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원동내 100만여㎡에 걸쳐 조성된 하원공동목장은 설립 과정부터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36조에 달하는 자체규약을 제정하고 마을사람들의 출자를 받는 등 민주적으로 목장을 운영해 왔다. 사진은 하원공동목장 전경. 김봉철 기자
1935년부터 3년간 기반조성…100만여㎡에 이르러
방목기간 등 산북과 차이…색다른 목축풍습 눈길
서귀포시 옛 탐라대학교 사거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드넓은 목장지대가 옛 모습 그대로 펼쳐진다. 멀리 한라산과 아래로는 서귀포시 앞바다까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하원공동목장이다. 이른 봄부터 올린 암소와 송아지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중산간의 정취를 더해준다.
설립부터 현재까지 마을과 함께
하원동내 62필지 100만여㎡에 걸쳐 조성된 하원공동목장은 설립과정부터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
지난 1935년 마을 주민 178명이 토지와 현금을 출자해 목장용지를 확보했고, 그후 3년여에 걸쳐 어려움 끝에 축성작업과 급수장 시설, 잡목 제거, 목도시설 등 기반조성을 마치고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설립 과정에서 일제와 제주도사의 지시와 감독이 있긴 했지만 36조에 달하는 자체규약을 제정하고 마을사람들의 출자를 받는 등 민주적으로 목장을 운영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공동목장 설립은 마을회가 발간한 「하원향토지」에서 '우리 마을 유사 이래 마을주민이 가장 단합된 힘을 발휘한 대역사'로 소개할 정도로 마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설립 당시 조합규약을 보면 축우마가 없거나 적은 조합원을 위해 조합 소유의 씨숫소를 갖게 하거나 금융조합 등을 통해 자금을 빌려 소를 갖게 하는 등 당시 공동목장조합은 주민 전체가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인지 도내 많은 공동목장에서 축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반면 하원목장에는 아직도 12개 농가가 가구당 15마리 내외의 소를 키우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소가 숲속에 설치된 수도관을 타고 내려온 '언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물' 문제 해결 공 들여
따뜻한 남쪽 지역에 위치한 탓에 축산풍습에서 산북과 차이를 보인다.
제주시 지역 목장들이 5월 들어서야 소를 올리는 데 반해 하원 마을에서는 4월초부터 11~12월까지 소를 방목했다. 이는 산북보다 3개월 가까이 긴 것으로, 사료값 절약 등 축산농가 사정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었다. 올해는 4월4일에 일제히 소를 목장으로 올렸다.
윤환방목을 하는 것은 다른 목장과 비슷했지만 경계림 조성보다 목장을 가로지르는 중산간도로와 도순천 지류 등 지형지물을 이용해 목장을 6개 구역으로 나누고, 소들을 한 구역에서 5일씩 풀을 뜯게하면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시킨다. 한달이 되면 다시 순환주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진드기 구제는 진드기구제장 3곳에서 10일에 한번씩 해주고 있다.
하원목장 조합원들은 특히 모든 목장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인 '물'문제 해결에 공을 들였다.
목장까지 수도를 연결하기 어려웠던 시절, 원수윤씨(56)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한라산 영실매표소에서 동남쪽으로 40분을 걸어가면 나오는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로 했다.
길도 없는 숲속에서 8㎞ 길이의 수도관을 설치하는 고된 작업 끝에 지금 소들은 목장내 급수장 3곳에서 연중 시원한 영실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한라산에서 내려온 그 물을 '언물'이라 부르며 "쇠가 사람보다 더 좋은 물을 마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언물은 물이 깨끗하고 달아 조합원들도 목장에서는 수돗물 대신 소에게 주는 물을 먹고 있다고 한다.
▲ 한라산에서 방목할 때는 소도둑들을 염려해 낙인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귀표만을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축산 풍속도 남아
다른 공동목장에서는 거의 사라진 '방앳불 놓기'도 최근까지 남아 있었다.
