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9. 제주도 옹기장①

 

▲ 사진 왼쪽부터 신창현 도공장, 이윤옥 질대장, 부창래 도공장, 김정근 굴대장

2011년 '제주도 옹기장' 지정…4개 기능 분업화
탄탄한 전수 체계 다음 세대로의 맥 잇기 '원활'

제주는 섬이다. 환경적 조건 탓에 타 지역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 보니 필요한 것은 만들어 썼다. 제주 옹기도 그렇게 탄생했다. 제주인의 삶과 맞물려 만들어진 생활도구다. 유약을 쓰지 않아 투박한 질감과 색이 두드러지지만 물이 귀하고 생활용품 수급이 쉽지 않았던 섬살이에 맞춰 요긴하게 쓰였다. 그 것이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굴드림에 참여하는 애기 도공.

# 허벅 대표성에서 분업 기능 인정 

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타 지역에서 대량 생산된 옹기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이내 플라스틱과 스테인레스 제품이 자리를 꿰찼다. 

수요가 줄면서 '맥'까지 끊길 위기에 처하기를 수 차례. 끈끈했던 섬의 생명력은 고스란히 옹기에 이어지며 오늘을 만들었다. 지난 2001년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4호로 '허벅장'이 지정되면서 한시름 놓았던 상황은 이후 제작과정에 대한 인정과 문화재 관리를 둘러싼 논란 끝에 2011년 '제주도 옹기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1960년대 산업화를 거치며 꼬박 한 세대 단절을 겪었지만 이후 제주 옹기 복원에 뜻을 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통문화 발굴 조사에 이뤄지며 1990년대 말 관련 자료를 집대성하며 문화재의 자격을 갖췄다. 

제주 옹기에 대한 관심은 처음 '허벅'에만 맞춰졌었다. 제주 환경에 맞게 제작된 허벅이야말로 제주인의 고단했던 삶의 상징이라는 이유가 보태졌다. 하지만 제주 옹기라는 이름으로 200여 종류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허벅'에 대표성을 두는데 대한 논란에서 부터 과정별 기능인을 찾는 작업까지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그렇게 '제주도 옹기장'이라는 이름 아래 굴대장(굴·가마를 보수·관리), 질대장(흙·땔감 준비), 도공장(옹기 모양 제작), 불대장(옹기를 불에 구워내기) 등 철저하게 분업화된 4개 기능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 전통방식으로 복원된 제주 옹기.

# '2세대'로의 교체 

'쓸 만한' 옹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흙과 물, 가마를 둘 수 있는 자리를 찾고 토림(돌이나 흙덩어리 등의 불순물 제거, 성형하는 옹기에 맞게 토래미 만들기), 성형(옹기 만들기), 건애(대장이 그릇을 성형할 수 있게 바닥과 토래미를 만들고, 움집으로 옮기는 작업), 보관, 굴들임(옹기를 굽기 위해 가마 안에 쌓는 것), 불때기(3일 밤낮으로 가마 불때기), 굴내기(굴에서 다 구워진 그릇 꺼내기) 등 7개 공정을 거친다. '옹기장'의 구색을 갖추는 과정도 비슷했다. 옹기를 제작하는 것만 꼬박 1년, 재료를 구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3~5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오랜 기다림을 감수해온 기능인들이지만 인정을 받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렸던 모양이다. 

허벅이 아닌 제주 옹기를 인정하는 움직임들에 있어 기능인들은 처음 거부 반응을 보였다. 과거 힘들었던 기억도 있었지만, '기능'을 인정한다는 데 대한 불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서 그들이 온몸으로 체득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숙련된 그들의 '손'이 꼭 필요하다는 수 차례 부탁에 마음을 열고, 한 뜻으로 '제주 옹기'라는 반듯한 이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기능인들의 연령대가 평균 70~80대라는 점은 마음을 바쁘게 했다. 불과 3년 사이 고홍수 굴대장과 고원수 도공장, 강신원 불대장이 별세했다. 고령으로 인해 무형문화재가 위기에 처했다는 현실에서 '제주도 옹기장'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제주도 옹기장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2세대'가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결성된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회장 허은숙)가 그 중 하나다. 전통 기술의 보존과 체계적인 전승을 위해 젊은 전수생을 포함한 기능인들이 중심이 된 이 사단법인인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주옹기 복원에 심취해 있다. 보존회원만 520여명에 이른다.

▲ 지난해 제주옹기굴제 모습.

# 전승·보전 넘어 활용에도 관심

전통 기술의 복원·전승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주 옹기' 대중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은 '제주옹기'를 단순한 지켜야 할 문화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문화유산임을 확인시킨다.

보존회는 결성 직후부터 가마 불떼기를 일반에 개방하고, 2011년에는 '제주옹기굴제(祭)'라는 이름의 축제를 열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계'를 조직해 굴(가마)를 만들었던 과거 전통을 발굴해 축제로 승화시킨 점은 특산물 중심의 지역 축제에 자극제 역할을 했다.

이런 변화는 '2세대로의 교체'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제주도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보유자 별세로 공석이 된 굴대장·도공장에 전수교육조교였던 김정근·부창래씨를 낙점했다. 

다른 종목들이 심의 과정에서 '검증' 등의 문제로 보유자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과 달리 옹기장은 상대적으로 탄탄한 전수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유효했다.

이번 새로운 옹기장 보유자 인정은 원만한 인수인계 차원이 아니라 '세대교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굴대장 2대 전수자인 김정근 보유자의 나이는 올해 43세로 문화재 기능인들 중에는 '젊은 편'에 속한다. 

1대 원로 기능인들이 '원천기술의 집대성'을 상징한다면 2대 보유자들은 '변화 모색'이라는 문화재사(史)의 새로운 획 역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당장은 1대를 계승하는 위치지만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 회원 중 전통 옹기 제작에 힘을 쏟고 있는 다음 세대가 줄을 서고 있다는 점은 '제주 옹기'가 전승·보전에 있어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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