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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어둠을 넘어 진실의 이름을 다시 쓴다['더 큰 생각 더 큰 제주'를 말한다] ■ 다시 시작하는 제주의 역사 4·3
김영헌 기자
입력 2014-06-01 (일) 16:25:13 | 승인 2014-06-01 (일) 18:44:57 | 최종수정 2014-06-02 (일) 10:27:36
4·3 특별법 시작으로 진실 드러나
추념일 지정 불구 여전히 진행형
 
   
 
  ▲ 제주4·3은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아픔과 어둠의 역사다. 하지만 도민들은 4·3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고 빛의 역사로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 4·3평화공원 전경.  
 
제주 4·3은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아픔과 어둠의 역사다. 하지만 도민들은 4·3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고 빛의 역사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4·3은 두가지 역사를 갖고 있다. 하나는 66년 전의 비극을 기록한 역사이며, 또 하나는 50년간 국가에 의해 묻혀있던 4·3의 진실규명 과정을 기록한 역사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미완의 역사다. 
 
미완의 역사
 
제주 4·3평화기념관에는 백비(白碑)란 이름의 비석이 있다. 일반적으로 무덤 앞에는 비석이 바르게 세워지지만 백비는 옆으로 눕혀져 있다. 제주4·3역사가 현재까지도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채 미완성의 역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어둠 속에서 철저하게 묻혀 있던 4·3의 진실이 빛을 보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1월12일 법률 제6117호로 제정·공포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으로부터 시작됐다.
 
4·3특별법은 4·3의 진실을 밝히는 진실규명과, 이를 통한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 전체의 명예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어 4·3특별법에 근거해 구성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2003년 10월15일 열린 제8차 회의에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를 최종 확정했다. 보고서는 4·3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동안 폭동으로 치부됐던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결정체가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같은해 10월31일 제주를 방문한 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자격으로 4·3유족과 도민들에게 국가권력의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사과를 했다. 또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국가원수로는 처음 제58주년 제주4·3사건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했다.
 
그리고 2014년 3월24일 제주 4·3이 66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4·3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역사다.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결론에 "이 보고서는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4·3사건의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 경찰 등 주요기관의 관련문서 폐기와 군 지휘관의 증언 거부, 미국 비밀문서 입수 실패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4·3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임을 밝히고 있다. 

60년대부터 진실규명 운동 전개
정부 의지·도민역량 재결집 필요
다시 쓰는 4·3의 역사
 
4·3의 역사가 4·3국가추념일 지정이라는 자리까지 올 수 있던 것은 4·3진실규명 운동이라는 또 다른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4·3진실규명 운동은 1960년 5월 제주대 법학과 학생 7명이 '4·3사건진상규명동지회'를 결성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다음해 5·16군사쿠테타로 다시 묻히게 됐다.
 
하지만 1978년 서슬퍼른 유신시절 누구도 입에 담지 못했던 4·3의 참혹함이 제주출신 소설가 현기영씨의「순이삼춘」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4·3진실 찾기의 물꼬를 트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운동단체, 학계, 문화예술, 대학생, 언론계 등의 진상규명운동이 본격화됐다. 또한 1993년 3월 제주도의회가 4·3특별위원회를 구성, 수십년간 금기시 됐던 4·3사건을 공론화의 장으로 이끌어 냈기도 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4·3의 진실규명 운동 과정서 피해 당사자인 제주 4·3희생자유족회는 물론 도내·외 4·3 관련 단체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결국 50년 넘게 도민들과 4·3희생자 및 유족들이 함께 이뤄낸 4·3진상규명 운동이 어둠 속에 묻일 수 있었던 4·3의 역사를 빛의 역사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또한 그동안 4·3특별법 제정, 4·3진상보고서, 대통령 사과, 세계평화의 섬 지정 등 4·3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4·3진실규명에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추가진상조사, 유족 지원, 4·3평화재단 역할 강화, 국민 공감대 형서을 위한 4·3교육 등 4·3완전해결을 위한 과제들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이번 4·3 국가추념일 지정을 계기로 미완성의 4·3 역사를 마무리 짓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4·3국가추념일 지정으로 국가 차원의 의제가 된 4·3완전 해결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물론 도민들의 역량 재결집이 요구되고 있다. 김영헌 기자

"도민들의 힘으로 자존을 되찾았다"

인터뷰 / 양조훈 전 4·3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어둠의 역사였던 제주 4·3을 도민들의 힘으로 빛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양조훈 전 4·3위원회 수석전문위원(전 제주도 환경부지사)은 "제주 4·3은 가장 참혹한 희생을 치룬 불행한 역사였고, 제주도민들을 이념적 누명으로 옥죄였던 금기의 역사였다"며 "하지만 제주도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자존을 되찾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 양 전 위원은 "4·3특별법 제정을 비롯해 4·3진상보고서, 대통령 사과 등으로 이어지는 4·3진실규명운동에 대해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으로 이뤄졌다는 학계의 평가가 있다"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4·3문제를 여전히 이념적으로만 접근하려는 시도, 가해세력의 비협조 등을 꼽을 수 있다"고 밝혔다.

양 전 위원은 또 "4·3추념일 지정은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에 대한 위로와 추모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된다는 의미와 함께 제주도민의 이념적 누명에 대한 국가가 반성한다는 뜻도 담겨 있기 때문에 4·3의 명예회복에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한다"며 "이런 틀에서 정부는 앞으로 4·3 정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명예회복 사업 추진 등 4·3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성의를 갖고 접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양 전 위원은 "그동안 4·3 진실규명운동을 흔들어왔던 낡은 이념적 접근은 이제 설 자리를 잃고 있고, 역사가 그렇게 증명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제주도민들은 그동안 추구해 온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4·3유족회와 제주도경우회가 손을 마주 잡은 것은 좋은 본보기"라고 밝혔다.
 

김영헌 기자  cogito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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