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9. 청주시 원흥이 마을

▲ 제10회 두꺼비 생명한마당 행사 모습.
매몰 위기 몰린 '두꺼비' 수호운동 시작점
생태 교육·마을 신문 등 신도시 한계 극복
자생력 확보·'사람'양성 위한 고민 진행중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의 '8월 15일'은 특별하다. 매년 달력에 '빨간날'로 표시되는 국경일(광복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0여년 전 '두꺼비를 살려달라'던 외침이 왁자지껄, 속닥속닥 활자가 되어 지면으로 옮겨진지 꼬박 100번째 된 날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는 유일무이한 마을신문 '지령 100호'는 간절함에서 시작해 필요로 이어졌고 지금은 일상이 됐다.
 
△ 개발·보전 갈등 푼 환경운동 한 획
 
"원흥이 마을로 가려는 데요" "아, 신도시요"
 
개발과 보전이라는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한, 환경운동사(史)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청주 원흥이 마을은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신도시'란 이름이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싸움'은 길었다. 대규모 택지개발로부터 두꺼비 서식지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작된 2003년부터 도톰한 굳은살이 당시의 절실함을 덮어낸 2010년까지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는 주장과 "두꺼비가 살 곳을 잃는다면 사람사는 이유가 없어진다"는 호소가 엇갈렸다.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분평동 일대 109만여㎡(약 33만여평)는 청주시에 속하기는 하지만 현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의 발길이 뜸한 외진 곳이다. 1994년 처음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됐을 때만 하더라도 원주민들의 요구와 달리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포기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상황은 1998년 사업 재지정 후 2002년 법원과 검찰청 이전 결정이 내려지며 돌변했다.
 
책상 위 펼쳐진 지적도에 개발을 위한 그림이 그려질 무렵 환경단체인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이곳에서 새끼 두꺼비들의 대대적인 이동행렬을 목격했다. 지역 언론을 통해 이들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과 학생들이 많게는 하루 수백명씩이 장관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두꺼비를 보호하자는 여론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청주시내 42개 시민·환경단체가 참가해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두꺼비 자연생태공원조성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에서부터 작은음악회, 현수막 이어달기, 생명의 금줄치기, 환경예술제, 생명평화를 위한 삼보일배, 촛불한마당, 청주시민 1000인 원흥이 껴안기, 청주시민 60만배 등 두꺼비를 지키려는 시민·환경단체들과 택지를 개발하려는 시행·시공자의 대립과 갈등이 1년 9개월에 걸쳐 이어졌다. 옛 한국토지공사(현 LH) 충북본부와 시민단체 간 상생 협약을 통해 이 곳에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아파트·빌딩 숲 속 안 두꺼비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여기까지는 일단 과거다.
 
△ 사람·자연 상생 주목
 
▲ 유치원생들이 두꺼비생태공원을 탐방하고 있다.
'두꺼비 생태공원'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란 것이다. 이 곳은 인간과 자연(두꺼비)의 공존가능성을 두고 계속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생태공원을 만드는 과정이 환경단체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에게 바통이 넘겨졌다. 2007년 새로운 아파트 단지 내 본격 입주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동호회며 입주(예정)자 모임들에 생태공원을 활용하는 방법을 귀띔하는 것으로 '필요'를 만들었다. 신도시가 그러하듯 새 터에 마음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에 집중하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건설교통부가 추진한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청주시가 '주민참여도시만들기 지원센터'를 만든 것 역시 영향을 미쳤다.
 
마을은 사업계획안에 '두꺼비'를 포함시켰다. 한 번에 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모임을 통해 호흡을 맞추다보니 하나둘 얻어지는 것이 생겼다. 이후 '대체습지'로는 부족한 두꺼비 보호를 위해 서식지 땅 한평 사기 운동이 진행됐고 2008년에는 산남두꺼비생태마을아파트협의회까지 구성됐다. 산남두꺼비마을신문(2009년~)이 창간되고 찾아가는 두꺼비학교와 두꺼비생명강좌, 생명한마당 등 마을단위 행사가 진행되며 '공동체'라는 고리가 만들어졌다.
 
소소한 이웃들의 얘기에서부터 굵직굵직한 현안까지 다루는 마을신문은 아파트 대표와 주부기자 4명이 주축이 돼 만든다. 매달 첫째·셋째 목요일 마을의 소통 창구로 역할을 하고 있다. 창간 당시 자발적 구독자 250부를 포함해 5500부 발행되던 것이 지금은 두꺼비 생태마을 8개 아파트 4800여 가구 모두에 배달된다.
 
원흥이 마을의 생명한마당 행사는 재작년 동 단위 생태환경축제를 고민하던 청주시가 '알아서'지원해 주기 전까지 자체적으로 예산을 만들어 꾸렸다.
 
△ 지속성 확보 위한 실험 꾸준 진행
 
▲ 지령 100호를 비롯한 두꺼비마을신문들.
'땅'은 그대로지만 사람은 변한다. 여느 공동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이곳 역시 안고 있다. 주민의식이 깨어있기는 하지만 생활 곳곳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있어 늘 화해와 타협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2011년 마을 안 샛별초등학교 인조잔디 조성사업의 인체 유해성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내홍을 겪었다. 아파트 입구에 안내 게시문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법원과 검찰청 입구 도로를 막고 5000~60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를 진행할 만큼 짜임새가 있던 마을이란 것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입주자 대표나 아파트협의회장 교체에 따라 사업 추진에 부침이 생기는 것 역시 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실무 부분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두꺼비 친구들'이란 환경단체가 해왔다는 점 역시 마을이 해결하고 채워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사람 사는 곳이 멈춰있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원흥이 마을 역시 성장 중이다. 땅을 근간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을이 만들어진 것과 달리 공동체를 이룬 속도가 빨랐던 만큼 변화 요구 역시 먼저 시작됐다. '생태공원'을 지키기 위한 구룡산 땅 1평사기 운동도 꾸준하지만 속도감은 없다. 최근에는 아파트별 작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단독주택 거주자에 대한 배려 문제도 고개를 들었다.
 
안정적 형태의 공동체 모델로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그동안 마을을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던 마을신문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기업 형태도 검토하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공동체를 지지할 헌신적인 조력자와 자생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공동체를 지속하기 어렵다. 지금 현재 여전히 진행형인 이들의 실험은 그래서 더 주목된다. ▲특별취재반=고 미 경제부장·고경호 편집부 기자

 

인터뷰 / 박완희 두꺼비친구들 사무처장
 
박완희 두꺼비친구들 사무처장에게 원흥이 마을과 '두꺼비'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박 사무처장은 "몇 번이고 그만둘 핑계를 찾기도 했다"며 "생태공원이며 생태문화관이 조성되기는 했지만 답이 아닌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래서 새로 마을에 들어온 주민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박 사무처장은 "처음에는 '두꺼비가 있어야 마을 땅값도 오른다'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교육이며 참여프로그램을 통해 달라졌다"며 "지금은 마을과 관련한 일련의 사업들에서 두꺼비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박 사무처장은 "아파트협의회 등이 구성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환경단체가 실무 대부분을 보고 있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마을이 주도적으로 꾸려갈 때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가 완성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환경운동과 도심 속 생태문화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요즘은 '지령 100호 마을신문'을 묻는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으로의 진화 역시 충분한 준비와 사전 논의 없이는 이루기 어렵다. 박 사무처장은 "처음도 그랬듯 꾸준히 마을주민들과 협의를 하고 중심축 역할을 할 사람을 키울 계획"이라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없지만 분명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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