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13>추자초등학교

▲ 추자초등학교 본교 교정 전경
공립보통학교로 출발…완도군과 사수도 분쟁
무동력선 타고 해산물 캐와 학교발전기금 내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아이들만 다니는 심상학교 건너편에 우리가 다니는 보통학교가 있었지. 일본아이들이 보는 책은 우리랑 재질부터 달랐고, 우린 일본인 교장이 부르면 매일같이 맨발에 제식훈련을 해야했어" 풍선(무동력선) 때부터 사수도로 잠녀들을 실어날랐다는 원용순 선장(79)이 기억을 더듬어 말을 꺼낸다. 원 선장의 기억은 순식간에 60~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통학교(공립국민학교)에 자녀를 보내던 대서리와 영흥리 등 추자도 사람들은 어려운 섬 사정으로 학교에 낼 돈이 없었다. 학부모와 학교를 살린 것은 '사수도'였다. 당시 해녀들은 무동력선을 타고 사수도에 가서 캔 해산물을 팔아 학교에 돈을 내면서 1960년대 이후 추자초등학교의 운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쳐왔다. 해녀들은 1~2년을 기한으로 입찰을 거쳐 일정한 돈을 내고 사수도 채취권을 얻어 왔고,  지금은 예전보다 의존도가 미미하긴 하지만 하나의 '전통'이 되어 학교발전기금형태로 남아있다.

  # 추자공립보통학교로 출발

추자도에서 학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1925년 9월1일 문을 연 추자초등학교의 전신 추자공립보통학교이다. 설립을 위한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연혁이 나와있지 않다. 다만 1863년에 작성된 '모연문'(募緣文)에 이어진 글을 보면 사람들의 이름 아래 몇 전(錢)이라고 기부 금액을 적어 놓아 추자도 주민들이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계해년에 시작해서 병인년까지 계속된 이 모금사업에는 당시 추자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방에 나가 살고 있는 사람들, 전라남도의 여러 지역과 섬 이름도 적혀 있어 섬들끼리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서로 연대하고 부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 이름을 관해재(觀海齋)라 했는데, 설립년도나 운영방법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후에 일신재(日新齋)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추자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연혁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일신재중수기(日新齋重修記) 등 문헌에 의하면 이 고장은 예로부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문을 좋아하고 예의를 숭상하며 후손들에게 그 전통을 이어주기 위한 학교 건립에 뜻을 모아 오다가, 신교육 사조가 확산되면서 송주성, 김태동, 김제성 3씨가 유배되어 영흥리 박치효씨 사랑에 적거하면서 대서리에 김상진씨를 초대 교장으로 광흥학교를 설립했다. 하추자 묵리에는 김덕민씨를 초대교장으로 개성학교를 설립했으나 1910년 한일합방으로 개성학교는 폐지됐다.

이에 따라 상추자에만 사립학숙식으로 교육해오다 1925년 6월3일 추자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그해 9월1일 4년제 2학급으로 개교했다. 1938년 추자서공립심상소학교, 1944년 추자서국민학교, 1948년 추자공립국민학교, 1949년 추자국민학교, 1996년 추자초등학교로 각각 개칭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8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12학급 647명까지 큰 규모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본교 6학급 57명, 신양분교장 3학급 25명으로 줄었다.

횡간분교장은 1951년 설치 인가되어 교육을 해오다 학생수 감소로 1991년 폐교됐으며, 1969년 개설된 추포교습소는 그보다 앞서 1983년 문을 닫았다.

신양분교장은 1923년 11월 사립 진영(振英)학교로 설립한 것을 추자공립보통학교 분교 형태로 변경, 1925년 함께 개교한 후 1941년 6월 신양공립국민학교로 문을 열었으나 1999년 학생수가 35명으로 감소해 그해 9월1일자로 분교장으로 격하됐다.

