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6. 경남 산청 민들레공동체

   
 
  ▲ 김인수 대표가 대안기술센터 등을 설명하고 있다. 고 미 기자  
 
자본 논리 대신 조화·조력 배양 '마을 공동체' 형성
대안기술센터·마을기업 등 경제·에너지 자립 실현
협의 통한 의사결정, 속도감 대신 정보 공유에 무게
 
기계식 '친절한 길안내'만 믿고 나선 길이었다. 어느 샌가 차는 대도로에서 벗어나 구불구불한 마을길 위에 있다. 다시 보다 좁은 산 가운데 길로 가란다. 덜컥 겁이 난다. 주변에 평소 눈에 흔하던 것이 하나도 없는 이곳에 과연 사람이 살기는 할까. 기계가 못 미더워 몇 번이고 전화로 길을 묻고 더듬어 닿은 곳에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고민을 스스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그 속도가 빠를 수도, 또 느릴 수도 있다. '사람답게'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민들레공동체'가 가진 목표는 하나, '지속가능한 삶'이다.
 
△ 자급자족 바탕 생태주의 지향
 
   
 
  ▲ 마을기업 민들레 베이커리의 주방 모습. 고 미 기자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마을. 1991년 기독교 공동체로 출발한 민들레공동체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변화도 있었다. 자급자족을 바탕으로 한 생태주의와 지속가능한 삶이 공동체를 상징하는 수식어가 됐다. 현재 마을은 2만6400㎡ 땅 위에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대안기술센터와 중·고교 과정을 개설한 대안학교, 마을기업인 민들레 베이커리를 중심축으로 꾸려지고 있다.
 
마을 곳곳에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소, 태양열 조리기가 늘어서 있고 반쯤 짓다 만 건물도 눈에 띈다. 마을이 기획하고 있는 일종의 '에너지 체험관 겸 웰컴센터'다. 마을은 처음과 비교해 그리 커지지 않았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마을 스스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은 입주가 어렵다. 살 공간이 있어야만 이주가 가능하다. 지금도 몇 가족이 입주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마침 같은 날 북한 등 제3세계 기아국들에 식량 자급 지원을 돕는 국제기구인 메노나이트 국제구호재단 관계자들도 민들레공동체를 찾았다. 이들이 꾸리는 삶에 대한 관심은 늘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마을 뒷편 텃밭은 민들레 학교 아이들이 중심이 돼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관리가 편한 네모 형태가 아니라 원형으로 오이와 상추, 호박 등을 가지런히 심었다. 자신들이 직접 먹을 채소인 만큼 키우는 정성도 남다르다. 공동체 사람들이 나눠 먹을 거라는데 밭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여기서부터 보통 사람들과 민들레 사람들 간의 시각차가 분명해 진다. 민들레공동체는 경제적·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일정 정도 포기하는 대신 자발적인 불편을 선택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공동체라는 생활 형태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재생가능에너지 역시 욕심내는 삶을 경계하는 역할을 한다. 마을 기업에서 쓰는 유정란은 마을 안 닭장에서 구하고 우리밀과 허브·약초를 이용한 식빵, 케이크, 쿠키 등을 만든다. 회원제로 1·2주 또는 월 단위의 빵 꾸러미를 발송한다. 당장 큰 수익을 내는 구조는 아니지만 일정 수준 자생력을 바탕으로 마을을 위한 역할을 할 준비는 됐다.
 
△ '자립'위한 다양한 실험 진행중
 
   
 
  ▲ 민들레공동체의 식탁을 책임지는 텃밭. 고 미 기자  
 
불쑥 점심을 권한다. 몇 번이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평소보다 숟가락 몇 개가 더 얹어졌다. 밥과 나물 몇 가지, 노른자 색이 생생한 계란 프라이와 멸치가 전부인 메뉴는 공동체 사람들 모두 동일하다.
 
직접 불을 때는 화덕도 있지만 태양과 바람, 바이오매스(Bio-mass·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 식물·미생물 등의 생물체)와 같은 자연 에너지를 활용해 마을에서 직접 조달한 에너지원을 이용해 조리한 것들이다. 태양열조리기로 밥도 짓고 정화시스템으로 오·폐수도 직접 처리한다.
 
아이들도 직접 키운다. 현재 중·고등학교 과정의 민들레학교 재학생은 70명 안팎이다. 오전에는 일반 학생처럼 정규교육 과정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직접 노동에 참여해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배운다. 직접 손과 몸을 움직여 자립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농촌이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살 수 있고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농업'이 중심에 있어야만 했다. 살다보니 '고향'이 없어져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학교는 다음 순서였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재정적 여력이 생겼고 더디지만 '마을'이란 형태를 만들어가게 됐다. 재원이 갖춰지는 것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정부 지원 사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나마 '대안기술센터'라는 미래지향적 아이템에 맞춰 일부 예산 지원을 받았지만 방문객을 위한 웰컴센터는 벌써 1년 넘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민들레공동체에 있어 '공동체'는 사회적 협력, 다시 말해 조력이다. 자립 생활을 바탕으로 농촌을 살리고, 고향을 만들고,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자신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든 것들은 공동체 협의로 이뤄진다. 기독교공통체이기도 한 민들레 마을은 매주 세 번의 정기모임이 있다. 일요일 예배를 비롯해 월요일 저녁마다 스테프 모임을 갖고 마을을 구성하는 기관 책임자들이 모여 운영을 논의한다. 목요일에는 전체 가족모임을 통해 서로를 챙긴다.
 
마을에는 늘 사람이 든다. 절반 이상이 대안기술센터에서 에너지 자립을 위한 교육을 받고, 또 일부는 식량 자급을 위한 고민을 나눈다. 그 모든 것은 아직 진행형이다. 특별취재반=고 미 경제부장·강권종 편집부 기자
 
인터뷰 / 김인수 민들레공동체마을 대표
 
"모자라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부족할 것도 없지요. 사람이 살만한 정도면 충분합니다"
 
김인수 민들레 공동체 대표의 말은 짧지만 분명했다. 분명 공동체 시작점에는 '종교'가 있지만 지금껏 이어올 수 있던 데는 공동체 내부의 동의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의지가 있었다.
 
공동체가 시작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고, 생태건축과 대체에너지 보급을 위한 작업도 8년이나 진행했다. 이를 보고 배우겠다는 방문객도 연간 3000명이 넘는다. 여기에 일반인 방문도 1만5000여명이나 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김 대표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일반의 기준으로 보면 공동체에서의 삶이 느리고 변화가 없다고 느껴지겠지만 뭐든 순리대로 움직이는 것이 답"이라며 "에너지체험관을 겸한 웰컴센터 작업을 2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원하는 대로 이루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받는다면 완성까지 속도가 빨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마을에 오겠다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라며 "대신 자립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민들레 학교의 꼬마 친구가 빼꼼하고 머리를 내밀고 김 대표와 눈을 맞춰 주고서야 자리를 떴다. "건강히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요. 누가 가르치는 것도 어떤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배우는 것, 저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음 세대에 전하고…. 그것이 민들레 공동체가 목표하는 것입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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