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수 변호사>

   
 
   
 
우리 민법은 부부가 이혼하기 위해서는 협의이혼과 재판상이혼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협의이혼은 말 그대로 부부가 서로 이혼에 관해 협의가 이루어진 경우 법원의 확인을 받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오전에 협의이혼 신청서를 접수하고 오후에 판사의 확인을 받아 이혼이 성립되는 초고속(?)이혼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혼숙려 제도를 도입하여 미성년 자녀들이 있는 경우 3개월, 그 외의 경우에는 1개월의 기간이 지나야만 이혼이 가능해졌다.

또 다른 이혼 방식인 재판상이혼은 부부간에 이혼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이루어진다. 재판상이혼은 협의이혼가 달리 재판상 이혼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민법은 위와 같이 재판상 이혼사유를 두고 있을 뿐 이혼에 있어 귀책사유가 있는 유책배우자도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명시적으로 금지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현재 대법원의 입장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이 났음에도 상대 배우자가 혼인계속의 의사가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판결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갑과 을이 1998년 결혼을 했는데, 두 사람은 결혼 초부터 생활방식차이로 갈등을 빚었고 을이 학력을 속인 것이 들통 나고 2002년부터는 갑 역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등 둘의 결혼생활은 제대로 지속되지 않았다.

2003년부터는 별거를 시작했는데, 별거 중에도 갑은 계속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2006년에는 을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갑은 별거 후 을과 자신의 아들에게 지급해오던 생활비도 더 이상 주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을과 을의 아버지는 갑이 일하는 직장에 찾아가 갑의 외도사실을 알렸고 갑은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 났다."며 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이에 1심은 "부부사이의 혼인관계가 파탄됐다고 해도 갑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이므로 갑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은 "을이 오기 또는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을 거부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민법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고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돼 재결합 가능성이 없는데도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이에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혼인관계가 사실상 실질적으로 파탄돼 재결합의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이혼청구를 인용한 것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결국 유책배우자의 경우에는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하기 전까지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혼인생활이 파탄 난 부부를 판결로 이혼을 금한다고 해서 부부가 다시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재산분할, 자녀들에 대한 양육 및 양육비 등 제반 문제에 대해 상대방 배우자에게 불합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점차 완화하여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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