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지방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하던 '갑'은 5년에 걸쳐 실제로는 아무런 과오납 환부 사유가 없는 사망자나 관외 거주자 등에 대하여 과오납 환부사유가 있는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여 그 과오납금 합계 9000여만원을 자신의 친정아버지 '을'의 예금계좌로 여러 차례에 걸쳐 송금했다. 이렇게 가족들 또는 지인들 명의의 계좌로 위와 같이 과오납금을 송금받는 등 251회에 걸쳐 합계 12억원이 넘는 돈을 횡령했다. '을'은 '갑'으로부터 송금받거나 별도로 교부받은 돈 합계 1억원을 집수리비용 및 차량구입비용으로 사용했다. 

이에 '갑'이 근무하던 지방자치단체는 '을'을 상대로 하여 '을'이 위 돈 1억원을 부당이득했으니 이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경우 '을'은 1억원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이 사례에서 대법원은, 채무자가 피해자로부터 횡령한 금전을 자신의 채권자에 대한 채무변제에 사용하는 경우 채권자가 그 변제를 수령함에 있어 그 금전이 횡령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채권자의 금전취득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이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며, 이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횡령한 돈을 제3자에게 증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을'이 위 돈을 선의취득한 것인지 여부만을 따져 부당이득 반환을 명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위 판례는 얼핏 보면 범법행위를 자행한 '갑'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돈을 교부받아 사용한 '을'에게 면책을 안겨준 것으로 비쳐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을'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그 돈이 부정한 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한 상태에 있었다고 하여 중과실이 인정될 소지가 많다. 더군다나 '을'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장물죄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선의의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변제를 수령하면서 그 돈이 횡령금이라는 사실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므로, 이런 경우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