  # 사수도(泗水島)를 사수하라

원 선장의 기억에서 등장하는 '사수도'는 추자도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는 무인도다. 완도군과의 관할권 분쟁 속에서도 추자초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똘똘 뭉쳐 지켜낸 섬이기도 하다.

추자면 예초리 관할 섬으로 여겨졌지만, 지난 1979년  전남 완도군이 사수도를 장수도로 이중등록하면서 갑자기 관할권 논란의 중심이 됐다.

사수도를 지키기 위해 2005년 11월 옛 북제주군이 완도군수를 피신청인으로 사수도 관할권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데 이어, 추자면 주민 1878명은 2008년 8월11일 헌법재판소에 탄원서를 접수했다.

▲ 박철규 선생 송덕비
추자주민들은 탄원서를 통해 사수도가 추자도의 관할권임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료와 함께 추자초등학교 운영위원회의 소유로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제시했고, 헌재는 2008년 12월26일 '사수도 관할권에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다'는 판결을 통해 추자도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앞선 1967년 제주세무서에 계약금액 10만5000원으로 매입 등기한 추자면 대서리 출신 박철규(朴哲奎, 1917~1983) 추자초 교장은 박병술 학부모회장 및 학부모들과 함께 지상권을 선점하기 위해 1961년 흑송 1000그루를 심었고, 1962년 다시 1000그루를 심는 등 사수도 지키기에 나섰다.

이후 사수도는 추자초 육성위원회 소유재산으로 등기, 추자초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해초 및 패류 채취권을 추자도 해녀들에게 임대해주고 그 수익금은 추자초 발전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각자 박 교장은 1951년부터 추자초에서 3대, 신양교에서 2대에 걸쳐 재임하는 등 20년간을 상추자·하추자도를 오가며 교장으로 근무하며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83년 박 교장이 타계하자 추자도민들은 1994년 3월 학교 교정에 '박철규선생 송덕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 주민과 함께하는 학교

▲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섬을 지키기 위해 학교와 지역이 협력해온 역사적 기억은 현재의 교육에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강사로 나서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도서관 사서로 자원봉사하며 책을 읽도록 격려하는 것은 추자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멀리 떨어진 섬이라 외부강사를 많이 초청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추자 주민들의 학교교육 참여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매주 목·금요일마다 추자초 학생들에게 '추자걸궁'을 가르치고 있는 대서리 출신의 고광찬 추자면민속보존회장(42회·58)은 사라져가는 추자의 전통문화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정월초하룻날 한 해의 액운을 없애고 무사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를 비롯해 섣달그믐날 동산에 올라 동서남북 용왕께 고기를 부르는 '제굿',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기원하는 '샘굿', 학교 뒤 최영장군 사당에서 올리는 굿 등 12마당으로 구성된 '추자 걸궁'은 오직 추자도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고유 문화이다.

고 회장이 어릴 때부터 동네 어르신들 어깨너머로 배워왔다는 이 가락들도 현재는 맥이 점점 끊겨 추자초가 8년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전수할 것을 제안, 현재는 어린 학생들도 모두 외우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또 학교는 운동장이나 도서관 등 각종시설을 개방해 주민들이 학교에서 만나고 마을행사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추자 참굴비 축제'를 비롯한 지역사회 행사에서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추자초는 또 타 지역과 다른 지역적 특성을 십분 살려 개인별·수준별 학습활동으로 저녁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반딧불 교실'로 이름지어진 이 특색활동은 생업에 바쁜 학부모들을 위해 담임교사가 학생 수준에 맞게 국어·수학과목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고, 공부가 끝난 후에는 제자의 집앞까지 직접 동행해 안전한 귀가를 돕는다. 특히 귀가지도를 통해 학생들과 평소 교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고, 고민도 들어주는 등 인성교육 측면에서도 효과만점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추자초여서 가능한 일이다.

추자도에 지금껏 아이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시끌벅적한 운동회를 치를 수 있는 것도 지역과 학교가 한 뜻이 되어 힘을 합쳐왔기 때문이다.    김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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