목장에서 소를 축사로 옮기고 나면 목장 내 가시덤불에 농약을 뿌리고 나서 마르면 불놓기를 하는데, 하원 마을에선 이를 '화엽'이라 불렀다. 요즘에는 목장의 구역중에서 가시덤불이 많은 일부를 정해 서귀포시의 허가를 받고 소방서에 알려 소방차를 대기시켜놓고 불놓기를 한다.
불놓기를 하고난 후에는 목초씨앗을 뿌려 다음해 봄에 돋아나는 풀들을 소들이 먹을 수 있게 한다.
제주에서의 전통적인 방앳불놓기는 이른 봄에 행해지는데 비해 이 마을에서는 소들을 축사로 옮기고 나서 겨울에 행해지고 있었다. 하원공동목장의 불놓기는 2010년까지 행해졌고 그 해에 허가 받을 수 있는 면적이 9만9000~12만2000㎡정도였다고 한다.
과거 한라산에 방목할 때는 낙인을 했는데, 하원 마을을 나타내는 '하원'(下元)이라고 표시했다. 당시 한라산에 구엄·광령·하원 마을의 소들이 같은 구역에 방목했는데 낙인이 없는 소는 소도둑들이 도둑질을 해갔다고 한다. 그러나 낙인이 있는 소를 도둑질하다 들키면 크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요즘은 낙인은 하지 않고 귀표만 한다.
목장에 소를 돌보러 올 때는 기다란 작대기에 밧줄을 들고 다니는데 이는 밧줄을 작대기 끝에 끼워 소 가까이에 갖다대고 걸기 위한 것이다. 이 작대기는 주로 종낭(때죽나무)으로 만들며,2년 정도 쓰고 나면 새로 만들어야 한다. 김봉철 기자
▲자문단=강만익 문학박사(한국사)·문화재전문위원, 좌동열 문화관광해설사.
하원공동목장에서는 새해가 돼 목장에 처음 소를 올리는 날, 마음 속으로 한 해 동안 소가 별탈없이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의례가 열렸다.
목장 조합장은 이날 아침 6시가 되면 돼지머리에 쇠고기, 쌀밥과 솔라니(옥돔), 그리고 채소로는 미나리, 콩나물, 고사리, 소주와 음료수, 향 등을 준비해 목장 구역에서 처음 소를 들여 놓을 곳에 제단을 마련해 제를 올린다. 제물은 모두 생으로 준비한다.
제주도내 목장에서는 백중제를 중요시하는 마을이 많은데 비해 이 마을에서는 백중제는 지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원마을 공동목장에서는 말보다 소를 키웠는데, 예전에 수의사가 없을 당시에는 소의 질병 치료를 직접해야 했다. 소에게는 질병이 별로 없었지만 설사가 잦았다. 소가 설사할 때는 황벽나무가지를 달여 그 물에 오메기떡을 해서 술을 담아 그 술을 먹였다.
일부 소들은 풍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풍에 걸린 소는 겉으로 피부가 달라 보여 바로 알아볼 수 있었지만 딱히 치료 방법은 없었다.
테우리들에 의하면 소의 쓸게에 우황이 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황이 든 소는 잘 먹여도 살이 찌지 않는다.
소의 우황은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도 많이 났는데, 큰 우황일 경우 소의 가격 보다 더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잘한 우황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우황을 '모멀 우황'이라 하며 팔 수 없는 것들이었다.
소가 새끼를 낳아서 젖을 물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대게 쇠막(외양간)에 다른 소가 있어 어린 새끼를 핥아줘버리면 냄새로 새끼를 구별하는 어미소는 젖 주기를 거부한다. 이런 때는 병에 깨끗한 물을 담고 입구를 새(띠)로 막아 거꾸로 세워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게 하며 비념을 하고, 어미소를 밧줄로 묶어 새끼가 젖을 빨 수 있도록 해준다. 대부분 새끼는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달라붙어 젖을 빨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면 문제가 해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