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이 경쟁력이다]
3. 무더운 여름, 입맛 돋우는 보양식

조리방법 단출하지만 여름나기 제격 한 상 차림
전통 음료 관광객에 별미…재료 다양화 등 주문
 
여름 휴가철,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제주로 몰린다. 이들은 제주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이며 SNS검색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꼭 가야 할 맛집' 리스트까지 작성한다. 하지만 이들이 맛 본 음식은 흑돼지구이, 고등어·갈치 조림, 해물뚝배기 등이 전부다. 제주를 대표할 만한 음식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들 외에 다른 음식을 파는 곳을 추천하기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여름철, 제주의 대표 음식 목록을 정리하고 이를 어떻게 대중화·상품화 하느냐가 과제로 던져진다.
 
# 소박한 한 상 차림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여름밥상·보리게역·보리쉰다리·오징어냉국. 사진=전통향토음식 발췌
제주의 여름, 음식을 담당했던 여인들이 남자들과 함께 밭일에 나갔던 터라 간단하고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주를 이뤘다. 또한 저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름철 음식이 금방 쉬어버릴 것을 감안, 고기 종류의 음식은 피했고 음식도 조금씩 만들어 먹었다.
 
여름 밥상의 기본은 보리밥에 된장국, 김치, 젓갈 또는 보리밥에 생선국, 김치, 나물무침으로 볼 정도로 반찬수가 많지 않고 조리법도 간단한 소박한 상차림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것은 냉국이다. 냉국에는 물외, 삶은 배추 등의 채소류와 미역·톳·우무 등의 해조류, 자리·오징어·한치·구젱기(소라) 등의 어패류 등 멀리 나가지 않아도 우영팟(밭)이나 가까운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이용됐다.
 
이 밖에도 보말국과 우럭콩조림, 반치지(파초지), 마농지, 깅이집장(방게범벅) 등이 여름 밥상에 찬으로 올라갔고, 여름철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제주식 보양식으로 닭제골도 있었다.
 
단출해 보일지 모르지만 제주 사람들의 여름 밥상은 여름 나기엔 그만이었다.
 
싱싱한 재료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염분을 보충하는 데는 된장을 풀어 만든 냉국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또한 돼지고기가 상할 것을 우려, 식초를 넣어 음식을 했던 것은 오히려 소화기능을 활발하게 하도록 도왔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은 "제주사람들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음양오행의 영양관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철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더운 철에는 차가운 계절에 나왔던 음식을 먹어 몸의 열을 식혔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짠 음식을 섭취해 염분을 보충했다"며 제주 음식이 소박하지만 건강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했다.
 
# 전통과 현대 접목 고민
 
▲ 김지순 제주향토음식 명인이 매달 일본에서 제주전통음식 요리 강좌를 진행하는 가운데, 제주음식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여름철, 어느 집이나 다 냉국을 만들어 먹었다고는 하나 제주향토음식점에는 '물회'를 제외한 냉국은 메뉴로 올라와 있지 않다. 여기저기 갈치조림, 흑돼지구이, 해물뚝배기 뿐인 것이다. 제철 음식이 제주 음식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냉국을 파는 향토음식점은 없는 모호한 현실이다.
 
이는 다른 음식에 비해 관광객들의 선호도가 낮고, 단일 상품으로 판매하는 데 있어 '메인 메뉴'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냉국이 누구나 입맛에 맞아야 한다면 전통 조리 방식은 그대로 가져가되, 재료들을 다양화하는 식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피자의 토핑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냉국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찾는 이들의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제주지역에 증가하고 있는 브로콜리·양배추 등 양채류도 새로운 재료들로 냉국과 접목할 수 있을지 점검이 필요하다.
 
또한 여름철에 제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채소들과 제주 전통 양념을 넣어 '제주식 샐러드'를 판매하거나 이를 밥에 비벼먹는 '제주 비빔밥'을 만들어 '한 상 차림'으로 선보이는 것도 하나의 상품화 방안이다.
 
