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1. 프롤로그

▲ '문화유산' 보전·전승의 중요성이 부각, 지역 실정에 맞는 '제주형 무형문화유산'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사진은 고 이중춘 심방이 집전했던 제주큰굿.
도내 무형문화재 24건…지원책 미비 명맥만 유지
지역성 반영·시대 변화 흐름 맞춰 접근 전환 시급 
 
2013년 마지막 날 국회 본회의에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의 의미는 크다. 그동안 '원형성'기준에 묶이며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평가 기준이 만들어진 것과 동시에 그동안 문화재라는 이름 아래 고정화됐던 전통문화의 가치를 보다 광범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무형'이라는 이유로 관심에서 소외됐던 문화재·유산들에 있어 전승·보전이란 새 틀을 짤 수 있게 됐다. 유산적 접근을 통해 제주가 지닌 무형문화자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전승·보전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 '무형'문화 자산 홀대 여전
 
문화재는 크게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로 나뉜다. 제주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며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문화유산'은 상당수 무형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실체'가 있는 유형의 유산들과 달리 무형의 유산들에 대한 대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현재 제주도 소재 국가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는 24건이다. 중요 예능·기능보유자 상당수가 고령인데다 이를 전수하려는 전수 조교나 전수장학생은 줄어들고, 지원 체계도 미비하면서 일부는 단절될 위기에 처한 지 오래됐다.
 
국자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5호인 제주민요는 보유자인 조을선 선생이 지난 2000년 작고 한 이후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도지정무형문화재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영감놀이(2호)와 제주 큰굿(13호)은 기능 보유자인 이중춘 옹이 지난 2011년 별세한 이후 각각 조교와 이수자만을 두고 있다. 멸치후리는 노래(10호)와 제주농요(16호)도 각각 보유자 김경성씨와 이명숙 명창이 작고한 이후 조교와 전수장학생으로 문화재라는 구색만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며 소멸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도 상당수다. 제도가 바뀐다고 이들에 대한 대접이 한꺼번에 달라지지도 않는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홀대 논란이 예상되는 등 종합적이면서 체계적인 접근이 주문되고 있다.
 
▲ 정동벌립장
# 상대적 상실감 우려도
 
이들 우려는 최근 국가적 차원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작업과 맞물려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아리랑'에 이어 2013년 '김장문화'를 대표목록에 올렸다. 그동안 민족의 정서를 반영한 상징성 있는 문화 아이템으로 분류했던 것이 '문화유산'범주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는 국가 또는 지역에서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기준에 놓였지만 2012년 4월 '인류무형유산 등재신청 목록 선정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문화재청 예규를 통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무형문화재를 '국가목록'으로 규정하며 해결했다.
 
이어 기존 중요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 외에 관련 연구기관에서의 조사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정하는 '예비목록'까지 만들었다.
 
제주에서도 현재 '제주해녀문화'가 이들 기준으로 2015년 대표목록 등재 자격을 얻었고, 3월 유네스코 등재신청서 접수에 앞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통한 첫 '무형 문화재'인정 문화유산이 될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전승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기준으로 도문화재위원회 심위에도 오르지 못했던 제주해녀문화가 국가 문화브랜드로 평가받게 된 것은 제주 입장에서는 반갑다. 하지만 이미 지정된 '무형문화재'들로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정으로 인해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갓일' 보유자 강순자(사진 왼쪽)씨와 '망건장' 보유자 강전향씨(오른쪽).
# '사회적 동의' 절실
 
무형의 문화재·유산 관리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제도적 틀 안에서는 전수회관을 만들고 보유자와 전수조교 등을 두며 이에 따른 약간의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형태로 무형의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손으로 물을 퍼 나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의 무형문화재·유산 관리는 달라야 한다. 원형성에 매몰되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전승·보전이 가능한 체계를 서둘러 구축하는 것으로 지역성을 반영한 문화유산을 보호·육성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제주해녀문화' 문화재 지정 작업을 모델로 새로운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문화재'로 묶였던 무형의 문화자산을 '문화유산'으로 접근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형의 자산인 만큼 가장 서둘러야 할 것은 '원형'에 대한 기록과 인정이다. 그리고 전승·보전을 위한 '사람'육성이 다음 차례다. 유산인 만큼 활용을 통해 삶에 녹여내는 과정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기록과 전승 체계 구축은 행·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활용은 사회적 동의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무형문화재들로부터 현황과 개선 방안을 듣고 적용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고혜아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