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8.해녀노래

▲ 잠녀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숨비소리'다. 폐를 찢는 듯 날카로운 소리는 바다를 지나 섬 안팎 사람들의 가슴을 흔든다. 숨비소리는 물 속 작업으로 오래 참았던 호흡을 내뱉는 것만은 아니다. 섬 어디서건 '이여싸나(이어도사나)'하는 '노젓는 소리'의 후렴구에서도 장단처럼 숨소리가 난다.
발굴 문화재…유네스코 등재 신청에 큰 역할 
"작업 환경 변화에 맥이 끊길라" 관심 필요
 
잠녀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숨비소리'다. 폐를 찢는 듯 날카로운 소리는 바다를 지나 섬 안팎 사람들의 가슴을 흔든다. 숨비소리는 물 속 작업으로 오래 참았던 호흡을 내뱉는 것만은 아니다. 섬 어디서건 '이여싸나(이어도사나)'하는 '노젓는 소리'의 후렴구에서도 장단처럼 숨소리가 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1971년 제주도무형문화재 지정 작업을 하면서 그 1순위에 '해녀노래'를 올렸다.
 
잠녀들의 삶 녹아들어
 
지방무형문화재 '1호'라는 수식어 외에도 '해녀노래'는 발굴 문화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 먼바다 작업을 위해 목선을 타고 직접 노를 저을 때 부르던 노래는 풍선과 발동선 등이 등장하면서 사라졌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 전국민속예술경연에서 '해녀놀이'가 입상하며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유래에 대한 논란 끝에 1971년 '해녀노래'를 도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됐다. 시작이 어찌됐든 '제주해녀·해녀문화'를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대상으로 신청하는 데 '해녀노래'의 역할은 컸다. '문화'라고는 하지만 그를 대표하는 것은 물질도구와 옷 등 민속자료가 대부분이다. 잠녀들의 기억을 제외하고 그들의 삶과 정신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은 '해녀노래'가 유일하다.
 
제주 전역에서 구전되는 노래다 보니 가락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힘든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연이 구구절절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죽했으면 '저승도'다. '바다밭'을 일구고 살았던 잠녀들에게 숙명과도 같았던 물질, 그 속에서 맺힌 한은 쉽사리 내려앉지 않는다.
 
'이여싸나'하는 후렴구 뒤로 한숨 같은 '허' '히'하는 소리가 따라간다. 작업장까지 가는 길에 만난 센 물살에 두렵기도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엔 더욱 힘이 들어간다.
 
'쳐라 자리야 잘잘 잘도간다/ 쳐라 베겨라 이여도 싸나/혼(아래아)목을 젓엉 놈(아래아)을준덜/ 허리야지덕 배지덕말라' 
 
소리 좋은 잠녀가 독창을 하기도 했고 사설을 서로 번갈아 부르는 교환창, 선소리에 동조되는 후렴구로 구성된 선후창으로 불려졌다. 여기에 물살 세기가 노래의 빠르기를 좌우하고, 테왁과 빗창을 악기로 장단을 맞추면 됐다.
 
섬 밖에서는 '해녀노래'를 단순 잠녀들의 강인함의 상징이라 표현하지만 그 안에는 물질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참아내야 했던 애달픈 사연들이 녹아있다.
 
해녀노래가 섬 안에서만 불리는 것도 아니다. 제주에서는 몰랐던 가락을 바깥물질에서 배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모두가 하는 소리가 아닌 탓으로, 해녀노래가 '해녀 노젓는 소리'라 해서 노동요로 분류하는 이유기도 하다.
 
▲ 해녀노래는 소리 좋은 잠녀가 독창을 하기도 했고 사설을 서로 번갈아 부르는 교환창, 선소리에 동조되는 후렴구로 구성된 선후창으로 불려졌다.
여성이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동요 
 
'잠녀'라는 특정 집단에서 물질을 하기 위해 오갈 때 타는 배의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동요는 세계에서도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특별한 전승 장치 없이 생업 과정에서 저절로 터득된다.
 
잠녀들의 물질 작업만으로도 독특하지만 작업의 출발에서부터 잠수 작업과 작업 목적 등의 물질, 출가 과정, 출가 생활, 신세 한탄, 연모의 마음 등을 총망라한 '해녀노래'는 그 뜻을 알 때 더욱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도 '해녀노래'라 부른 것이 있지만 물질을 하거나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동요'는 아니다.
 
문화재로 지정됐다고는 하지만 '해녀노래' 역시 '전승'에 대한 고민이 크다.
 
도지정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인 1971년 정순덕 할머니가 보유자에 이름을 올렸고 이어 안도인 할머니가 명맥을 이었다. 하지만 2004년 안도인 할머니가 별세한 이후 잠깐 단절의 위기를 겪었다. 해녀노래 특성상 전승자가 고령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음'을 정하는 작업에 손을 놓고 있던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유자가 전승자를 정하는 형태가 아닌 도문화재위원회 심사만으로 보유자를 선정하는 진통을 겪었다.
 
현재 보유자 강등자·김영자, 전수장학생 고연옥·강경자·안미선씨로 맥(脈)을 잇고는 있지만 전승에 대한 우려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 해녀박물관에서 진행중인 해녀노래 공연 모습.
정체성 담보 문화상품화
 
해녀노래는 지금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노를 저으며 저절로 습득하는 방식이 아닌 '공연'을 위해 전승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 7월 문을 연 '제주해녀노래 전승관'에서는 교육용 '노'가 있지만 전수자들 중 직접 노를 저어 물질을 해본 경험은 찾기 어렵다. 이마저도 보유자 2명과 전수장학생 3명만 손에 쥘 뿐 전승관 한쪽 자리를 지키는 일이 더 많다.
 
'소리'라는 특성상 사람을 통한 전승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영상 콘텐츠 등을 활용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해녀노래'를 문화재라는 틀에 묶어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삶 속에 녹여내는 것으로 문화상품화 할 필요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재일제주인 음악가 양방언씨와 현기영 소설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신 해녀노래'다. 구좌 잠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이 노래를 쉽게 배웠다. 누가 들어도 자신의 얘기만 같고 불턱 대신 쓰는 잠수탈의장에서나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물질을 나서는 길에서도 흥얼흥얼 부르기 쉬웠기에 가능했다. 이를 활용한다면 '공연'이 아닌 '경연'을 통한 전승장치 마련도 가능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구좌읍 행원리'에 묶여있는 '해녀노래'에 대한 관심을 도 전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수용할 수도 있다. 고혜아 기자

▲ 강등자
▲ 김영자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호 '해녀노래' 보유자인 강등자·김영자 선생은 맥(脈)이 끊길까 걱정이 앞선다.

김영자 보유자가 "바다에 물질하러 나갈 때야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왔지만 지금은 어디 그러겠느냐"는 한숨 섞인 소리는 그저 우려만은 아니다.

강등자 보유자 역시 "해녀노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도 다들 '생계' 걱정을 하면 해녀노래전승관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을 일"이라며 전승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다. 강 보유자는 "학생들이 배우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모두들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며 "전승을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뱃물질을 나서지 않으니 노래도 노젓는 속도가 아니라 공연을 위한 빠르기로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며 "대중화를 위한 변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해녀노래'가 지닌 정체성 또한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지역마다 달리 부르긴 하지만 '해녀항일가', '멸치 후리는 노래', '노 젓는 소리' 등의 노동요도 잠녀문화와 뗄 수 없는 노래들로 대중의 입에서 불려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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