# 여름철 제주 별미
 
제주 전통음료인 보리개역(미숫가루)과 보리 쉰다리는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있다. 담백한 보리개역과 새콤한 맛의 보리 쉰다리가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름 장마철에 철갈이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던 보리개역의 경우 보리 수확이 끝난 초여름, 보리를 볶아 미숫가루로 만들어 뒀다가 물에 타먹거나 밥에 비벼먹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밭으로 바다로 일하러 나갈 때 빼놓지 않고 챙겨뒀던 간식거리다.
 
보리 쉰다리는 여름철 먹다 남은 보리밥이 쉬어 버리게 될까 누룩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음료다. 누룩을 잘게 부수어 물과 함께 보리밥에 넣고 1~2일 정도 두면 발효가 되는 것으로, 새콤하면서도 단맛이 있어 '단술'이라 부르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의 알뜰함과 지혜가 만들어낸 음식은 이제 입가심용의 디저트로도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 올레꾼들 사이에서는 보리개역과 보리 쉰다리를 맛 볼 수 있는 식당이 공유되고 있으며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음료에 일부러 찾기까지 한다.
 
흑돼지와 갈치조림 등에 익숙한 관광객들에게 '별미'로 부각될 수 있도록 마케팅을 활용할 때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특별취재반=김봉철·고혜아 교육문화체육부 기자

인터뷰 / 김지순 요리연구가

제주향토음식 명인인 김지순 요리연구가는 "상은 간소하게 차리되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음식 한·두 개를 맛봐서는 음식에 깃든 의미가 전달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김 요리연구가는 "여름 밥상에 오른 보리밥과 냉국이 거친 잡곡밥의 목넘김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도 설명하지 않으면 모르지 않냐"며 "사계절 하나의 상차림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요리연구가는 미래 세대에게 제주 음식이 전해지도록 학교 급식에도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김 요리연구가는 "제주 음식은 제주 사람들을 키워낸 음식이나 마찬가지"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주 음식을 먹는다면 분명 부모님들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놓을 게 아니"라며 "젊은 세대들 스스로가 제주 음식은 제주 문화로 대변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요리연구가는 "서양의 '샐러드'를 제주 사람들은 매 끼니마다 즐겨먹었다"며 "제주는 육지와 달리 채소를 기르는 밭에 오줌 거름을 주기 때문에 날로 먹을 수 있었다. 신선한 채소를 활용하는 음식이 많았던 하나의 이유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요리연구가는 "예전에 사용했던 식재료가 사라지고, 종자도 품종개량으로 변화됐다"면서 "제주 음식의 조리법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재료를 '로컬푸드'를 활용토록 지속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 전복죽(위)과 뭉게죽. 사진=전통향토음식 발췌
지역 어촌계의 '죽 상품화'
입소문 효과 본 성공사례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제주 사람들은 밥 대신 죽을 주식으로 먹었던 때가 많았다. 가난한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영양식·보양식·건강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곤(쌀)죽, 좁쌀죽, 유(들깨)죽, 팥죽, 지실(감자)죽, 보리죽, 전복죽, 옥돔죽, 고등어 죽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역 어촌계를 중심으로 '죽의 상품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섭지어촌계, 태흥2리 어촌계, 오촌 어촌계 등이 어촌계 직영의 음식점을 통해 깅이죽(방게죽)과 전복죽, 문게죽(문어죽) 등을 판매, 관광객들의 '맛집 코스'가 됐다.

칼슘 성분이 풍부한 깅이죽과 단백질과 지방질이 적어 여름철 임산부나 어린아이·노인·환자의 영양식으로 인기가 높은 전복죽, 여름철 입맛을 북돋워 주는 문게죽이 제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건강식'으로 통한 것이다.

이는 제주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이나 특별한 맛을 내는 음식점을 찾았던 관광객들의 입소문만으로 효과를 본 제주음식의 상품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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