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18>흥산초등학교

▲ 흥산초등학교 전경
신흥공립국교로 출발…토산초와 기금 공동배분 등 배려
학력향상 위한 지역·학교 합심 커다란 결실 맺어

"무슨 읍, 무슨 면 따질 거 있나. 그냥 같이 농사짓고 같이 학교다니는 이웃일 뿐이지" 흥산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인 오윤탁씨(57·신흥리)는 남원읍과 표선면 주민들이 함께 다녔던 옛 일에 대해 '별난 일' 아니라는 듯 흘려 넘긴다. 흥산초는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에 위치해 있지만 지역에 학교가 없던 표선면 토산2리 주민들이 자녀들을 옛 신흥공립국민학교에 보내면서 교명도 두 지역의 이름을 딴 '흥산국민학교'로 개명, 토산초 설립 전까지 근 30년 가까이 남원읍과 표선면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 1975년 12학급까지 편성되는 등 꾸준히 학교발전의 토대를 닦아나가고 있었지만, 젊은 세대의 이농이라는 시대적 현상으로 인한 학생수 감소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흥산', 마을간 우애의 상징

흥산초등학교(교장 함석중)는 1946년 9월1일 신흥공립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돼 같은 해 11월28일 옛 남원면 신흥리 174번지(현 서귀포시 남원읍 일주동로 6642)에 개교했다. 학교에 남아 있는 기록은 개교 당시 김공남씨와 김태후씨의 노력이 컸다고 적고 있다.

이 때 학구가 신흥리와 토산2구였기 때문에 학구민들의 요청에 의해 이듬해인 1947년 3월20일 교명을 흥산국민학교로 개명, 1972년 화산국민학교 토산분교장(1978년 본교 승격)이 설립되기 전까지 두 지역 학생들을 수용해왔다.

토산초 설립후, 토산2리 학생들은 오지 않게 됐지만 학교 이름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학교이름을 쉽사리 바꿀 수도 없었지만 29회에 달하는 토산리 지역 동문들의 산실이라는 점, 그리고 토산리와 신흥리의 화합을 상징하는 이름을 버릴 수 없었다고 지역주민들은 설명한다.

▲ 흥산초의 한마당축제인 '어우렁 놀멍 배우멍' 도전마당에 참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모습.
현재도 추석 이튿날 열리는 동문 단합행사에 토산리 출신 동문들까지 참석하고, 동문회 차원에서 조성한 학교발전기금도 두 학교에 공평하게 전달하고 있다.

화합을 위한 부모 세대의 실천은 학교가 나뉜 현재에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양 지역 우애의 원천이 됐다.

# 통폐합, 양 지역 최대 과제

대를 이어가는 신흥리와 토산리의 아름다운 전통도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교육행정당국이 교육환경 개선 등을 들어 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거나 분교장으로 격하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와중에 흥산초와 토산초가 모두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교육행정당국의 계획대로라면 토산초가 2013년, 흥산초는 2014년 통폐합이 추진된다.

주민들은 두 지역 학교를 모두 살리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신흥1·2리 주민들은 올 10월 오윤탁 총동문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학교살리기추진위원회를 구성, 각 이장과 학교운영위원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청년회장, 학교장까지 모두 참여해 학교살리기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일단 '빈집 빌려주기'를 통해 학령기 인구를 유인하고 학교교육 연계 귀농·귀촌 유치 프로젝트를 통해 일시적이 아닌, 학교교육에 안심하고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사용하지 않는 집과 창고 등을 리모델링해 살 집을 구하는 취학연령가정에 무상으로 빌려주고, 높아진 학교교육의 질을 귀농·귀촌 가정 등에 적극 홍보해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관건인 통학버스도 현재 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오윤탁 추진위원장은 "분교장으로 개편되고 여기서 학생수가 더 떨어지면 남은 길은 폐교 밖에 없는데, 학부모라면 본교가 있는 지역에 이사가겠나 분교장이 있는 지역에 이사가겠나"라고 반문하며 "학교가 없으면 젊은 세대들이 안들어와 지역이 무너진다. 여러 방법을 강구해 학교 살리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흥산초에서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중 꼭 알아야 할 문장을 말하기, 쓰기로 평가하고 인증제 상장을 수여하는 '제학년 기본문장 익히기 인증제'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 학생·교사·지역 협력 '낙제생 제로' 달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흥산초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 자체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성과를 거둔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소규모학교를 인근 학교와 통폐합, 적정규모화함으로써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교육행정당국의 방법 외에도 학교와 주민들이 스스로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불과 2~3년 전 만 해도 20~30%의 아동이 학력미달이었던 흥산초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학교 학력신장계획인 '너우렁-나우렁-다우렁'을 통해  지난해 전국적으로 12개교를 뽑는 교과부 지정 학력향상우수학교에 선정되는 극적 반전을 이끌어 냈다.

먼저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고민 끝에 모든 교사들이 참여하는 '학력향상지원단'을 구성했다. 교사들은 수업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을 할애해 부진학생을 위한 학력향상반인 '훌쩍 자라는 땅콩반'을 통해 일대일 지도와 함께 개인별 학력향상 다이어리를 적으며 개개인의 학습상황을 세세하게 확인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도 나서 방학기간 '다우렁 학교'를 통해 보조교사로 학교교육에 직접 참여하며 학교와 교육의 문제를 공동 논의하고 상호협력하는 공동체를 구축했다.

합심의 결과는 놀라웠다.  2009년 6학년 19명중 7명이던 국가수준 진단평가 결과 미달학생이 2010년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고, 4~5학년 학생도 도에서 실시한 제학력 갖추기 평가 결과 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성적을 거뒀다. 201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역시 기초학력 이하 학생이 나오지 않았고, 우수학생의 비중도 87%를 기록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로 교과부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규모화'를 통해 학교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마을과 학교가 합심해 대안적 실례를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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