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11. 광주 북구 시화문화마을

▲ 광주시화마을은 주민주도형 참여행정의 대표사례로 매년 많은 이들이 찾고있다.
민생 낙후지역 바꾼 '시와 그림' 프로젝트
방음벽 허물어 생태공원 조성…축제까지
행정-전문가-주민 '우리 동네 일'로 하나
 
'마을을 판다'는 기막힌 발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닌 현실이다. 지난 2000년 도시개발로 인한 주거 양극화 문제가 고개를 들면서 이상한 울타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방음벽 등의 이름을 단 시설물들은 도시를 조각내는 상처가 됐다. 쉽지는 않았지만 잘 들었던 '새살 돋게 하는 처방'은 이제 비슷한 고민을 품은 마을들을 위한 상품이 됐다.
 
# 삭막한 마을에 문화 들다
 
'살기좋은 마을 1위' '지역문화브랜드' 광주 시화마을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풍성하다. 그보다 더 주목받는 점은 지속성이다. 몇몇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정부 지원 등이 멈추면 시들해지는 것과 달리 문화동 시화마을은 벌써 10년 넘게 사업이 꾸려지고 있는데다 앞으로의 계획까지 탄탄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시화마을이 조성된 광주 북구 문화동은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이 있는 광주의 외곽지역이다. 4000여가구가 살고 있는 문화동의 구성 대부분은 이 일대에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선 임대 아파트 주민 또는 기초생활수급권자다. 그러다 보니 일반 아파트의 중산층과 임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저소득층 사이의 계층 간 벽이 두터웠다. 말은 '방음벽'이었지만 높은데다 험상궂은 회색 구조물은 '냉랭한 거리감'을 상징했다. 2000년 주민 25명으로 발족된 주민자치위원회는 쓰레기 투기장을 공동의 공간인 쌈지 공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시화마을의 시작점인 '시화(詩畵·시와 그림)마을'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집 담장에는 주민들의 애송시를 담은 시화판이 설치되고, 시화 백일장 수상작은 학교 주변거리를 채웠다.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문화문패'는 지역 문인화가들의 참여 작품들과 어우러졌다.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마을분야 1위(2007년),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범도시(2008) 눈도장을 받고 난 이후에는 '생태 친화'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2008년 영구임대아파트 2개동 주위에 쳐놓은 방음벽(길이 250m)이 허물어졌다. 주민들의 반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방음벽을 없애고 만든 폭 10여m 공간에 실개천이 만들어지고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동안 슬쩍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던 버린 공간이 주민 쉼터가 됐다. 환경미술 마을 축제(시화환경미술제·2010년~)도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역 예술가와 주민간의 문화 간격이 좁아지는 효과도 봤다.
 
▲ 시화마을의 소통수단인 '시화벽'
# '신(新)마을' 인큐베이터 자리매김
 
시화문화마을은 광주를 바꾸는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 마을을 중심으로 광주 북구 전체 문화 사업이 확장되고 있다. 북구청은 시화마을을 축으로 무등산과 5·18 국립묘역을 연결하는 '시민의(市民義) 솟음길'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화문화마을의 시(詩), 5·18 국립묘역의 의(義), 이를 잇는 사람(民)을 통해 소통하겠다는 의도다.
 
▲ 폐현수막으로 만든 친환경 조형물
내년까지 각화저수지 아래 시화문화센터도 조성된다. 지역 예술가가 기증한 수백 점의 작품을 공유할 공간이자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 랜드마크가 될 예정이다.
 
시화문화마을가 주목받는 데 이런 외형적 결과물은 일부에 불과하다. 마을의 변화는 주민주도형 참여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처음 주민과 전문가 행정간 균형 감각에 주목해온 마을은 '일자형'구조에 주목했다. '행정이나 전문가가 곧 주민'인 형태가 답이란 얘기다. 전문가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놔도 행정의 행·재정적 지원이나 주민의 동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과를 낼 수 없다. 전문가의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주민의 삶이나 현장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일개 작품일 뿐 마을이 될 수 없다. 지역 전문가와 원로 등을 중심으로 시화마을조성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기는 했지만 최종 결정은 자치위원회의 몫이다. 각자 생활에 쫓기는 자치위원들 대신 추진위가 예산 조성이나 기획을 담당하고 '우리 동네 일'에 대한 책임은 자치위가 지는 형태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제도화가 시급하지만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자생력을 키우고 이들의 경험이 필요한 마을을 지원하는 컨설팅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도 고민하고 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문화예술 수혈을 위한 공간 기부 사업도 고민하고 있다.
 
그 전단계로 시화문화마을을 견학하거나 마을 조성 과정에 대한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홍보관 이용에 따른 비용을 받고 있다. 이들 수익금은 시화문화마을만의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프로그램 운영과 기반시설조성에 재투자될 예정이다.
마을에서 '벽화'는 단순한 환경미화 개념을 넘어 징검다리 돌이다. 그 돌들이 모여 광주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문화 통로가 되는 날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기다려진다. ▲특별취재반=고 미 경제부장·고경호 편집부 기자

인터뷰 / 이재길 시화마을조형연구소장
 
"마을 만들기 작업은 가정의학과 비슷해요. 환자의 상태를 알기 위해 집안 내력부터 온몸 전체를 관찰하고 가장 아픈 곳을 묻잖아요. 마을에 필요한 것을 찾는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시화문화마을 10여년 역사를 함께 해온 이재길 시화문화마을조형연구소장은 조각가 출신이다. 자신의 작품 설치를 욕심냈다면 한 두해 부대끼다 말 일이었지만 이 소장은 '진짜'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시화문화마을 추진위의 부탁에 아예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2008년 방화벽을 허물 당시 주민들의 요구한 복도식 통로 창문작업 예산을 한국주택공사로부터 받아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임대아파트를 고립시키는 시설물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벽이란 개념이 강했다"며 "이제는 환경미술축제가 열릴 때를 맞춰 가족 나들이를 하거나 인근 어린이집 등에서 현장수업을 할 만큼 자랑하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이 소장의 자문을 구하는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자신이 현장에서 느낀 노하우를 아낌없이 털어준다. 이 소장은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각각의 전문 분야를 통합하는 장치 역시 중요하다"며 "잘 된 사례만 보면 과부화에 걸릴 수밖에 없다. 마을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이 소장 역시 '사람'을 강조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지역인재가 아니라 '지역을 위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선진 사례를 볼 때도 어떤 시설이 어떻게가 아니라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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