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10. 전북 진안군 배넘실 마을

▲ 배넘실 마을 전경
고령화·공동화 전형적인 농촌서 '으뜸마을' 대표 모델로
'작은규모서 시작 조건 맞춰 키워가는' 기본에 충실 효과
주민 직접 참여 전제·6차산업 도입·수익금 기금 조성 등
 
지자체들이 요즘 경쟁적으로 '마을 만들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입맛에 맞게 추진하다보니 특별한 모델을 만들지 못한 채 우후죽순 변죽만 울리는 경우도 적잖다. 그 와중에 관련 전문가들이 사업 추진에 앞서 한번 살펴보라 권하는 좋은 사례가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의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이다.
 
# '농촌 바꾸기' 위한 작업 주력
 
▲ 진안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전북 진안군은 10여년 전부터 농촌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 마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보니 고령화·공동화 등 지금 농촌 마을들이 겪고 있는 고민이 일찍 시작됐고 지역에 미치는 파장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오로지 '농촌을 바꾸기'위한 작업이었다. 주민들이 직접 나선다는 원칙 아래 아래로부터의 시도에 초점을 맞췄다. 기초형성기(2001~2004년), 발전기(2005~2007년), 네트워크 형성기(2008~2010년) 등 일련의 흐름 속에 △더디게 가더라도 제대로 △농촌다움을 전제한 지역 자급순환경제 구축 △행정과 민간의 협력체계 구축 등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주력했다.
 
단순히 외형만 바꾸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판단 아래 산업의 균형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1차 산업(농업생산) 외에도 2차 산업(농산물가공), 3차 산업(도농교류)이 고르게 발전해야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다는 '6차 산업(1차+2차+3차)'의 개념을 비교적 일찍 도입했다.

2007년부터는 그린빌리지(태양광·지열 등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마을) 조성,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마을 생활여건 개선), 으뜸마을 가꾸기(주민 교육 및 소득증대 지원), 녹색농촌 체험마을, 산촌생태마을 등 정부 부처들이 추진하는 사업들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대부분의 마을 만들기 관련 사업이 체험·휴양기능, 도농교류 등 3차 산업 쪽만을 부각시키며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과 달리 진안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작은 규모에서 시작해 조건에 맞춰 키워가는 방식으로 '농촌'을 지킨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화를 이뤘다. 그런 노력은 내년도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평가받고 있다.
 
# 수몰 아픔 딛고 살기좋은 마을로
 
'배넘실 마을'은 이런 진안군의 으뜸만들기 사업이 만들어낸 결과물 중 하나다. '홍수 때 배가 산을 넘었다'는 계곡 이름을 따서 만든 마을은 현재 43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그마저도 용당댐이 만들어지며 인근 마을들이 수몰되면서 조금 늘어난 숫자다.
 
배넘실마을 자체는 수몰 예정지가 아니었지만 댐 건설로 인해 '좋은 땅'이라고 손꼽히던 농토 대부분이 수몰되면서 마을 경제력은 반토막이 났다. 토지보상금을 쥔 주민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갔다. 그렇게 빠르게 늙어버린 마을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랬던 마을에 요즘 사람이 든다.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이 곳 역시 처음에는 전통테마마을 사업에 맞춰 펜션을 짓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것이 2007년의 일이다. 이후 '1사1촌 자매결연 시범 마을' 사업, '전통 테마 마을' 사업 지원 대상으로 잇따라 선정되면서 사업을 이어갔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생각만큼 큰 수익이 나지 않으면서 금새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 배넘실 산들엄니 밥상
다음 고민한 것이 다름 아닌 먹고 자고 사는 것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산들엄니밥상'이다. 황토로 지은 민박집과 연계해 만든 산골형 농가 레스토랑의 문을 열기 위해 꼬박 1년여의 시간을 들였다.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맛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산·야초를 이용, 로컬프드와 슬로우푸드의 접목을 시도했다. 전문 요리전문가를 지역으로 초빙해 맞춤형 교육을 진행한 덕분에 마을주민이 직접 요리에 필요한 발효액을 만들고 '배넘실마을'을 브랜드로 한 메뉴를 조리할 수 있도록 구색을 갖췄다.
 
이 마을의 사례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드웨어를 바꾸기 전 환경·문화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마을만들기' 기본 매뉴얼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2010년 이후 매년 마을 만들기나 향토산업 등 관련 정책 우수 사례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 번도 미리 정해진 틀에 맞춰 움직인 적이 없을 만큼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친 후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는 쪽을 택했다.
 
자생력을 갖춘 만큼 식재료비나 인건비 등은 모두 마을 주민들의 소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익금은 분배를 위한 불필요한 논쟁 대신 '노인복지기금'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마을 총회를 통해 결정했다. ▲특별취재반=고 미 경제부장·고경호 편집부 기자
 
인터뷰 / 이춘식 배넘실마을 운영위원장
 
배넘실 마을의 오늘을 만든 사람은 올해로 24년차 주민인 이춘식 운영위원장이다.
 
목사로 마을에 들어왔던 이 위원장이 처음 만난 것은 하루 3대 뿐인 버스 시간표에 의지한 채 수동적으로 삶을 꾸리는 낙후된 농촌이었다. 마을을 위해 대도시 직거래 판매까지 뛰어들었던 이 위원장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꼬박 2년' 농업과 정부 시책을 내용으로 한 연수며 정책설명회, 아카데미에 자신을 던졌고, '위원장'감투를 자청했다.
 
이 위원장은 "마을에 필요한 것은 많은 예산이 지원되는 사업이 아니라 자존감을 찾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다른 마을이 환경 개선에 예산을 쓸 때 배넘실 마을 주민들은 해외 시찰을 떠났다.
 
지금 마을을 대표하는 '산들엄니밥상'이 만들어진 과정도 비슷했다. 펜션도 짓고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마을 축제도 꾸렸지만 실제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이뤄지지 않는 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이 위원장은 "주민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실력 있는 요리 전문가를 마을로 초빙해 고액 과외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결과는 기대보다 훌륭했다. 산야초 발효액을 이용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제는 전국 어디에서든 배넘실 마을을 만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키우기 위한 고민까지 하고 있다.
 
그런 과정들로 이 위원장은 현재 진안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마을앤사람 지구 대표로 활동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위원장은 "마을 만들기 사업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아니라 함께 하고자하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라며 "무엇인가를 맞춰놓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목표를 위해 주민 모두가 하나가 될 때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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