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회복 "공동체에서 답을 찾다"] 13. 강원도 인제 백담마을

▲ 백담마을 마가목 축제 장면.
내설악 빈촌에서 '마을 기업' 2곳 운영 부촌으로
일자리 창출·정착지원금 등 인구 유입 효과 톡톡
황태 이어 마가목 소득원·축제로…계속 '성장중'
 
마을기업이 뜨고 있다. 처음 마을기업이란 단어를 만든 정기석 농촌·귀농 컨설턴트의 말을 빌려 '마을 기업은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괴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거나 형성하는 데 기여하며, 지역 복지의 빈틈을 메우는 구실'을 한다. '백담 마을'이라 불리는 강원도 인제 용대2리가 그랬다.
 
백담마을기업·용대향토기업 운영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것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운영한다. 수익도 추구하지만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며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도 실현한다.
 
이렇게 거창한 취지에 앞서 마을기업은 공동체 복원과 분열된 지역 사회를 통합할 장치로 제안됐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마을 공동체를 위해, 더불어 설립하고 경영하는 지속 가능한 사업 단위체'인 셈이다. 큰 수익을 내지 않더라도 '작고 낮고 느린, 일과 삶과 놀이가 하나 되는 생태적인 공동체'로 시작했다고 하지만 많은 마을 기업들이 경제 논리에 부딪히며 문을 닫고 또 다른 지역 분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백담 마을은 사정이 다르다. 마을 기업의 뿌리도 오래됐고 벌써 2개의 마을기업이 기반을 잡았다. 그 중 하나는 지난 1996년 버스 1대로 시작한 용대향토기업이다.
 
마을기업이란 개념이 정립되기 전 백담사와 마을간 버스 운행으로 마을 공동 수익을 창출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 버스 10대·한해 매출 16억원으로 성장했다.
 
제대로 '마을기업' 수식어를 단 것은 2011년 설립된 '용대2리주민백담마을영농조합법인'(백담마을기업)이다. 지역 특산물인 황태와 마가목 판매장을 운영하며 지난해만 매출 4억원을 올리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을기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아예 판매장 옆에 가공공장과 저장고를 마련하는 등 부피를 키우고 있다.
 
▲ 황태 백담마을 용대2리 판매장 전경.
이들 마을기업 모두 백담마을 전체 197가구의 세대주 모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 이장은 "이장 월급을 마을기업에서 받는다"고 귀띔했다. 연봉이 보통 중소기업 과장급 수준이 된다. 마을 총무 월급 역시 정보화마을 지원분 외에 마을에서 보태준다. 별도로 체험마을 사무장과 직판장 사무장을 두고 있는가 하면 정보마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별도 인원까지 두고 있으니 마을 전체가 하나의 기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살기 좋은 마을로 연어 효과
 
마을기업을 통해 수익을 얻는 외에도 백담마을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젊은 마을로 변해가도 있다. 마을이장과 총무, 사무장을 제외하고 직판장과 가공공장, 버스 운전사와 매표·검표요원 등 줄잡아 30여명이 마을 기업에서 월급을 받는다.
 
한해 순전히 마을을 위해 쓰는 예산만 2억5600만원이다. 별도로 버스 발전기금을 적립하는 외에도 마을주민의 적십자회비나 주민세를 공동으로 지출한다. 고등학교와 재학에 진학하는 마을 아이들에게 주는 장학금 외에도 '정착지원금'을 운영한다. 마을에 입주해 3년만 지나면 마을주민들과 똑같이 설과 추석 등 명절에 가구당 30만원 상당을 지원받는다.
 
일자리가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도시로 떠났던 마을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 효과도 봤다. 올해만 7가구가 백담마을 구성원이 됐다.
 
처음 강원도 새농촌건설운동 사업을 신청했을 때만해도 마을 일에 참여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주민들도 일한 만큼 품삯을 받게 되면서 달라졌다. 특히 산골마을에서 별다른 소일거리를 찾지 못하던 노인이나 여성들에게 있어 마을기업은 생활의 활력소 역할까지 하고 있다.
 
▲ 백담마을 체험 프로그램 참가한 아이들.
여전히 황태가 주 판매원이지만 15년 전 심어둔 마가목이 새로운 소득원으로 부상하면서 마을기업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마가목은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열매·잎·나무껍질 등이 약용으로 쓰인다. 황태마을이 불리던 백담마을이 매년 가을 마가목 축제를 열 정도다.
 
올해 5회째를 맞는 마가목 축제는 보통의 특산물 축제와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갖는다. 물론 마가목길 걷기대회나 마가목 음식 무료시음회, 마가목 효소 체험 등 특산물과 관련한 행사가 중심이지만 하늘내린센터 전시실을 활용해 생물자원 전시회를 꾸리고 지역 멸종위기 희귀동식물을 알리는 자리도 마련했다. 방과후 학교 페스티벌을 통해 지역 아이들을 위한 자리를 내주고 생물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세대감 공감도 유도한다. 얻고 가는 것이 많으니 저절로 참가자가 늘 수밖에 없다. 수익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어서 혼잡한 대신 여유롭다. 그렇게 체류형 관광단지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꿈이 채워진다. ▲특별취재반=고 미 경제부장·고경호 편집부 기자

인터뷰 / 정래옥 용대2리장
 
"처음에는 무슨 그런 일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은 서로 한다 그래요. 마을 일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정래옥 용대2리장은 백담마을기업의 산증인이다. 1996년 용대향토기업이란 이름으로 백담사~마을간 버스를 산 것도 정 이장의 작품이다. 한동안 이사장직도 맡았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마을에서 선출한 적임자에게 자리를 내줬다. 다시 마을 이장으로 한 시도 쉬지 않고 마을일을 살피고 있다.
 
정 이장은 "마을기업이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마을사람들이 얻는 자부심이 더 가치 있다"고 말했다. 한 때 젊은이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나고 막연히 백담사를 찾는 관광객들에 의지했던 공허했던 마을에 이제는 사람 소리가 난다는 것만으로도 흥이 난다는 얘기다.
 
익숙한 얼굴의 젊은이를 만나는 일도 흔해졌다. 도시생활에 시달리다 마을 일을 찾아 온 세대들이 마을기업의 다음을 이끌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 역시 백담마을의 장점이다.
 
정 이장은 "마을 구석구석 볼거리를 개발하고 체험마을을 추가로 구축하고 있다"며 "체류형 관광단지로 자리를 잡는다면 마을에서 살겠다는 사람이 더 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고 미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