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1.프롤로그

개발 압력 마을공동목장 절반 사라져…65곳 불과
목축 문화재·의례·문화 전통가치 유지 노력 필요
제주의 해안 마을에 '잠녀'문화가 있다면 중산간 마을에는 '목축'문화가 있다. 잠녀문화에 대해서는 제민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학계의 연구와 재조명이 이뤄졌고, 최근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되고 있지만 목축문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나 일반의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올해는 특히 말산업특구 지정으로 제주 전통산업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목축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좋은 시기를 맞고 있다. 사라져가는 옛 중산간 마을의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전문가와 함께 도내 '마을공동목장'을 직접 돌며 사료를 축적하고 목장과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전한다.
마을공동목장의 형성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등 왕조시대 행해진 제주의 목축형태는 국영 형식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끼리는 '목축계' 운영 등 '공동'의 개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제주인들이 유구한 세월 동안 이땅에서 공동목장을 운영해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사료에는 공동목장이라는 개념이 분명치 않았던 탓인지 이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기획에서는 '공동목장'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를 다룬다.
제주지역 목장조합은 한라산 중산간지대에 펼쳐진 초지대에 등장한 공동목장의 운영조직이었다. 특히 제주에는 맹수가 없고 겨울철이 온화해 연중방목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국영목마장이 운영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일제는 제주 지역 목야지 정비사업을 지시하면서 마을단위로 공동목장조합을 설립토록 명령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중산간 지역 국영목장 터는 마을공동목장 지대로 재탄생했다.
사라지는 목축 전통
마을공동목장은 일제시기에 비로소 역사무대에 등장했지만 넓게 보면 제주지역에 존재했던 고려말·조선시대의 목축전통에 뿌리를 둔 것이다.
고려말 제주지역에 몽골이 '탐라목장'을 설치해 군마를 생산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종이 한라산지에 있었던 기존의 방목장들을 개축, '제주한라산목장'을 설치했다. 이 국마장은 이후 '10소장'으로 운영되면서 제주는 대표적인 말 생산지로 전국에 알려졌다. 한마디로 제주사에 있어 조선시대는 '목축의 시대'였다.
이러한 지역적 전통은 이후 국영목장 폐지와 일제강점기 재편성, 제주4·3, 6·25 등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불가피했다. 특히 제주 4·3으로 인해 많은 가축이 희생됐고, 마을 자체도 사라지거나 큰 피해를 입으면서 목장조합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개발바람과 함께 마을소유의 공동목장이 매각되면서 목장조합이 해산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목장조합의 해산은 곧 축산업의 포기인 동시에 전통적 목축문화의 소멸을 의미한다. 지금껏 유지됐던 초지관리시스템이 붕괴되리라는 것도 뻔한 사실이다.
관련 연구 진행…관심 필요
이처럼 사라져가는 중산간 지역의 목축전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시도가 도내 일각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런 일로 평가된다.
제주도 목장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강만익 박사가 지난해 1월 「일제시기 목장조합 연구」를 펴낸데 이어 제주도 문화관광해설사회는 「제주도 목장사 동부지역」과 「제주도 목장사 서부지역」을 잇따라 출간했다.
강 박사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공동목장조합 설립과정부터 운영체계, 재정실태 등 분석을 통해 역사적·총론적으로 접근했다면, 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회는 개별 마을공동목장 조사를 통해 각 마을 공동목장조합의 현황파악과 목축문화 소개에 주력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도내 공동목장 116곳중 남아있는 곳은 불과 65곳 정도. 50여곳은 이미 소멸돼 방치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본 기획에서는 강만익 박사와 좌동열 문화관광해설사를 자문단으로 초빙, 남아 있는 공동목장을 함께 현장 답사하며 공동목장조합의 형성과 운영·변화·쇠퇴 과정을 조사하는 한편 목장내 경계돌담·급수터·방풍림·테우리막 등 목축시설과 방앳불 놓기 등 목축의례 등 역사와 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공동목장에 대해서도 그 과정을 더듬으며 앞으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지에 대해 모색해본다. 김봉철 기자

강 박사는 "공동목장조합수가 반토막난 현재 상황에서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공동목장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지역사회에 알리는 작업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그간 모아온 사료들을 바탕으로 현장을 직접 탐사하며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이 살았던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연들이 바람 속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있다.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