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의 투명인간) 5. 술로 사는 사람들
개인문제 치부 관리 어려워…중독자 벗어나기 도움 필요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는 일어서질 못했다. 주변 물건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다시 넘어졌다. 바닥을 기던 그의 눈썹과 볼에는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사람들을 그를 그냥 지나쳤다. 보지 못한게 아니라 보기 싫었던 거다. 무관심은 그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다.
10일 낮 제주시내 한 골목길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체취와 호흡만으로도 오랫동안 술과 담배에 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배 있어?" 올해 56살이라는 그는 기자를 만나자 담배를 찾았다. 술은 더 이상 못마시겠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낮 1시께까지 소주 11병을 마셨다니 그럴만도 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주워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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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그가 묵는다는 여인숙을 알아냈지만 그는 방을 찾지 못했다. 여기가 집이라며 방문을 열었다가도 "여기가 아니"라며 문을 닫았다. 기자의 부축을 받으며 1층과 2층을 수차례 오르내렸다. 집찾기를 포기한 그는 술을 깨야겠다며 인근 벤치에 앉았다.
이처럼 도내 곳곳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지만 매일 술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매일 혼자서 폭음을 하며 몸과 마음이 병들다 일부는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지난 9일 오전 7시35분께 집문을 걸어 잠그고 폭음을 하던 A씨(65·여)가 숨진채 발견됐으며 지난 5일 오후 10시께에도 제주시 모 숙박업소에서 매일 술을 마시던 B씨(47)가 방안에서 숨져 있는 것은 주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또 같은날 오후 4시33분께에는 제주시내 한 여인숙에서 매일 술을 마시던 C씨(48)가 숨진채 발견되기도 했다.
여인숙 관계자는 "한달 숙박비가 15만원이다. 오는 사람들 대부분 돈이 없고 술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며 "적게 먹는 사람은 하루 5병, 많게 마시는 사람은 20병도 마신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알코올상담센터에서 알코올중독 등으로 관리하고 있는 인원은 150여명에 이른다. 일반 상담 건수도 지난해 461건, 올해 현재까지 52건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한채 혼자 술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사회분위기가 음주 행위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면서 관리 자체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상담센터에 다니며 알코올 중독자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는 D씨(48)는 "지난 1999년 이혼 이후 가장 많이 마신게 2달동안 소주 320병을 마셨다"며 "중독자가 되면서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집을 세채는 샀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아직도 도내 곳곳에서 자신이 중독자인 줄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싶다. 금주를 하기 위해선 주변사람들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은 기자 kde@jemin.com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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