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5.장전공동목장 ②

▲ 안트레센터에서 바라본 장전공동목장.
급수장·백중제 터·잣성 등 목축 역사 담은 유산 다양
제주만의 인프라 웰빙 레저산업서 활용 가능성 충분
 
제주의 공동목장에는 현재까지 목축유산의 원형이 많이 남아있다. 잣성 등 조선 시대 10소장의 유물부터 일제강점기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각종 목축시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공동목장의 축산업 외 또다른 가능성인 관광 레저 측면에서 소중한 자원들이다.
 
장전공동목장의 목축유산
 
관광목장으로 변신을 꾀한 장전공동목장에서도 옛 목축유산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모든 공동목장에 필수적으로 설치됐던 급수장이다.
 
급수장은 목장조합원들이 방풍림이 있어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특정 장소에 만든 물통이다. 공동목장이 위치한 곳은 대부분 틈이 발달된 현무암층으로 빗물의 지하침투가 쉬워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했다. 때문에 도내 공동목장들은 해당 조합원들을 출역시켜 일제히 급수장 설치공사를 진행했다.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 107-5번지에 위치한 궷물오름(땅속으로 패인 바위굴을 뜻하는 제주방언 '궤'에서 샘물이 솟아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전공동목장의 급수장도 조합원들의 인내와 땀방울로 만들어졌다.
 
1937년 일제강점기 때 궷물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가둬 목축에 필요한 급수장을 조성하기 위해 장전공동목장조합원들이 모래와 자갈을 바닷가에서 등짐으로 운반하는 고된 작업이 필요했다.
 
궷물오름 입구에 장전공동목장조합이 세운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 물은 주로 암소들이 이용했으며, 숫소들은 궷물오름 중턱에 위치한 속칭 '절된밭'에 조성한 연못을 이용했고, 그 동쪽에는 당시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샘도 있다.
 
▲ 물궷오름 입구 백중제 지내던 곳(왼쪽)·급수장(오른쪽).
당시 급수장은 시멘트로 조성됐지만 지난 2002·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자리에 돌을 얹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음력 7월 보름 무사방목을 기원하는 백중제 역시 이 지역에서 행해졌고, 그 장소는 궷물오름 정상에서 오름 입구의 급수장 옆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절된밭 남쪽에는 조선초기 조성한 5소장 상잣 원형이 동서로 일부 남아있는 등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5소장의 중심 지역으로 선조들의 목축문화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지역으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공동목장, 웰빙산업 주역 가능
 
궷물오름에서 내려와 장전공동목장 표지석을 지나면 안트레센터 맞은 편에 수십마리의 승용마를 갖춘 제주승마공원이 위치해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스포츠마케팅과 승마대회 후원 업무를 맡았던 서명운씨가 장전목장을 방문한 후 이곳 환경에 한 눈에 반해 설립한 승마장이다. 입소문을 타고 회원 가입이 늘며 말 12마리로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100마리를 넘어설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그에 따르면 제주는 드넓은 초지와 많은 수의 말 등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말산업의 미래가 밝은 곳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된 육성이 부족해 그 가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장전목장내 승용마들.
축산업중 말산업으로만 한정해 보면 전국 1500농가의 말 3만마리 중 70%인 1만9687마리를 제주 농가들이 키우고 있고, 올해는 특히 농림수산식품부의 제1호 말산업특구 지정으로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을 맞게 됐다. 
 
제주의 말산업중 '경마'가 96% 이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승마나 재활승마, 마육, 향장, 피혁, 말총공예 등 다른 분야는 발전이 더딘 상황이다. 
 
