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4. 삼각산 재미난마을

▲ 삼각산 재미난마을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재미난 카페'. 고 미 기자
아이 위한 고민서 출발…주민 스스로 계획·실현 진화
공동 육아서 초등대안학교, 어른 놀 거리 까지 '수두룩'
책에 안나오는 '공동체 문화' 사단법인화 등 결속 키워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른들이 즐겁다. 서로 질세라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내보인다.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더 잘 논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은 하나 둘 무리를 만들어 했다. 무리끼리 노는 것이 심심해지자 다음은 서로 어울려 즐기자 싶었다. '판이야 커지겠지만 한번 해보지 뭐'. 삼각산 재미난 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 '우리'란 수식어의 힘
 
"우리 마을에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나와 같은 필요를 가진 동네사람 3명만 모아도 마을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다"
 
한 마을 만들기 주제 세미나에서 이상훈 삼각산 재미난 마을 사무국장은 주사위 하나를 던졌다. 마을은 하나의 보드 게임판 같다. 필요라는 이름의 주사위를 굴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같은 칸에 선다. 필요하면 집도 짓고 학교도 만들고 근처에 카페나 극장 등을 유치한다. 하나 둘 공유할 거리를 만드는 것으로 '우리'라는 이름을 붙일 것들이 늘어난다. 굳이 한데 묶어 지역 구분을 하지 않더라도 마을이 된다.
 
삼각산 재미난 마을을 보자.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 자락이다. 1970년대 초 분구 작업을 하면서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됐고, 1980년 언젠가 도원구가 됐다가 1990년대에는 강북구라는 주소를 쓰게 됐다. 그 와중에 환경도 많이 변했다.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서울에서는 생활과 일자리, 집값, 육아 등 삶이라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이 힘들어졌다. 어떻게든 삶을 유지하겠다고 생활전선에 뛰어들다보니 살아가는 모든 것을 돈에 맞추게 됐다.
 
당장 아이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운명처럼 부모들이 모였다. 서울 안에서도 고도제한에 묶여 고층건물이 들어서지 못하는 지역이어서 상대적으로 집을 구하기도 쉬웠다. 그렇게 1998년 공동육아협동조합 '꿈꾸는 어린이집'이 만들어졌다. 그 다음부터 '마을'은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입학할 무렵(2003년) 6년제 초등 대안학교를 직접 만들었다. 주민 투표 끝에 '재미난학교'라 이름 지어진 이 학교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마을의 모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야 가능하다'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입시 위주의 교육 대신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배울 수 있는 과정을 채웠다. 그 과정이 일사천리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설립 후 3년여는 주변의 불편한 시선과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달라진 것도 있었다. 필요에 충실해진 것이다. 공동육아에서 대안학교까지 10년, 자라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 우린 마을에서 논다
 
▲ 청소년기획단 '장돌' 활동 모습. 사진=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성미산마을과 마찬가지로 삼각산 재미난 마을 역시 커뮤니티의 묶음이 바로 마을, 그리고 공동체가 됐다.
 
아이들이 크다 보니 초등에 이어 중등 대안학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좀 컸다고 자기들끼리 놀려는 아이들이 만든 빈 자리에는 어른들의 놀 거리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처음 문을 연 유기농 밥집은 2년을 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그 자리는 지금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재미난 카페'가 든든히 지키고 있다.
 
마을 곳곳 놀 것 투성이다. 마을 밴드인 '재미난밴드JB' 연습실에서는 음악을 좋아하는 주민이 악기 연습을 하고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도 한다. 마을 극단 '우이동'에서는 10대와 어른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연극인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공연한다.
 
'요술항아리' '바리공주와옛이야기' '술술책읽는모임' '타로-샤크티' '산행-유산소' 'photo 521' '명상-마음챙김' '민들레읽기모임' '발도로프-한땀한땀' '함께놀자-책과수다' '두바퀴로만나는세상' '(가)에너지자립마을'마을공동주택' '꼬마마녀 프로젝트' '축·하·남·동' '마녀프로젝트' '꿈을만들자·프라모델' '미니마 아르떼' '마을카페 521st' 등등 비슷한 것 같으면서 개성이 뚜렷한 동아리들이 마을 역사와 함께 한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나 청소년 전문극단 진동, 마을목수공작단, 작은도서관 함께놀자, 공방 연이재, 우리동네햇빛발전소, 한겨레두레상포계 등은 동아리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마을 안에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마을 회원들만이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해 관계를 맺는다. 마을을 훨씬 앞지르기도 한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은 벌써 15년 넘게 10대 축제를 꾸리고 있다. 스스로 운영하는 주말대안학교인 '무늬만 학교'에서는 14세 이상 청소년들이 학년 구분없이 알고 싶은 것을 찾아 배운다.
 
공동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마을단위 행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05년 단오잔치를 시작으로 2006년 어린이날 놀이장터, 성탄절 저소득층 지원 행사 등이 열렸다.
 
소통할 거리들이 늘면서 2011년 5월에는 아예 사단법인을 만들고 사무국을 뒀다. 지난해 서울 마을공동체 사업의 대표 사례로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들도 늘고 있다. 아직까지는 스치듯 보고 가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예산 지원에 맞춰 만들어지는 마을과는 어딘지 맞지 않는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재미난 마을이 제시하는 힌트는 분명하다. 공동체를 기준으로 '마을'과 행정구역이 꼭 맞아 떨어질 이유는 없다. 수익 창출로 마을을 살리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 모두 '책 대로'일 뿐 필요하다는 생각의 공유와 실현이 바로 공동체다. 고 미 기자

▲ 어린이목공교실. 사진=㈔삼각산 재미난마을

인터뷰 / 이상훈 ㈔삼각산 재미난마을 사무국장

"남들을 바쁘게 하죠. 얄밉게 여기저기 얼마나 바쁜지 살펴봐요. 그 것이 제 업무라고나 할까요"

재미난학교 행정교사로 마을과 인연을 맺었다는 이상훈 ㈔재미난마을 사무국장은 자신의 역할을 '한량'이라고 정리했다.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사무국이라고 거창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무국장과 팀장 3명으로 예비 사회적기업을 꾸린 것이 전부다. 직접 마을목수공작단도 꾸린다. 몸이 열 개는 돼야 할 듯 싶다. 분신술 대신 수다 모임을 적극 권장한다. "여럿이 모이면 좋은 일을 생각하게 되고 일단 안의 것을 풀어내야 필요한 것도, 그것을 실현할 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지론이다.

마을에만 줄잡아 30여개 커뮤니티가 있고 모두 개별 독립 법인으로 운영된다. 그 안에는 마을 회원도 있고 그저 관심이 있어 참여한 사람들도 있다. 사무국에서 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

이 사무국장은 "한 달에 한번 마을 회의를 소집해요. 적어도 커뮤니티 대표들이 참석하도록 하죠. 그 안에서 정보를 교류합니다. 마을 축제며 문화장터 같은 부피가 큰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해가는 것도 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진행해요. 사무국이라고 해서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자발적으로 이뤄질 때 까지 기다릴 뿐이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일이 늘었다. 재미난마을을 알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터다. 슬쩍 들여다본 이 사무국장의 스케줄 수첩은 견학 일정으로 빼곡하다.

일부러 회원가입을 독려한 적은 없지만 재미난마을 식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처음에는 얼굴을 보며 나눴던 얘기들이 이제는 별도의 소통 창구 없이는 힘들게 됐다. 그래서 내년 1월을 목표로 잡지 형태의 마을 신문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 신문이 배포되는 곳까지 '마을'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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