서야 귀가하곤 했다. 집에 와서는 노트에다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썼다.

부모님께서는 귀한 딸을 잃게 될까봐, "재수시켜주마" 라고 안심시켰다. 그래도 마음속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부터인가 내 손은 글을 쓰는 대신에 책을 들고 있었다. 그 당시 접했던 책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스님의 맑은 정신이 내 머리 속으로 전해지는 느낌과 함께 전율이 느껴졌다. 무소유의 삶이 오히려 풍요로운 삶임을 배우게 해줬다. 겨울 내내 법정 스님 책들을 읽어 내리며, 마음 속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그렇게 내 스무 살 방황을 아름답게 승화시켜주신 분이 바로 법정 스님이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려니 시작되는 알을 까는 고통의 순간, 법정 스님의 맑은 말씀으로 나 자신을 다듬을 수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알게 해주셨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방향을 잡아주셨다.

조금씩 방황이 잠재워지고, 난 새로운 나의 미래 모습을 그렸다.

"세상에 빛이 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겠노라고……."

이제 세월이 흐르고 인생의 중반기에 또다시 알을 까고 나오는 고통을 느낀다. 이 심한 열병은 무엇으로 치유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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