여기서 공동목장의 미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초지면적 3만8000㏊의 45%에 달하는 초지가 제주에 있고, 그 대부분이 공동목장과 오름을 낀 천혜의 승마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정이 추진하는 승마 전문 농장 육성과 전문인력 양성 등을 바탕으로 한 '웰빙'산업화 전략에서도 오랜 세월 이어온 목축문화와 말이 공존하는 공동목장이 그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서명운 제주승마공원 대표(52)는 제주 공동목장과 말산업의 발전을 위해 '인식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소나 돼지 등은 고기나 부속물을 얻는데 그치지만 말은 먹는 것 뿐만 아니라 타고 놀면서 자연과 함께 심신을 치유하는 관광 레저로서 활용분야가 다양하다"며 "마육에 치중된 현재보다 말이 살아 있을 때의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방향의 정책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또 장전공동목장에서 지구력 승마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 중산간 공동목장을 활용한 승마 트레킹 코스 개발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어 제주 중산간 대부분이 공동목장을 중심으로 임로와 잣성길로 연결돼 있어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주올레처럼 코스 개척이 가능하고, 공동목장의 목축유산과 10소장 등 스토리텔링을 가미한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봉철 기자 ▲ 자문단=강만익 문학박사(한국사)·문화재전문위원, 좌동열 문화관광해설사

일제시기 제주도민들은 우마방목을 위해 마을공동목장에 다양한 목축시설들을 만들었다. 급수장·간시사·피서림·방풍림·급염장·진드기 구제장·경계 돌담 등이 대표적인 목축시설이었다. 이것들은 일제 식민지 당국이 각 마을에 보급시킨 마을공동목장조합규약에 근거해 공동목장 내에 구비해야 하는 축산기반 시설이었다.

▲목장 필수시설 급수장=급수장은 목장조합원들이 방풍림이 있어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특정 장소에 만든 물통이었다. 사례로는 1934년 8월30일 제주읍 관내 봉개마을 구장이 제주읍장에게 보낸 「우마식수지소굴골보고서」라는 문서가 있다. 이 문서를 통해 1934년 9월2일 조합원들이 식수지(食水池)를 굴착해 급수장으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테우리막 간시사와 급염소='간시사'(看視舍)는 우마방목 상태를 관찰하기 위한 집으로, 공동목장을 관리했던 목감이 임시 거주했던 '목감집'에 해당됐다. 규모가 큰 목장일 경우, 2~3개의 간시사가 세워지기도 했다. 가축 수용사는 태풍과 비바람을 피해 우마를 수용하는 축사였다. 이를 조선시대에는 '피우가'(避雨家)라 했다.
급염소는 우마들에게 소금을 공급하는 장소로, 공동목장의 특정지점에 소금덩어리를 비치해 우마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소금은 균이나 미생물이 몸 안에서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고, 물에 잘 녹아 몸 속의 해로운 것은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급염소는 급수장 못지않게 중요한 시설로 인식됐다.

▲경계돌담 쌓기는 공동체행사=마을공동목장에서도 조선시대 '잣성'처럼 조합원들을 동원해 목장 외곽경계 및 목장 내부에 돌담을 쌓았다. 공동목장에 방목하는 우마들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버리는 문제를 예방하거나 목장 내에서 윤환방목을 실시하기 위해 구분된 공간경계선을 따라 돌담이 쌓아졌다. 연초에 행해진 경계돌담 수축행사는 마을 연례행사였으며, 조합원 1가구당 1명씩 참여해 이뤄지는 집단작업이었다.

▲목장림과 진드기 구제장=마을공동목장 내에서도 조합원들은 물을 얻기 위한 수원림(水源林)과 바람막이용 방풍림 등 목장림을 조성했다. 수원림으로는 대나무, 아카시아, 상수리나무 등이 활용됐다. 진드기를 구제하기 위해 목장 한켠에 '부구리통'을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호미를 이용해 진드기를 털어 내거나 약품을 피부에 발라 진드기를 제거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활엽수로 피서림(避暑林) 조성했다. 이밖에 공동목장 내에는 농경이 일시적으로 허가된 경작지도 존재했다. 목초 공동저장고와 가축 매매교환소가 공동목장 부근에 세워졌으며, 품질 좋은 소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생산품평회, 강화회(講話會)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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