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12. 대구 중구 삼덕동

▲ 삼덕동 주민들이 함께 꾸려나가는 마을장터 모습.
1998년 담장 허물기 1호 '삼덕동 201번지' 중심축
2006년 재개발 맞서 인형마임 '머머리섬'축제 열어
'공동 목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사람' 지속성 중요
 
제주는 과거 대문·도둑·거지가 없어 삼무(三無)의 섬이라 불렸다. 다 옛 일이다. 달에 발도장을 떡하니 찍고 떡방아 토끼가 없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일마저 벌써 한참 전이 된 21세기, 대도시 한 복판에 담장이 사라졌다. 찾은 것도 있다. '이웃'이다.
 
동네서 아는 사람 찾는 재미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구 삼덕동의 이야기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자는 거창한 계획도 없었다. 동네에 사는 누군가 아는 체를 해주는 일이 즐거워졌고, 그 기분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대구의 담장허물기 운동은 1996년 닻을 올렸다. 대구시와 대구시의회, 대구환경운동연합, 대구흥사단 등 137개 민관단체로 구성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가 시민운동의 하나로 담장을 허물어 도시환경을 개선시켜 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대구 서구청이 1996년 7월 처음으로 담장을 철거한 데 이어 중구 경상감영공원(1997년)과 경북대 병원(1999년) 등도 하나 둘 동참하면서 시가지 곳곳이 녹색공간으로 바뀌었다. 사람들 사는 곳은 사정이 달랐다. '혹시' '만약' 같은 불편한 수식어를 붙여가며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고 선을 긋기 바빴다.
 
그랬다고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1998년 중구 삼덕동에서 주택으로는 처음 담장이 허물어졌다. 당시 대구YMCA 시민사업국장이던 김경민씨(현 대구YMCA 사무총장)의 집이다. 담장허물기 1호인 삼덕동 201번지는 여러 차례 기능이 바뀌었다. 현재는 지역 아동 센터와 마을만들기 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딸린 점포는 녹색가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일부 공간은 2008년부터 희망 자전거 수리 센터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연계한 사회적 기업인 '길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 인형마임 '머머리섬'축제 한장면.
개발논리 위기를 기회로
 
시작이 어려웠을 뿐 동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어느 순간 너도 나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싶을 무렵 이 곳에 재개발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2006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이 곳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설정하면서 마을은 전쟁터가 됐다. 이 때부터 '주민'에 대한 정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소성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준이 옮겨가면서 폭력적 재개발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싫든 좋든 얼굴을 마주대고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상황은 모두를 힘들게 했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을 허문 것은 '인형극'이었다.
 
재개발 논리에 밀리며 삼덕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러 자료를 정리하던 중 유독 인형극이 많았던 사정이 눈에 들어왔다. 지역 특성상 맞벌이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가 많았던 까닭에 오후 시간 마을 한 켠에서 진행된 인형극은 늘 인기 만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삼덕동에 대한 기분좋은 추억 하나를 남겨보자고 벌였던 판은 마을을 다시 살게 했다. 소공연 중심의 인형마임축제를 기획했다. '머머리섬 축제'다.
 
마을에 살게하는 힘
 
험난했던 난관을 주민들과 등을 지는 것이 아닌 모든 주민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타개해나간 것 역시 주효했다. 마을 축제를 위한 예산 3000만원 중 공연단체 등에 지불되는 개런티 외에 비용은 모두 지역 안에서 쓴다. 예산이 조금 더 들어도 동네 문방구에서 재료를 사고, 음식 준비는 골목 슈퍼를 통해 한다. 조직위가 운영하는 것은 간단한 간식 종류를 파는 '인형포장마차'가 전부다. 매년 2000~3000명이 넘는 방문객들은 알아서 마을 구멍가게 문을 두드린다. 축제를 할 때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도 태권도, 웅변, 동화구연 등 스스로 장기자랑도 하고 다문화가정의 어머니들은 자신들 나라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 삼덕동은 담장을 허문자리에 마을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후 삼덕동에 주소를 둔 사람들로 추려진 '삼덕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재개발의 범위를 전체 면적의 4분의 1로 막아내며 마을을 지켰다.
 
지금도 재개발 사업과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로 8년째 열린 '머머리섬 축제'는 처음 두 눈 반짝이며 공연에 몰두하던 아이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언젠가 자신을 닮은 아이들의 열연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지속성'이다. ▲특별취재반=고 미 경제부장·고경호 편집부 기자

인터뷰 /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다,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대구 삼덕동 마을 만들기의 산증인인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은 마을은 '고향'이다. 우연히 삼덕동 주민이 된 그는 그 곳을 고향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공간으로 담장을 허문 자신의 집을 내놓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김 사무총장은 "마을 만들기는 거창한 도시 재생 사업이 아니라 아이들이 크는 것을 함께 지켜보고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쉽다.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이 마을이라고 한다면 마을 만들기는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 김 사무총장의 지론이다.
 
때문에 "제대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산이나 전문가 영입에 앞서 '마을 읽기'부터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총장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기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계량화가 필요한 행정행위의 결과와 커뮤니티(마을공동체) 디자인 사업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지속성'이다. 김 사무총장은 "필요에 따라 조직도 만들고 그도 안되면 의견을 조율하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마을이 해야지 마을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안된다"고 조언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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