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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진상품서 ‘대학나무’…제주 대표 농작물로[제주 감귤산업 100년]
강승남 기자
입력 2011-01-02 (일) 16:49:03 | 승인 2011-01-02 (일) 16:49:03

   
 
  ▲ 1960년대 감귤원 초기 조성 모습  
 

일제강점기 온주밀감 도입 100년 흘러
과거 진상품 위해 재배 고통 주던 나무
과잉생산·수입개방 등 위기극복 과제도

올해는 노지온주 밀감이 도입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초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감귤발전 100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사업을 대폭 축소키로 하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제주감귤산업의 지난 100년간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고통을 주던 감귤나무

제주의 감귤 재배 역사는 1000년 이상. 특히 고려 문종 6년(1502년)에 탐라국에서 조정에 바치는 귤의 물량을 개정한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공물을 바쳤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제주에는 수많은 감귤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감귤나무는 제주도민에 있어 '고통을 주는 나무'였다.

주로 조정에 진상품을 올리기 위해 재배됐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중앙정부가 제주도에 대한 강한 통치력을 행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책으로 이어졌다. 즉, 태조 원년(1392년)의 제주향교 설치, 태조 3년(1394년) 우마적의 작성, 태종 4년(1404년) 노비적 작성, 태종 8년(1408년) 제주에 공부(貢賦)를 정한 것 등이 지방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제주에서 진상한 감귤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진상 물량의 증가와 지방관리 등의 횡포로 그 민폐가 막심했다. 결국 감귤원을 맡은 농민들은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게됨에 따라 일부러 나무에 더운 물을 끼얹어서 고사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같은 진상제도는 고종 31년(1893년)에 폐지됐지만, 제주도민들은 소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귤재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 프랑스 출신의 신부 타케가 제주에 도입한 온주밀감나무. 서귀포시 서홍동 소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원 ‘면형의 집’에 심었던 것 중 한 그루가 아직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전후 전환기

제주감귤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전환기를 맞는다. 경제적 소득을 목적으로 감귤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

개량감귤은 한말 정치가인 박영효에 의해 도입됐다고 전해진다. 그가 제주유배 당시 일본에서 개량감귤을 들여와 과원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제주에 유배된 박영효는 1년후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1910년 6년까지 제주에 머물며 감귤재배를 제주인들에게 권장했다.

지금의 감귤 주산지인 서귀포지역에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한 인물은 프랑스 출신의 신부 타케(Esmile J. Touguet·한국명 엄탁가). 그는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꽃나무를 일본에 있는 친구에 보내주고 그 답례로 보내온 온주밀감(미장온주) 15그루를 받았다. 그는 이 감귤나무를 서귀포시 서홍동 소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원 '면형의 집'에 심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지금도 살아있다.

이 시기 도입된 개량감귤이 규모를 갖춘 농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서귀포에 살고 있던 일본인 '미네'에 의해서였다. 그는 1913년 온주밀감 2년생 묘목을 도입해 식재하고 본격적인 농장으로 출발했다. 이 농장은 해방 이후 '제주농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1920년부터는 매년 7000~8000그루의 우량 품종을 일본에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생활상태조사'에 따르면 1928년 제주 감귤 생산량은 약5만관(1관=3.75㎏)이었다. 감귤이 주요 농산물은 아니지만 제주도민들의 생활수입원으로 서서히 주목되기 시작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 정책과 맞물려 급성장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주요 재배종인 온주밀감이 도입되긴 했지만 30여년동안 재배면적 증가는 극히 부진했다.

광복이 된 1945년 감귤재배면적은 16㏊, 생산량은 80여t에 불과했다. 당시만해도 감귤원 개원은 고도의 기술과 상당한 자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일반 농가는 감귤나무를 심을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들어 제주감귤산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재배면적만 보더라도 1963년 100㏊에 이르렀으며, 이후 1968년부터는 매년 1000㏊씩 증가해 1975년 1만㏊를 넘어서게 된다.

이는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55년부터 외국산 감귤의 수입금지로 '대학나무'로 불릴 정도로 수익성이 보장되면서 감귤재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1964년 2월 연두순시차 제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수익성이 높은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자 이듬해 정부는 '감귤주산지조성 5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정부주도로 모든 개발이 집행되던 당시의 상황에서 감귤재배의 또 다른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주도내 감귤재배면적은 1990년 2만㏊를 넘어서게 된다.

또 감귤 생산량도 1970년 5000톤에 불과, 사과·배·복숭아·포도·단감 등 5대 과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지만 5년 후인 1975년 사과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제2과수가 됐다. 이후 사과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1997년부터 감귤은 우리나라 제1과수가 됐다.

   
 
  1990년대 이전의 나무상자에 붙이던 표전. ‘蜜’을 ‘密’로 잘못 표기했다.  
 
#수입개방으로 위기 맞아

제주도민의 주요 소득원으로 자리잡은 감귤산업은 그러나 과잉생산에 의한 가격폭락 현상이 나타나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결과 외국산 감귤이 수입되면서 수익성이 타 작물에 비해 나을 것이 없어지는 등 위기에 직면했다.

실제로 2002년 역대 최고인 78만8679t이 생산되면서 가격폭락으로 이어졌다. 이에따라 휴식년제 실시, 열매솎기, 간벌 등 생산량 감소사업이 추진된다.

제주감귤은 앞으로도 수많은 도전과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동안 비교적 '호황'을 누려온 탓에 고품질 감귤 생산과 출하조직 정비, 조직간 협력시스템 구축, 수출시스템 부재 등 감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해결노력은 미흡하다.

감귤 농가중 60세 이상이 1만9626명으로 전체의 63%를 차지하면서 제주 감귤산업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우려가 있으나 고령화 대응 대책수립은 요원하기만 한 실정이다.

제주감귤 수출은 생산·수확·선과·수송·마케팅 등 모든 부문서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제대로된 수출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감귤에 적용하는 품질 기준이 있으나 과학적이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기준이 아니라 관행적인 기준에 그치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고려한 합리적인 기준 설정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감귤산업의 안정과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적정 생산량 유지와 고품질 감귤생산, 수출시장 다변화, 유통·마케팅 강화, 품종 육성 등을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승남 기자 ksn@jemin.com

<감귤산업 100년 발자취>

476년  탐라국, 백제에 토산품을 바침
1052년 고려조정에 바치는 귤의 정량 개정
1893년 귤 진상제도 폐지
1898년 김병효 하귤종자 파종
1908년 박영효가 도민들이 귤나무를 베어내지 못하도록 함
1911년 프랑스 출신 타케 신부 온주밀감 15그루 식재
1911년 김태진씨 온주밀감.워싱톤 네이블 재배 시작
1913년 일본인 미네씨 온주밀감 2년생 식재 감귤농장 출발
1955년 외국산 감귤 수입금지
1964년 박정희 대통령 감귤재배 장려 지시
1965년 정부 감귤주산지조성 5개년 계획 확정
1967년 국립 제주대학교에 감귤 연구.교육 위한 원예학과 설치
1972년 감귤 생산량 첫 1만톤 돌파
1978년 국내 최초 감귤과립음료 '알알이' 출시
1981년 제1회 감귤아가씨선발대회 개최, 도청 산업국에 감귤과 신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1996년 감귤 조수익 첫 6000억원 돌파
1998년 감귤 재배면적 2만5823㏊ 사상 최대 기록
2003년 농림부 감귤유통명령제(제주지역) 발령
2007년 한·미 FTA 타결

                                   (자료 제공=제주감귤클러스터혁신위원회 연구기관 제주대학교 「감귤산업발전사」(2008))

강승남 기자  sti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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